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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Jun 10. 2020

코로나 시대의 리얼리티

영화 드라마 속의 마스크

코로나 시대의 리얼리티.

 tv드라마는 더욱 판타지가 되었다. 아무도 마스크나 손 소독제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코로나 정국이 길어진다고 해서, 갑자기 이야기의 세계관에서도 마스크를 씌우기는 어렵다. 먼저 기획 제작 집필의 사이클 상, 지금 방송하고 있는 드라마들은 코로나 이전에 써진 대본일 확률이 크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기획된 대본일지라도, 전염병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는 게 아닌 이상 마스크를 씌우면 본 이야기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것이다. 제작 현실 상으로도 어렵다. 입을 가리고 시청자에게 대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게 가능할까. 요즘 마스크 쓴 영웅으로 재평가 되고 있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인도 통 후시 녹음을 했다. 분장은 또 어떡하나.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해야하는 씬은 또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그게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상관이 있나.

 전염병이 두어달 짜리 사태고, 일정 국가에서만 일어난 일이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스크를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일 년 넘게 이어질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마스크를 쓰지 않는 영화, 드라마는 점점 더 다른 세상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보여야 할 판타지물은 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조금 과장된 표현을 펼치는 이야기의 경우도 그럭저럭 어색해보이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엄정한 리얼리티를 구현해야 하는 톤의 작품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마스크를 안 쓰자니 다른 세상 이야기고, 마스크를 쓰자니 얼굴을 반이나 가려 답답하고 대사 전달도 어렵고, 시선도 분산된다. 다행히 일 년 안에 이 상황이 종료가 된다 해도, 이제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2020년을 상징하는 물품이 될 것이다. 이 상징성은 붉은 악마 티셔츠나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그야말로 유사이래 최초로 전 인류가 공유하는 위기상황이다. 2020년을 명시하면서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리얼리티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올 해 제작되는 드라마를 넘어 2021년, 2022년에 제작하는 드라마에서는 1,2년 전 과거를 소환할 때 마스크는 제일 먼저 고려될 소품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태가 1년 안에 진정되지 않을 경우다. 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상태가 오히려 이상해보이고 신경이 거슬릴 지경이 되면 마스크는 이제 일상적인 의상의 범주가 된다. 단지 2020년만의 상징을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영화나 드라마가 고려해야 하는 리얼리티의 기본 설정 자체가 달라진다. 물론 영화적 허용, 극적 허용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는 마스크를 써야 할 상황이라도 마스크 없이 표현할 수 있다. 오히려 마스크를 언제 쓰고 언제 안 쓰는가로 캐릭터를 표현하거나, 아예 마스크 자체를 극적인 요소로 들여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 심의를 지켜야 하는 tv드라마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흡연 장면 방송이 불가하고, 경찰 추격 장면에서도 중앙선 침범 유턴은 지양해야 하고 뒷자리 안전벨트까지 완벽히 착용한 상태여야만 하는, 사회적 교양을 지킬 것을 요구 받는 방송은 마스크를 벗은 상태의 씬을 어디까지 허용해줄 것인가. 마스크를 벗고 가족 외 사람들과 도시의 어딘가에서 대화하는 장면에 대해, 연출자는 이제 방송 심의 위원회에 출두해 변명할 연출의 이유와 반성문을 머리 속에 미리 그려야만 되는 시대가 오는 게 아닐까.

 그러나 방심위 눈치 보기 전에 늘 보고 있는 비교 불가하게 큰 눈치가 있다. 시청자의 눈치. 시청자의 이중적 요구를 받아줄 수 있을까? 우리 애가 보고 배울까 두려우니 연기자에게 마스크를 씌워 씬을 연출하라는 요구와, 잘난 배우들 얼굴 보는 맛에 tv드라마 보는 데 여기에서까지 마스크 쓴 얼굴을 보기 싫다는 외면 사이에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사람이 이끌리는 바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사회성에 미친 동물이다. 서로 어울려 웃고 마시고, 눈을 보고 입을 보고 대화하고, 운동하며 몸도 부대끼고, 열정적으로 싸우게 되기도 하고, 손 잡기와 포옹으로 위로를 전하며 입맞추고 살 맞대며 사랑을 나눈다. 그런 것이 인간일진대 인간의 갈등양상과 욕망을 투사하는 영화 드라마가 이를 외면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 상황이 지속된다면, 인간의 모든 서사는 어느 정도 디스토피아 물을 전제하게 된다. 인류 전체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환경에 맞서 살아가고 있다는 대전제.

  드라마나 영화의 등장인물에게 마스크를 씌워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아직은 당장 결정해야하는 고민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비상시국은 불평등한 파급효과를 낳았다. 학교를 갈 수 없는 아이들, 멈 춰선 스포츠, 문을 닫는 자영업, 일감이 떨어진 프리랜서, 팬데믹 대책이 따라 드러나는 각국 시스템과 정치의 맹점들.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흔들리는 비즈니스들과 연대활동들. 그리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으며, 안전을 위해 모두가 단결해야 한다는 자각. 역설적이게도, 추상적 목표에 대한 심정적 연대는 강하지만 모든 타인이 감염원일 수 있다는 경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위험성. 마스크는 단순 소품이라고 생각하기엔 감당하기 어려울만큼의 내적 의미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러니, 가상의 이야기에 마스크가 추가로 필요한가를 묻기보다, 마스크가 가져오는 인간 삶의 새로운 폭풍을 이야기가 포착하여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현재 더 생각해볼만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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