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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중년부부의 자유여행 - 두 번째 걸음

독일과 인접국 여행

by 이야 아저씨


독일 40일간의 자유여행이 무탈하게 끝이 났다.



처음 자유여행으로 아내와 호주, 뉴질랜드를 다녀온 지도 벌써 6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 생각되었지만 그사이 우리 가족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머님과 장인어른이 유명을 달리하셨고 아들이 결혼을 했다.

나는 환갑이 훌쩍 지나고 발목 골절로 6개월 정도 고생하기도 했다.

이사를 두 번 하고 마침내 양평읍내에 터전을 마련했다.

딸이 예쁜 외손녀를 낳고 벌써 세 살이 다 되어 어린이 집을 다니고 있다.

재작년 4월에 결혼을 한 아들 내외도 질세라 귀여운 손주를 품에 안겨 주었다.



운이 좋았는지 5년 동안은 다시 회사생활을 하며 지냈다.

첫 직장만큼 큰 부담감 없이 즐겁게 회사생활을 하며 2023년 12월 말 일자로 두 번째 퇴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이도 50대 중반에서 어느새 60대로 훌쩍 들어와 버렸다.


2차 퇴직 후 일 년 동안 몇 번 유럽으로 단체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단체여행 특성상 짜인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불만 중 하나였다.

호시탐탐 자유여행기회를 엿보던 아내가 드디어 빌미를 찾았다.



항공사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나라를 검색한 끝에 마일리지만으로 왕복할 수 있는 도시를 찾아낸 것이었다.


"독일 프랑크 푸르트"


때 마침 TV나 각종 언론 매체에는 독일의 도시들과 유명관광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항공료도 무료이고 동유럽 여행을 하면서 잠시 들른 경험뿐이라 이번에는 아내의 요구대로 미지의 곳인 독일 자유여행을 떠나기로 결정을 했다.



# 1. 여행준비 및 일정계획


여행국은 정해졌으니 언제? 얼마 동안 여행을 할 것인가? 가 문제였다.

이왕 가는 것이니 기간은 가능한 한 길게 잡고 성수기는 피하되 날씨가 좋은 봄 시즌으로 일정을 확정했다.

2025년 4월 13일 출국해서 5월 22일 귀국.

40일간의 일정으로 독일을 한 바퀴 돌며 인접 국가를 둘러보는 것으로 확정했다.



ㆍ출발 6개월 전,

2024년 10월 12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 티켓팅 완료.

출발하는 그날까지 부득이하게 여행이 취소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ㆍ2025년 1월 13일.


거점 도시 및 일정 짜기 완료.

독일 유명 중심도시 여러 곳을 근거지로 삼고 인근 관광지를 당일코스 여행을 하기로 했다.

최근 핫한 여행지로 떠오른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인 돌로미티와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 그리고 독일과 인접국가인 베네룩스 3 국도 들러 보는 것으로 했다.

최신판 독일 여행 관련 책도 구입하고 유튜브 여행기와 세계여행프로그램도 OTT로 시청을 하며 독일과 그 외 국가에 대한 여행정보를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ㆍ여행 3개월 전,

2025년 1월 17일.


호텔 및 렌터카 예약.

1차 호주, 뉴질랜드 자유여행 때는 여행전문 컨설턴트가 모든 예약을 해 주었으나 이번 여행은 우리 부부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어쩔 수 없이 딸과 사위 찬스를 쓰기로 했다.

숙박할 도시를 정해주고 숙박금액과 필요조건을 감안하여 사위와 밤늦은 시간까지 숙소와 렌터카 예약을 완료했다.

이후 독일에 거주하는 아내 선배언니의 도움을 받아 불합리한 일정을 일부 조정했다.



ㆍ25년 3월 11일.


국제운전 면허증 발급.

40일간 렌터카 여행이라 만일을 대비해 나와 아내 둘이 함께 국제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았다.



ㆍ25년 4월 6일.


여행출발 일주일 전.

여행자 보험가입, 전화 해외로밍 신청, 트래블 카드 현지화폐 충전 그리고 유로화 지폐 환전을 완료했다.



ㆍ2025년 4월 12일.


여행 하루 전.

여행 준비물 최종 확인 및 집안정리.

불필요한 전기코드 뽑기, 냉장고 음식정리, 빨래하기, 최종 몸 컨디션 체크.

몸 상태는 다행히 컨디션 90% 정도의 상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하루였지만 무탈하게 6개월이 지나갔다.



# 2. 한국 출발 및 자유여행을 위한 독일 현지 사전 학습.


ㆍ4월 13일, 한국 출발.


딸 부부와 외손녀 그리고 아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11시 반 인천공항을 떠났다.

13시간의 비행 끝에 현지시간 당일 오후 5시 30분경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독일에 거주하는 아내의 선배언니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우리 부부와 40일 동안 함께 할 많은 짐을 차에 고 집으로 갔다.

이틀 후 한국에서 출발하는 양평 선배부부와 독일에서 합류하기 전까지 아내의 선배언니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것이다.

도착 첫날밤,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맥주와 소주로 풀었다.

독일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과 20년 이상 떨어져서 살아온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느라 아내와 선배언니는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시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독일 렌터카 여행 현지적응 훈련이 시작되었다.

라인강변을 따라 한 시간 남짓 걸려 로렐라이 언덕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강변을 감싸는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고성과 포도밭을 보며 독일이란 나라에 발을 디디고 서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로렐라이 언덕에 올라 뱃사공들을 유혹했다는 인어상을 보고 뤼데스하임에서 케이블카를 타며 포도농장 언덕을 내려와 드로셀거리(참새거리)라 불리는 좁은 골목길도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 앉아 독일에서 운전하는 방법, 도로신호체계, 과속단속 그리고 장소에 따른 주차비 계산방법을 배웠다.



둘째 날 오전.


현지 대형 슈퍼마켓과 건설자재 마켓을 둘러보고 페트병과 캔등 재할용품을 환급하는 방법도 살펴봤다.

오후에는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나가 선배언니와 같이 도심투어를 했다.

마지막으로 현지인들이 주로 사용하다는 한국어가 지원되는 차량 내비게이션 앱까지 다운로드 완료!!!

완벽하진 않겠지만 독일에서 자유여행을 하기 위한 필요사항들을 현지인의 지도하에 실습을 하고 나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본격적인 독일 자유여행을 위한 사전준비가 끝이 났다.

예약해 둔 호텔에 check - in을 하고

오후 5시경 양평 선배부부를 맞이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달려갔다.

독일 선배언니와 딸, 우리 부부 그리고 양평 선배 내외분과 함께 시내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에 첫 투숙을 했다.


그다음 날.


선배 부부를 동반한 10일간의 1차 자유여행이 시작되었다.



# 3. 양평 선배부부와 동반여행.


첫째 날 아침, 미리 예악해 둔 렌터카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인근 주차장에서 픽업했다.


중형 SUV차량이라 여행용 캐리어가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간신히 짐을 실을 수 있었다.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소형 캐리어를 실은 탓에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견딜 수 있을 듯했다.



처음 미션은 차량에 핸드폰 거치대 장착.

차량 도로 앱은 렌터카 자유여행에서 필수 불가결한 공기와 같은 존재다.

부착형과 송풍기 날개에 끼우는 두 가지 종류의 차량 거치대를 야심 차게 준비했지만 설치에 모두 실패했다.

어디서나 잘 붙는다는 부착형은 대시보드 재질로 인해 고정이 되지 않았고 끼움형은 차량 송풍기 날개 간격이 유난히 좁아 거치대를 끼울 수가 없었다.

예상과 다른 결과에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전자기기를 잘 다루는 선배님 덕분에 핸드폰 구글 맵과 차량을 연동시킬 수 있었다.

차의 큰 화면을 통해 내비게이션을 보니 길 찾기가 훨씬 수월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미션은 성공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첫 여행지인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독일에서 첫 운전이었지만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신 선배님 덕분에 무리 없이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하이델베르크성을 둘러본 후 호텔 산장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여행 첫째 날을 보냈다.



선배 부부와의 동행은 12일간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픽업을 시작으로 하이델 베르크, 슈바르츠발트에 있는 검은 숲 전망대, 슈투트가르트, 울름, 캠프텐, 퓌센,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지역 관광지(추크슈피체, 아이브호수, 파트너흐클람 협곡, 에랄 수도원, 린더호프성 등), 뮌헨 그리고 잉골스타트와 쇼핑센터를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뮌헨에서 마지막 4일을 보낸 후 선배부부는 뮌헨 공항에서 벨기에 수도인 브뤼셀로 떠나고 나머지 일정은 나와 아내 둘만의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선배부부는 해외에 거주하며 생활도 오래 하셨고 외국여행경험이 많아 초기 애로점을 풀어 나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주차비, 차량 연료비, 식대등 모든 비용을 선 지불해 주신 덕분에 어깨너머로 상황에 따른 지불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유럽 렌터카 여행에서 적합한 주차장 찾기와 지불방법, 그리고 차량 기름 넣는 법만 알면 여행의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기계가 돈과 신용카드를 잡아먹는 한 두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실패를 거울삼아 차량운행과 관련된 필요 사항들을 동행하는 동안 현실감 있게 체득할 수 있었다.



12일간의 동행은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3일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천 미터 이상의 고갯길을 수차례나 넘나드는 돌로미티 산악지대 운전은 고소공포증 증세가 약간 있는 나에게 크나큰 시련이었다.

내겐 시련이었지만 어쩔 수없이 같은 차에 동승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와 선배부부에겐 아마 공포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추가 운전자 등록 비용이 만만치 않아 선배님을 등록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지만 동승자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뮌헨에서 3일 동안 도심과 인근 소도시를 둘러보고 하루는 각자 부부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뮌헨 도착 이후 5일 차.


이른 아침, 공항에 선배부부를 모셔다 드린 후 나와 아내 둘만의 자유여행이 시작되었다.



# 4. 아내와 나, 둘만의 자유여행.


4월 26일부터 출국일 5월 21일까지 26일간의 일정이 남아 있었다.

양평 선배부부와 헤어지니 차의 공간이 많이 넉넉해졌다.

뒷자리에 앉았던 아내가 조수석을 차지하고 길 찾기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

장거리 운전 시에는 아내가 몇 번 운전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내가 직접 운전을 했다.



뮌헨에서 3일을 더 보낸 후 뉘른베르크, 라이이프치히,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을 거점도시로 정하고 인근 소도시(파사우, 레겐스부르크, 로텐부르크, 뷔르츠부르크, 에르푸르트, 데사우, 포츠담, 슈베린, 뤼백, 뤼네부르크등)들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새로운 도시를 접할 때마다 비슷한 듯 하지만 각기 독특한 모습과 그 도시만의 색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근대 이전 많은 제후국들이 공존했던 당시의 구시가지 모습들을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로부터 재건을 시작해 지금까지 거의 완벽하게 복원을 한 독일과 국민들의 저력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수도인 베를린에서는 인접해 있는 폴란드 제2의 항구도시인 슈체친에 들러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었다.



독일의 유명작가인 그림형제가 쓴 고전동화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이 있는 브레멘 도시투어를 마지막으로 베네룩스 3국(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으로 넘어갔다.


수도인 암스테르담과 브뤼셀 그리고 풍차마을로 유명한 잔세스칸스는 큰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2, 3의 도시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과 알크마르, 벨기에의 브뤼허와 트가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튤립의 본 고장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에서 튤립 꽃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튤립으로 유명한 농장에 들렀지만 이미 개화시기가 끝나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5월 초가 절정이라는 인터넷의 여행후기를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네덜란드 여행을 마치고 벨기에로 넘어가기 전, 독일국경과 인접한 도시인 로어몬트에 들러 아내는 쇼핑을 하고 나는 혼자서 도심투어를 했다.

로어몬트 아웃렛 식당가에서 점심식사 후 국경을 넘어 독일에서 내부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아헨 성당을 잠시 들러 본 후 벨기에 바노성지를 경유해 호텔로 들어갔다.



룩셈부르크에서는 도시투어를 먼저 한 후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나 마지막 거점 여행지인 독일 쾰른으로 향했다.

쾰른 성당에서 10시에 시작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시간 내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뜻밖에 숲과 계곡이 있는 국립공원 지역을 통과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30분 정도 늦게 성당에 도착했지만 미사를 안내하는 사람들의 배려로 다행히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성당에서 미사를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다니며 많은 성당들을 봤지만 쾰른 성당은 명불허전, 가히 최고라 할 만했다.

엄숙하고 거대한 성당 내에 잔잔하면서도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무반주의 성가대 합창과 파이프 오르간 연주 속에 진행된 미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쾰른 시내 도보투어를 마치고 저녁 무렵 시내 인근 골프장 내에 위치한 호텔로 갔다.

체크인 도중 라운딩 가능여부를 물어보니 다음날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라운딩 비용도 국내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해 다음날 오전 8시 30분으로 예약을 했다.

아무런 준비가 없던 터라 골프 클럽과 수동카트만 빌리고 여행 내내 신고 다녔던 트랙킹화에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라운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 그리고 전 날 클럽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난 80세의 한인교포어르신과 셋이서 라운딩을 함께 즐겼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날씨에 페어웨이나 그린 상태가 너무 좋아 독일여행의 마지막 휘날레를 즐겁고 화려한 골프라운딩으로 마칠 수 있었다.

교포분이 사 준 커피를 마시며 55년간 이국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삶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 숙소에서 출국 전 최종 짐정리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출국하는 날을 빼고 단 하루가 남았다.


마지막 밤은 아내의 선배언니 집에서 보내기로 했기에 프랑크푸르트 인근 바트소덴에 있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이른 아침 출발로 시간적 여유가 있어 도중에 선배언니가 추천한 림부르크란 도시에 들렀다.

독일 소도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림부르크는 독일 여행을 마무리할만한 최적의 장소였다.



한적하게 도시를 둘러본 후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선배언니 집으로 들어갔다.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마치 내 집에 온 듯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흰쌀밥에 두부김치찌개가 더해진 한상 차림은 37일간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렌터카를 반납 후 여행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며 독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출국 당일.


오후 8시 출발이라 선배 언니와 근교 도시인 쾨니히슈타인 숲길을 산책하고 소소한 쇼핑도 함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공항까지 일찌감치 차로 배웅을 해 주는 바람에 여유 있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저녁 8시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다.


굿바이!!!


독일.



# 5. 여행 후기


이번 독일 자유여행은 내겐 여러모로 의미 있는 기록들과 이전에 유럽여행을 하며 생각했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건으로 애를 태우기도 했지만 몸소 경험한 일들로 인해 여행의 긴장감과 즐거움이 더해진 시간이었다.





ㆍ하나 : 여행 기록


해외에 근무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최장기간 해외체류였다.

인천공항 출발에서 도착까지 40일.

그리 많은 날은 아니었지만 7개국, 43개 도시와 자연 경관지인 이탈리아 돌로미티, 독일 알펜가도 관광지와 킴제호수, 북해 해변을 방문했다.

차량 주행거리 7,200 킬로미터,

하루 평균 2만 보이상을 걸었으니 총 760,000 보 이상을 걸은 셈이다.

보폭을 70 센티미터로 환산해 보면 530 킬로미터를 도보로 여행한 셈이 된다.

이동거리를 모두 합하면 편도 400킬로미터인 서울과 부산을 열 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였다.

익숙하고 도시를 쉽게 오갈 수 있는 국내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여행이었지만 새롭고 영토가 큰 나라였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ㆍ둘 :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 돈은 반드시 필요한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즐거운 여행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머니 머니해도 건강이다.

건강관리는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번 여행은 출발하기 6개월 전 프랑크푸르트 비행기 예약으로 시작되었다.

떠나는 날까지 여행을 떠나는 당사자뿐 아니라 집안사람들 모두가 무고(?)해야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신경 쓰이고 찜찜한 일 한 가지라도 마음에 품고 떠나게 된다면 그 여행이 즐거울 수가 없다.



비행기 예약 이후 며느리가 손주를 출산하고 딸은 출산 휴가 후 2년 만에 회사 복직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딸네 집에 거주하며 외손녀 돌봄을 시작했다.

그에 더해 장모님의 허리 골절로 인한 병원 입원등 크고 작은 소소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래서 비행기 예약 취소가 가능한 3개월까지 렌터카와 숙소예약을 미루고 있었다.

출발 전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여행 기간 동안 묵을 숙소와 렌터카를 예약했다.

남은 3개월 동안 혹시 모를 만일의 사건에 대비해 10% 이상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며 숙박취소 가능한 조건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다행히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예정된 날에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건강관리는 필수적이다.

짧지 않은 기간이라 상비약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의약품을 미리 챙겼다.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 조제된 감기약을 준비하고 소화제와 각종 연고도 골고루 챙겼다.

여행도중 탈이 나거나 아프게 되면 그 순간부터 여행은 지옥 행군이나 다름없게 된다.



워낙 하루 일정이 바쁘다 보니 여행도중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걱정이 되는 순간도 가끔 있었지만 다행히 자고 나면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파스와 소화제 이외에는 상비약을 쓸 일이 없을 정도로 여행 내내 정상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뚜벅이 여행에서 건강한 체력유지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아내와 나는 그 공을 모두 독일의 맑은 공기에 돌렸다.

들이키는 맑은 공기 한숨 한숨이 피로해소와 건강을 지켜주는 활력소나 다름없었다.

독일과 인접여행국들의 자연환경과 맑고 깨끗한 공기가 너무 부러웠다.





ㆍ셋 : 운전에 대하여


1986년도에 면허를 취득했으니 운전경력만 해도 40년이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어 한계령이나 태백산맥을 넘나드는 산악도로를 주행하며 긴장감을 느낄 때 이외는 나름대로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독일과 산악지대인 이탈리아 돌로미티를 운전하면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운전은 오히려 나은 편이었다.

도로에 차가 한산할 때 추월차선을 과감하게 160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달려보곤 했지만 바로 차 꽁무니에서 양보를 재촉하는 차들로 인해 여행 내내 거의 주행차선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왕복 2차선 도로는 운전하기 더 힘이 들었다.

제한속도가 100, 120 킬로였지만 초행길인 나로서는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내 차뒤에는 차량이 지체되기 일쑤여서 미안하고 쫓기는 마음으로 운전을 해야 했고 도심운전도 신호등(좌회전 신호는 대부분 비보호 좌회전임)과 도로표지판에 익숙하지 않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최악의 시간은 이탈리아 돌로미티 산악지대였다.

중앙차선이 없고 도로 한편은 천애 낭떠러지인 좁은 산악도로를 처음 운전할 때 차라리 그냥 차를 멈춰 세우고 싶었다.

그렇게 위험한 도로의 제한속도는 90 킬로미터였다.

지금까지 운전을 하면서 식은땀이 나고 오금이 저려오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좁은 도로에 차를 세울 곳도 없고 뒷 차들이 무섭게 재촉하며 뒷 꽁무니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낭떠러지 길을 통과하고 도로 양쪽으로 1미터가 넘는 눈이 쌓인 2천 미터가 넘는 산 마루를 2곳이나 통과하여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며 한 숨을 내 쉬었지만 차 안에서 말 못 하며 가슴을 졸인 아내와 선배부부를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체 운전자가 없기에 다음 이틀간도 2천 미터가 넘는 돌로미티 산길을 넘나들며 다닐 수밖에 없었다.

첫날과는 달리 날씨가 맑았고 이미 경험한 바가 있어 조금은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영국처럼 운전대 방향이 바뀌고 수동 운전차량이었다면 돌로미티 여행은 더 이상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베스트드라이버라 자부했던 내가 이번 여행에서 운전쫄보가 되어 다른 운전자들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렌터카로 다시 알프스 여행을 누군가가 권한다면?


내 대답은 당연히 "NO".


한 번은 멋모르고 했지만 두 번은 못한다.





ㆍ넷 : 재난 발생 시 독일의 응급시스템


뮌헨에서 선배부부와 헤어진 다음날이었다.

아파트형 호텔이라 주방이 있어 숙박 마지막 날에 삼겹살을 구워 아내와 소주 한잔을 하기로 했다.

남은 일정동안 묵을 숙소는 주방이 없어 마지막으로 준비한 저녁만찬이었다.



프라이팬에 고기를 한판 구워 먹고 두 번째 판을 구울 때였다.

연기가 많이 나 창문을 활짝 열고 연기를 빼고 있는데 갑작스레 호텔 전체에 요란한 벨소리가 울렸다.

우리 객실에서 발생한 연기 때문이라 직감하고 상황을 알리기 위해 나는 곧바로 호텔카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가동을 멈춘 듯했고 객실 손님들 모두가 계단으로 긴급하게 대피 중이었다.

카운터로 내려 가 호텔 직원들과 웅성거리며 피신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제반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계단을 통해 객실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도 화재경보기는 계속 울리고 손님들의 대피행렬은 이어지고 있었다.

객실로 돌아와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창밖을 내다본 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대형 소방차 2대, 지휘 차량과 응급차량이 호텔 앞에 이미 출동해 있었고 경찰이 주변도로를 막고 차량과 사람들의 통행을 차단하고 있었다.

객실에서 이미 피신한 손님들도 도로에서 호텔을 올려다보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소화기를 든 호텔 직원들이 다녀갔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있는 도중 완전무장을 한채, 헬맷을 쓴 소방대원 6명이 객실로 들어왔다.

연기는 어느 정도 객실에서 빠져나간 듯했지만 화재경보기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나의 설명을 듣고 1차 상황점검을 마친 소방대원이 호텔도면을 꺼냈다.

객실 가운데 천정에 붙어 있는 화재감지기를 살펴본 후,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듯 객실 문 입구 천정 점검구를 여는 것이 있다.

천정사이에 연기 감지기가 또 하나 숨겨져 있었다.

소방관이 점검구를 열자 천정 속 연기가 빠져나가고 그때서야 화재경보기 소리가 멈췄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우리 부부로부터 상황설명을 듣고 최종안전을 확인 후 출동한 소방대원들과 차량들이 철수하고 대피한 손님들은 객실로 돌아왔다.


사건은 큰 일없이 무사히 끝이 났지만 뒷수습이 걱정되었다.

소방차 출동과 객실 손님들 대피에 따른 보상비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가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터넷자료도 찾아보고 독일에 거주하는 선배언니에게 상황 설명 후 도움도 요청했다.

나름대로 상황별 대처방안을 아내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호텔매니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주방요리 시 환기에 대한 주의사항을 알려주며 걱정하고 있는 아내와 나에게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다며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라고 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사건발생에 따른 비용부과에 대해 물어보니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와 아내는 긴장했던 마음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화재경보기 울림 이후 5분이 되기 전에 소방차가 출동했고 주변 도로통제가 시작되었다. 나와 아내에겐 길게 느껴졌지만 상황발생 후 철수까지 실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긴장 속의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 독일의 신속한 재난발생 응급체계에 놀라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 도시인 쾰른 골프장에서도 환자 발생으로 구급차량과 응급헬기가 클럽하우스 주차장에 출동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모두 대기하는 것을 지켜보며 또 한 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드라마 "중증 외상 센터"를 흥미 있게 본 나로서는 우리나라 구급대의 현실이 새삼스럽게 떠 올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ㆍ다섯 : 독일의 환경과 산림관리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궁금한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야생초사이로 꽃들이 피어있는 가로변, 그리고 거대한 평원과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숲이 반복되는 풍경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객들에게 환상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유럽여행의 품격과 만족도를 한 단계 높인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누가, 관리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와는 품종이 다른 식물을 심는 걸까? 그것이 내겐 늘 궁금한 점이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가로변은 깨끗하고 아름다웠고 평원은 늘 녹색 초원과 샛노란 꽃들로 뒤덮여 있었다.

울창한 수목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곧게 뻗어 있었고 햇볕이 들기 힘든다는 검은 숲은 독일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그 궁금증이 드디어 해소되었다.

여행 내내 차로 다닌 덕에 차선을 막고 가로변을 관리하는 사람들과 차량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풀을 베고 나무를 자르고 바로 청소 및 수거까지 끝내는 모습을 보며 독일의 환경과 자연자원들이 세심하게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독일의 환경관리에 대한 노력은 아우토반에서 그 절정을 다했다.

가로등, 속도제한, 도로 교통비, 세 가지가 없는 아우토반이지만 5킬로미터 이내마다 휴게주차장과 무료화장실이 넓게 설치되어 있었다.

운전자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벤치와 차량운행 중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를 맘대로 버릴 수 있는 대형쓰레기 통들이 휴게주차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면적도 넓고 큰 나무들에 둘러 싸여 운전자들이 차를 세워 놓고 잠도 자고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쓰레기 통들은 늘 깨끗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고 이른 아침 화장실 청소와 더불어 쓰레기가 모두 수거되고 있었다.



운전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운전자들과 여행객들을 위한 독일의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의 아우토반과 도로 주변에서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어디선가 쓰레기통이 나타나는 나라!!

깨끗한 자연환경관리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ㆍ여섯 : 역시 구글!!!


건강과 여행경비를 제외하고 해외 여행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구글 앱일 것이다.

여행지의 숙박업소, 관광지, 식당, 대중교통정보, 슈퍼마켓, 주차장등 여행과 관련된 필요한 모든 정보가 거기에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렌터카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앱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한국어로 지원되는 구글 내비게이션이 없었다면 그 많은 도시를 차질 없이 일정에 맞춰 여행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어김없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안내해 준 내비게이션과 35일 동안 말썽 없이 이동수단의 역할을 다해 준 렌터카는 이번 여행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했다.



구글지도 서비스와 내비게이션 앱이 작동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명분은 있겠지만 국내를 찾는 해외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구글 내비게이션 서비스가 하루빨리 개방되기를 개인적으로 소망해 본다.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하는 게 글로벌 국가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ㆍ일곱 : 비빌 언덕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가려운 곳을 비빈다."라고 했듯이 이번 여행이 무탈하고 즐겁게 끝난 데는 우리 부부에게 비빌언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언덕은,


당연히 독일 현지에 사는 아내의 선배언니였다.

독일여행의 시작과 끝을 선배언니의 집에 머물며 기초적인 팁도 배우고 장기간 여행의 피로도 풀 수 있었다.

장기간 독일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도, 여행 중 늘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도 독일 현지에서 언제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든든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언덕은,


12일간 동행한 양평 선배님 부부였다.

부담되는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요청에 따라 흔쾌히 여행 초반에 동참을 해 주는 바람에 많은 부담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아내 둘만의 자유여행이었다면 잦은 실수로 힘든 일정이 되었을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외국 경험이 많은 선배부부의 초기 동행은 이번 자유여행에 큰 힘이 되었다.

낯 선곳에서 12일간의 동행이 기반이 되어 남은 여행을 큰 실수 없이 잘 보낼 수 있었다.



세 번째 언덕은,


딸과 아들 부부.

출입국시 아들의 공항마중과 출국 시 외손녀를 동반한 딸과 사위의 환송은 이번 여행을 한결 가볍고 홀가분하게 해 주었다.

여행 내내 하루가 멀다 하게 걸려오는 화상 통화로 보는 외손녀와 귀여운 손주의 모습은 자칫 지쳐 버릴 수 있었던 체력을 바로 원 상태로 돌려놓는 활력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ㆍ여덟 : 만남


여행을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뭐라고 할까?라고 내게 물어본다면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익숙했던 것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 그리고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익명의 섬에서 이방인으로서 자유롭게 다니며 낯선 것들과 만나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을 독일로 정한 것도 유럽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좀 더 낯설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몇 번 유럽을 여행하면서 중세시대 건축물이나 유적에는 조금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여행에서 나와 아내는 색다른 만남을 계획했다.


"독일 근대와 현대 건축과의 만남"


여행을 준비하던 중 사위가 "독일미감"이란 책을 선물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자유여행 장점을 십분 활용해 가능한 한 여행일정에 새로운 만남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ㆍ한국인 이은영 건축가가 설계한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




ㆍ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의 바이센 호프 박물관.



ㆍ미스 반데로 어, 발터 그로피우스, 르코르뷔지에 등 유럽건축대가 16명이 여러 가지 주택유형을 제시하며 설계한 바이센호프 주거단지.



ㆍ현대 디자인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디자인 예술 종합학교인 데사우 바우하우스.



ㆍ바우하우스 교수들의 사택이었던 데사우의 "Maeter's House"



ㆍ프랑크푸르트 선배언니의 집 근처에서 운 좋게 만난 오스트리아 유명 건축가인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인 바트소덴 주거 단지.



ㆍ유럽 최대 그리고 가장 성공한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평가받는 함부르크의 하펜시티.



ㆍ쾰른의 수변공간 재개발 지역인 라이나우하펜.



ㆍ도심에서 진행되는 중세 건축물 재건축



ㆍ저층 공동 주택



이번 독일 건축 소테마 여행에서는 건축을 전공하고 평생을 업으로 살아온 나보다 오히려 아내가 더 적극적이었다.

언젠가는 꼭 지어야 할 양평 전원주택을 생각하며 입면과 평면, 세부 디테일까지 꼼꼼히 살피고 촬영하는 아내를 보며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나도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마침 선배언니 딸이 얼마 전 아파트를 구입해 현지 아파트를 직접 둘러보며 평소 궁금했던 사항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중세와 근대 그리고 현대의 건축물들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고 아내는 특히 심플하면서도 실용적인 바우하우스 건축에 흠뻑 빠진 듯했다.





여러 가지 주변상황과 체력을 감안해 보면 이번처럼 장기간 여러 곳을 다니는 자유여행은 앞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건강과 나이 그리고 여건에 따라 바뀌긴 하겠지만 가고 싶은 여행지가 아직 여러 곳 남아있다.



그 계획들이 이뤄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이번 여행에서도 창피를 무릅쓰고 셔플 댄스를 추는 모습과 룩셈부르크 엘리베이터 전망대에서 피아노 치는 나의 동영상을 열심히 촬영해 준 아내가 고맙다.

나의 영원한 여행동반자인 아내가 앞으로도 늘 건강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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