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아저씨 Dec 17. 2022

모과 향기~~~

본분 다하기.


공주에서 제법 유명한 짬뽕집에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오랜만에 들러 봤다.

식당은 12년 전과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대기번호를 받고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짬뽕을 먹을 수 있었다.


짬뽕 맛이 대부분 거기가 거기여서 예나 지금이나 특별하게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맛이 조금 매콤하거나 국물이 색다르게 차별화가 되면 맛집으로 주변에 소문이 나는 것 같다.


이 가게는 담백하게 매운맛이 특징이어서 면을 먹은 후, 밥을 말아서 먹는  손님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매장에는 공깃밥 메뉴가 없어 손님들이 직접 햇반을 가져온다.

"얼큰한 짬뽕국물에 햇반이라~~."


다음번엔  꼭 햇반을 지참해 직접 국물에 말아서 먹어 보리라 내심 다짐하며 식당 문을 나섰다.


식당 뒤편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타기  전, 문득 모과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마다 모과 열매가 주렁주렁 많이 달려 있었고 나무 밑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얼마 전 아내가 세종시  숙소에 들렀을 때 했던 말이 문득 떠  올랐다.


"숙소에 뭔가 아저씨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나름대로 냄새에 조금 민감한 나로서도 한 달 동안 살면서 별 다른 냄새를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숙소에서 음식은 전혀 해 먹지 않았고  매일 충분한 시간 동안 환기를 해서 당연히 잡냄새 Free-Zone이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혼자 사는 홀아비 냄새를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난 김에 모과나무 밑으로 걸어가 나름 예쁘고 잘 생긴(?) 것들로 3개를 주워 숙소에 가져다 놨다.


향기없는 모과


예부터 못생긴 사람을 지칭하는 과일의 대명사가 모과였다.

채소의 대명사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호박".


호박이나 모과를 요리조리 아무리 뜯어봐도 못 생긴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지금도 사실 잘 이해는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과가  색깔을 노란색으로 바꾸며 품어내는 은은한 향기는 실내  천연 방향제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인공 방향제가 종류도 워낙 많고 다양해서 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차량 뒷좌석  뒤편에 모과를 담은 바구니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도 기회가 되어 모과를 볼 때면 따서 차 실내에 두곤 했다.

그러면 한두 달은 은은한 모과향  덕분에 차를 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숙소  싱크대 선반 위에 가지런히 화장지를 깔고 모과를 올려놓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지고 기대감이 생겼다.


"이제 며칠 후면 온 집안이 은은한 모과향으로 가득하겠지?"


그 이후 퇴근해서 숙소에 들어갈 때마다 코를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아봤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록 모과 향기가 나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면 노랗게 색깔이 변하면서 향기가 날 거야!!"라며 애써 실망감을 감추고 기다렸지만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향기는  고사하고 모과는  점점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은은한 모과향을 기대할 수 없어 버리기로 결정을 하고 시간이 되는 대로 방향제나 하나 사서 놓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생각지도 않았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다리 수술을 했다.

퇴원 후 깁스를 하고 또 한 달 동안 목발  신세를 지다 보니 방향제  구입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주전 깁스를 푼 후, 목발을 던져두고 조심스럽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되어 직원들과 점심식사 후 세종시 한옥마을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 들어선 순간 왠지 익숙하고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살짝 스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과 향기~~~~"


오랜만이지만  바로 모과 향임을  알 수 있었다.


카페 카운터 위 바구니에 농익은 노란 모과가 수북이 담겨 진한 향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카페 사장님께 부탁을 해 간신히 모과 두 개를 얻어 가지고 왔다.


모과향이 없어  치워 버린 그 자리에 새로 얻은 노란 모과를 갖다 두었다.


향이 진한 모과


벌써 숙소 가득  은은한 모과 향기가 가득 차는 느낌이다.


오늘은 금요일.


주말 동안은 남양주에 있는 집으로 간다.


이틀 후, 다시  돌아왔을 때 모과향이 숙소에 가득할 것이다.


얼마 전 숙소에 두었던 향기가 나지 않는 모과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아내는 "요즘 향기가 나지  않는 모과도 있대"

라고 내게 말을 했었다.


"모과의 역할은 향을 내어야 천연 방향제로도 쓰이고 차로도 마시는데, 모과향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모과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예전에 모과는 모두 향기가 있었는데 왜 그런 향기 없는 모과가 생겼지?"


삼라만상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본연의 역할이 있다.

그 본분을 못 한다면 이름과 존재도 사라져야 는 게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이전글 관면 혼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