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 행정기관을 행정수도인충청남도 세종시로 옮기는 대역사의 현장에 처음으로아파트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지금은 완벽한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했지만, 현장 부지 견학차 세종시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광활한 면적의 부지를조성하는 사업만이 한창진행 중이었다.
2022년 세종시 전경 하나
그야말로 휑한 땅에 건설장비만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황무지 그 자체였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대부분 많은 고생을 할수밖에 없다.
이전까지 많은 아파트를 지어 봤지만 대부분 도심이거나, 신도시더라도 기존 도시 인근이라 크게 힘들진 않았지만 세종 현장은다소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2010년 초 현장초기 전경
현장 인근에 도시기반시설인 전기, 상ㆍ하수도,통신 시설이 전혀 없어 전기와 통신시설은 1.5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간신히 끌어 와야 했다.
지하수를 파고 정화조 시설을 완료 후, 현장 사무실과 화장실, 근로자 샤워실 그리고 식당을 지었다.
근로자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조건과착공 준비는 완료!!!
공사 착공 준비 과정에애로사항이많았지만, 수행과정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심지어 행정도시 이전 문제 원점 검토로 인해 직원 전원 철수도 검토되곤 했었다.
세종시 호수공원에서 본 도심야경
우여곡절 끝에 착수는 되었지만 주변에 숙소가 없어 건설 기능공 수급이 일단 만만치 않았다.
또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초기 현장 기선 제압을 위한 강력한 건설노조들로 인해 여러 번 고발을 당하고벌금을 물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면 주변에 민가가 없어 공사현장 건설장비 소음에 대한 민원이 없고, 주변에 금강과 계룡산이 가까워친환경 조건이 좋았다.
현장초기 안전기원제
한마디로 하면그때만 해도 세종시는 시골 그 자체였다.
식사는 대부분 함바식당이나 숙소 인근 식당에서 직원들과 해결하고, 외부 손님들이 오면 현장 주변 10킬로 반경 인근에 있는시골 맛집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는도시의 바람도 쐴 겸대전시유성 관광특구에나갔었다.
"일은 세종 현장에서 만남과 회식은 유성에서~~"
주 업무는 현장 공사 수행이었지만 가끔씩은 회사 영업업무를 위해서 대전 소재 인근 대학을 방문하고 지인들과 유성에서 자주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두세 번은 유성에 나가게 되었고, 술을 마실 때는 모텔에서 숙박을 하기도 했었다.
세종시공사현장에서 3년을 지내는 동안 당연히 유성은 요즘 시쳇말로 "나의 구역"이나 다름없었고 웬만한 음식점은 거의 꿰어 차고 있었다.
2012년 5월, 30개월의 사투 끝에 봄꽃이 화창하게 필 무렵 아파트 현장 준공을 무사히 끝내고 서울에 있는 현장으로 다시 부임을 했다.
그 이후 10년이 조금 넘게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유성의 모텔을 전전하고 있다.
바뀐 회사에서8월 17일부터 5년 정도 기간이 소요되는 사업의 책임자로 다시 세종시로 부임을 하게 되었다.
2022년 세종시 전경 둘
9월 초 세종시에 있는 숙소에 입주하기 전까지 보름 정도의 공백이 있어 모텔 생활이 불가피했다.
승용차 트렁크에 일주일치 옷과 생활도구들을 챙겨 싣고 퇴근하면 유성과 동학사 인근에 있는 모텔에서 매일 짐을 풀었다.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옛날에 놀았던(?) 골목들을 배회하며 식사도 하고 가끔씩은 혼술을 하기도 했다.
유성골목에 있는 음식점
변한 것도 많지만, 구석구석 그때 당시의 추억이 깃들어 있던 곳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했다.
일정한 주거도 없이 유성과 동학사의 모텔촌을 전전하며 보름 정도 떠돌이(친한 벗은 "낭만가객"이라고도~~)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익숙한 곳에서 10여 년이 흐른 후 옛날의 정취를 느끼며 생활해 본다는 것이 나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계룡산 동학사 인근 식당가
"다른 나라에서 보내는 이틀은 익숙한 환경에서 보내는 30일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어느 극작가의 말처럼 낯설고 이색적인 곳을 여행하는 즐거움은 무엇에도 비할 바 없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추억이 있는 곳에 다시 와 생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즐거운 마음으로오늘은 오랫동안 유성을 지키고 있는 제주도 흑돼지 집에서 호기롭게 소주 한 병을 시키고 혼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