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가 된 소녀
4. 인물 설정, back story
성택은 그 지역 미군부대에서 40년간 일했던 한국인 민간인이다. 큰 미군 부대 내부의 세탁소 사장이라면 적지 않은 돈을 벌면서 미국 이민자와 비슷한 느낌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 경계인 같은 삶. 오 선생님의 삶에서 받은 느낌이기도 했다.
성택의 외동딸 윤희(이세은 분)는 김치 GI(한국계 미군)와 연애를 했다고 설정했다. 딸이 미군 소위와 연애하자, 성택은 아마도 꿈을 꾸었을 것이다. 아내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이 땅에 미련 따윈 없다고. 이참에 윤희를 결혼시켜 그냥 미국으로 이민가버리고 싶다고. 김치GI이니 생판 다른 인종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그러나 늘 그렇듯 기대는 배신 당한다. 김치GI는 복무 기간을 채우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리고 연락을 끊는다. 남은 것은 세영을 임신한 윤희였다. 성택은 그런 윤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펄펄 뛰는 아버지를 보다 못해 윤희는 집을 나갔다. 세영은 그렇게 외롭게 태어난 아이다.
세영이 태어난 후 윤희는 다시 성택의 집으로 들어왔다. 어색한 화해였고, 윤희의 마음엔 상처가 가득 남은 후였다. 윤희는 그 후에도 세영을 성택에게 맡겨 두고 자립을 해보겠다며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나 결국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미군부대가 철수하고 성택은 부동산을 차렸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었기에 박 사장과 동업했다. 자신의 인맥과 박 사장의 자격증의 합작이었다. 부동산에서 번 돈으로 세영이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부동산마저 정리하고 난 후, 후배 박 사장은 어느 날 재개발 사업 계획을 들고 성택을 찾아왔다. 건설사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에 더해 성택의 설득력을 업고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성택은 이것이 ‘가장’답게 딸과 손녀에게 그럴듯한 유산을 남겨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번듯한 새 아파트. 능력 있는 아버지답게, 멋진 할아버지답게. 그래서 추진위원장 명함을 박고 참으로 열심히 매달렸다. 재개발이 불편한 소수 주민의 의견은 소수로 치부하며.
그러던 중 성택은 자신의 건망증이 조금씩 심해짐을 느낀다. 겁이 더럭 났다. 의사는 아직은 괜찮지만 조금씩 ‘준비’는 해야 할 거라고 한다. 믿을 수가 없다. 아직도 이렇게 멀쩡하기만 한데.
한편, 윤희가 1년 전부터 한국에 없었다. 관광업을 하는 친구에게 듣고 윤희가 찾아간 일자리는 캄보디아에 있었다. 고등학생 세영이를 이 시점에 외국에 데려갈 순 없다며 성택에게 맡겨둔 채였다. 그렇게 세영과 성택은 또 둘이 남아 있었다. 윤희는 1년만 지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윤희는 그곳에서 재혼하고픈 남자를 만난 터였다. 한국에서 서럽게 살아온 윤희는 자기를 선진국 시민 대우를 해주는 캄보디아에 있는 것이 좋았다. 어릴 때 입버릇처럼 미국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곳에선 마치 자신이 그런 미국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상림의 아버지는 선량한 무능력자다. 사양산업인 사진관을 붙들고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술로 날을 지샜다. 그는 추억이 깃든 공간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모든 사람이 각각 사정이 있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 보상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철거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상림 아버지는 얼결에 간부를 맡았다. 그리고 어느 날, 집회 중에 헌 집이 무너지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상림은 그 때부터 함묵증을 앓았다.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던 분노는 상림에게 죄책감으로 남아 말을 막았다. 그리고 상림의 외로움과 세영의 외로움은 어느 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 가운데에 본편 중에 명확하게 대사나 장면으로 전달된 부분도 있고, 간략히 암시만 된 부분도 있다. 소품으로 분위기만 표현한 부분도 있고, 아예 표현이 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표현했으나 길이 때문에 편집되기도 했다. 처음엔 모든 정보를 극화시키고자 하는 욕구에 시달렸으나, 어느 순간, 다 사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고민 끝에 남은 내용이 본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