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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Apr 12. 2022

사라져 버린  풍경들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


과거의 것을 좇아하려는 "레트로(retro) "가 열풍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복고풍이  적잖이 나타나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미디어인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우리나라의 오징어 게임 드라마가  한때 세계적으로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의 인기로  인해 옛날 아이들의 주된 놀이 중의 하나였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뜬금없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오징어 게임에서  나오는 달고나  만들기가 청소년층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달고나를 직접 만들어 보려는 과정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화상을  입었다는 기사도 있었고, 영원한 백수의 의상이었던 체육복 패션이 세계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실 옛 것을  기억해내고 꾸준히 지켜나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사회와 생활환경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과거의 것들은 늘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사라져 간다.


그러다  어느 날 기억 속에  묻혀 사라졌던 것들이  방송을 통해서나 책을  읽는 과정에서 문득  되살아   때,  반가움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기도 한다.


"아~  그래.

  시절에 저런 게  있었는데~~"

하며  과거의 추억에  잠긴다.



사람들마다 그와  관련된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다시  떠  올리고 싶지  않은 애잔한 기억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잊혔던 옛날의 풍경들이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리라는 마음에  사라져 버린  풍경들을 하나 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본다.



#풍경  하나.

"담배연기  자욱한  영화관"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만,  6~70년대만  해도 영화관이나 고속버스,  기차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흡연이  가능했다.

좌석 팔걸이마다 재떨이가  달려 있었고  성인이면 누구나 실내 흡연이 가능했다.

비행기나  고속버스에서는 그나마 뒷자리가 흡연석이어서 그런대로  담배연기를 참을 만 했

었지만,  영화관이  문제였다.

영화관 곳곳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냄새는 차치하고라도 뿌연 담배연기가 스크린을 흐릿하게 가리기도 했다.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인  듯하다.


#풍경  둘.

지금은 세계 무역대국 10위의  위상을 차지하는  대한민국.

한때는 성인용 가발이 수출 목록 1,2위를 다투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님이  주로  사용하는 재봉틀  서랍에는 늘  긴 머리카락  뭉치가 있었다.

머리를 빗고 나서 나온 머리카락을 장사꾼에게 팔려고 모아두는 것이라 했다.

집에  있다 보면 가끔씩 골목을 누비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장 난  시계나  머리카락  삽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

엄마  몰래  팔아 버릴까? 하고 수십 번 망설이지만,

한 번도  실행을  못해 봤다.


#풍경  셋.

"설날  복조리  팔기"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정해진 금액의 용돈이  없던 시절.

설날은 일 년 중에서  그나마 아이들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부모님이나 친지 어르신들께  세배를 하고 받는 세뱃돈은 아이들에게 비상금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에 더하여 좀 더 부지런한 학생들은 설날 복조리 팔기를 했다.

미리 복조리  팔 집들을 사전에  정하고, 집집마다 답사를 하며 던져둘 곳을 미리 확인을 한다.

그 후 복조리 가게에  가서 필요한  만큼 구매를 하고,  설날 새벽녘에  미리 답사한 집들에 "복조리요!"하고 외치며 복조리를 마당에  던져 넣는다.

설날 아침나절에 가족과 친지들에게 먼저 세배를 하고 난 후  오후쯤에 복조리 값을 받으러 간다.

복조리를  던진 집집마다 들러 새해인사를 한 후  복값을 받으러 왔다고 하면 대부분은 복조리 값을  흔쾌히 내어준다.

물론 복조리가 여러 개 들어온 집이나  성격이 까칠한 어른이  있는 집에서는 허탕을 치기도 했지만 세뱃돈을 훨씬  웃도는 수입을 챙기곤 했었다.


#풍경  넷.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 "

먹고살기에  바빠  별다른 동네 행사가  없던 시절에 오일장이 서는 날은  축제와 다름없었다.

시장  골목골목마다 좌판이 길게 늘어서고  기존 가게에 더해서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행상도  나래비로 시장 모퉁이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한 몸에 받았던 것은 널찍한 시장 공터에서 벌어지는 각종 차력 시범이었다.

웃통을  벗은 근육질의 남자가  입으로 불을  뿜어대고, 이빨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린다.

목젖 밑에 철근을 대고 구부리기를  하는가 하면 배 위에 바위를  올려놓고 해머를  내리쳐 깨뜨리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할 수 없는 다양한 묘기들을 선보이면 주변을 둘러싼 관객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몇 가지 묘기를  선 보이고 관객들의 호응이  극에 달할  즈음  마지막 히든카드 묘기를 예고하며  약을  팔기  시작한다.

회충약을 팔기도 했고  한 알만 먹으면 모든 병을 치료한다는 만병통치약을  팔기도 했다.

의심스러운 점은  있었지만, 공짜 구경은 없었기에  많은 구경꾼들은  흔쾌히 주머니 쌈짓돈을 털었다.

약장사를  시작하며 하던 말,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는 그때 당시 전국 시장통 약장사들의 공통 언어였다.


#풍경 다섯.

"호외요  호외"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SNS가  없던 시절에는 나라를 뒤 흔들만한 뉴스가 나오면 속보 형식으로 거리에 호외 선전지를  뿌렸다.

조간이나 석간신문이 나오는 사이에 긴급 알림 형식으로 신문 배달원들이 큰 소리로 "호외요 호외"를  외치며 선전지를 거리에  마구 뿌려대던 시절이  있었다.


#풍경 여섯.

"거리의  야바위꾼"

기차역이나 버스역 앞에는 대부분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야바위꾼들이  있었다.

경찰이나 단속반원들이 오는 것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보통은 육교 위에  자리를 잡고 야바위 판을  벌였다.

장기놀이 야바위, 주사위 놀이, 주사위가 숨겨진 컵 찾기 등 종류도  아주 다양했다.

내 건 돈의 다섯 배를 준다는 말로 행인들을 유혹하고 바람잡이를 이용해 쉽게 돈을  따게  만든다.

행인들은 한참을  지켜보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덤벼들어 보지만 대부분  주머니를 털리고 후회하며 뒤돌아  선다.

아쉬움만 남게 했던 서민들  주머니 털이범인  야바위꾼들.


#풍경 일곱.

"버스 안내양"

옛날에는 대중들이  이용하는 모든 버스에 안내양이  있었다.

그중에서 고속버스 안내양은 지금으로 보면 스튜어디스나  마찬가지로  버스 안내양 중에서도 가장 선호도가 높은 직종이었다.

등하교나  출퇴근 시간의 시내버스는 지금의 지옥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엄청나게 붐볐다.

버스 안내양의 주 업무는 승객들을 최대한 많이  버스에 태운 후  "오라이"를 외치고 버스를 출발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승객이 내릴 때  일일이 요금계산.

돈 주머니 한가득 동전을 넣고 승객  관리하랴, 요금 계산하고, 거스름돈까지  빈틈없이 돌려주는 것을  보면 그 당시의 버스안내양,  그녀는 슈퍼우먼이었다.


#풍경 여덟.

"찹쌀떡~~, 메밀묵~~."

늦가을, 날씨가 조금 선선해질 무렵, 이슥한 밤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였다.

저녁  먹은 시간도 좀 됐고, 잠자기에는 뭔가 조금 허전한 시간에  맞춰 들려오는 소리를  차마 외면하기가  쉽진 않았다.

선선한 밤에 메밀묵 한 덩어리는 온 가족의 허기를 달래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야참이었다.


#풍경 아홉.

"일제와 군국주의 시대의 잔재물(?)들"

ㆍ국기하강식

해질 무렵 애국가와 함께 태극기 하강식이 시작된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경건하고 올리고, 제복을 입은 군인이나 경찰들은 거수경례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ㆍ영화  시작 전  애국가와 대한 뉴스

영화 시작 전에는 반드시 한반도의 풍광과 함께  애국가가 울렸다.

관객들은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기립 상태로 있었다.

애국가가 끝나고 대통령 동정과 국정 소식을 알리는 대한뉴스가 나오면 그제야 관객들은 착석할 수 있었다.


그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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