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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Aug 18. 2018

관계의 수명

주관적이고 사후적인 관계의 정의

관계를 정의하는 건 늘 주관적이고 사후적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측정해서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관계의 범위만 대략 명명할 수 있달까.

친구, 연인, 부부, 부모와 자식...... 

일반적으로 그 관계 사이에 있어야 할 감정을 어느 정도 정해놓긴 한다.

우정, 사랑, 존중, 보살핌, 존경......

하지만 실제로 어떤 감정이 오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라 명명하든, 감정도 주관적이다. 

서로가 같은 감정을 같은 정도로 느끼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관계도 수명이 있다.

당연한 거지만, 사람은 변하고, 그러다 죽는다.

그러니 어찌 관계 따위가 영원할 수 있으랴.

주관적 판단인 관계에 대한 정의도 변해간다.

언어로 규정해놓은 관계가 지속된다고 해서, 관계도 화석처럼 남는 것은 아니다.

명절마다 모이는 친척들도 그렇다. 같이 밥먹으며 대소사를 나누지만

사실 각자는 인생의 큰 굴곡을 넘나들다 또 다른 사람이 되어 만난다.

동창이나 군대, 각종 동기 선후배 등의 집단도 비슷하다.

관계 그 자체의 생로병사가 있다.

좋았고 격렬했으나 일찍 끝나는 관계가 있고

그리 좋을 것 없으나 오래 가는 관계도 있다.


관계의 파국은 관계의 반전의 여지에서 온다.

관계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어긋남을 깨달을 때

관계는 끝이 난다.

선언을 통해 끝나는 수도 있고

조용한 결심을 통해 끝나는 수도 있다.

자신도 변하고

상대에 대한 생각도 변한다.

애초에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관계는 전환점을 맞는다.


관계의 생로병사 속에, 관계에 대한 객관적 정의를 공유하는 일 대신

각자 삶의 서사로 돌아가 서사 안에서 배역의 정의와 비중을 조절한다.

그리고 그 외로운 서사의 여행이 계속된다. 숨이 멎는 날까지.


격렬하게 같이 있던 순간들.

각자의 강고한 서사가 만나 엉켜있던 순간들.

관계의 객관적 정의를 따져물어 자신의 서사를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노력들.


그리고 결국엔 가느다란 실처럼 풀려나와 

스스로에게 연속성과 인과성을 따져묻는 개개인의 서사.

사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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