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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이 밤이 마지막이기를

by 이야 아저씨


언제부터인가 잠자리에 들면서 매번 기도를 한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기를~~, 이대로 영원히 잠이 들기를~~"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고 눈을 떠보면 새벽녘이나 아침이다.

기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 실제로 하느님은 나의 기도를 잘 들어주시지 않는다 - 새로운 하루를 더 보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활기차게 또 하루를 맞이한다.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핵심요소 중 하나가 수면의 질과 시간이라고 한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성인인 경우 최적의 수면시간은 7시간 정도.

갓 태어난 아기는 18 ~ 20 시간이라고 하니 수유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잠을 자는 동안 성장을 하고 신체적 심리적 회복도 이루어져 다음 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그래서 수면시간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줄어들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불면증으로 못 이루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잠자리에 들어서 끊임없이 떠 오르는 잡생각이나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주요 원인일 것이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걱정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90% 이상 일어날 확률이 없다고 어느 심리학자는 말했다.

하지만 일반인들로서는 그 걱정의 고리를 끊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나도 한때 불면증으로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

40년 전, 1986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수도인 리야드 병원현장에서 해외근무를 할 때였다.

현장도착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싶으면 출근 사이렌이 울렸다.

시차문제도 있었겠지만 낯선 환경에서 처음으로 접해보는 해외현장 업무에 대한 걱정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로 돌아버리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었다.



이역만리에서의 생활, 중동지역의 낯선 환경, 영어로 된 서류들과 외국인들과의 언어소통등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보름정도 불면증에 시달리다 마침내 이틀 동안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보름동안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에서 하루 15시간 근무를 했다.

그러니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고 만 것이다.


영양제 주사를 맞으며 이틀을 앓고 난 후에야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고 해외현장 업무에 조금씩 적응해갈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내일 업무에 대한 생각과 걱정들이 잠자리에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이나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시기에는 불면증보다는 잠 부족에 시달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건강이상이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주말이면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오전 늦게까지 침대 속을 떠나지 못한다.


그런데 나이가 50대를 넘기 시작하면 잠 못 이루는 밤이 서서히 늘어난다.

나이 듦에 따른 원인도 있겠지만 떠 오르는 생각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기를 지나 이젠 과거도 둘러보고 미래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 이것저것 떠 올리다 보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내일은 뭘 해 먹지? 를 고민하며 아내는 밤을 꼬박 새운다고도 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과 밤새 꿀잠을 잔 사람은 아침에 모든 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꿀잠을 잔 사람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지만 잠을 설친 사람은 얼굴이 꺼칠하고 푸석푸석하다.


불면증까지는 아니라도 나도 가끔씩 잠들기 어려울 때가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쉽사리 잠은 오지 않는다.

몸과 마음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왜?

역시 쓸데없는 잡생각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 어머님이 살아생전에 자주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자는 듯이 가 버려야 할 텐데 ~~"


10년 이상 병원 침상에 누워 계시다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

자는 듯이 떠나시는 소원을 이루지는 못하셨지만 마음속 걱정거리는 없이 가셨을 거라는 생각은 늘 했었다.



그런 연유로 자는 듯이 가는 것이 어느덧 나의 바람이 되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오복중 하나가 질병이나 고통, 사고 없이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네 가지 복은 장수, 재화, 건강, 베풀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 하는데 이것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편안한 죽음이란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와야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말은 쉽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을 생각해 보면 쉽사리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내가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스럽고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슬픔에 잠기겠지만 그것들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그리움이란 것이 남겠지만 그것은 삶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치유될 수 있는 것이란 말도 있다.

나로서도 인간의 노력만으로 누릴 수 없는 오복중 하나를 누리고 어머님 말씀대로 자는 듯이 가는 것이니 손해 볼 일은 없는 듯하다.



무튼 잠들기 전 기도 덕분인지 요즘은 어렵지 않게 잠이 든다.

적정 수면 시간은 아니더라도 수면부족으로 고생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대감에 마음이 설렐 때도 있다.

누군가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금기나 마찬가지다.



요즘 아내가 부쩍 잠을 설치는 듯하다.

여행의 피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쓸데없는 생각들로 잠을 못 이루는 것 같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의 비법을 조심스럽게 전수해 주었다.


"잠자리에 들 때 이 밤이 마지막 밤이기를 기도하라고~~~"


아내가 모든 걱정을 떨쳐 버리고 숙면을 취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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