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아저씨 Jan 13. 2023

누가?  설날을 없애려고 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어린  시절 가장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은 무엇이었을까?


설, 정월대보름, 단오, 추석, 한식,  그리고~~??


먹거리가 넉넉지 않은 시절에 명절은 특별히 준비한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즐거운 날이었다.

그래서  명절은 누구에게나 기다려지는 날이었고 특히 설날은 어린이들에게 단연코  최고의  날이었다.


왜일까?

단연코 "세뱃돈"을 받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6~70년대만 해도 학교나 공부에 필요한 돈 이외에  아이들  호주머니에 현금이 채워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집안에 손님이 오셔서  용돈을 주시는 경우나, 가끔 심부름하고 남은 잔돈갖는 경우를 제외하고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조선은행 발권 옛날 지폐


그러다 보니 공식적으로 세뱃돈을 받아서 쓸 수 있는 설날이 얼마나 기다려졌을까?


물론 세뱃돈이 다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저축한다는 명목으로  대부분은 어머님께 강제적으로 보관(?)기 일쑤였다.

그래서 세뱃돈으로  받은 금액을 최대한 축소하여 말하고 나머지는 비밀장소에 숨겨 두고  조금씩 꺼내 쓰곤 했었다.

어머니 몰래 숨긴 돈많을수록 흐뭇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님은 알면서도 흔쾌히 속아주셨던  것 같다.


한국은행 발권  옛날 지폐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국가지정  공휴일인 "어린이날"보다  더 기쁜  "설날"명절을 나라가 빼앗아 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

50대 미만의 세대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오래전 일이라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에선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신정, 양력설을 유난히 강조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이나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았다.


일제강점기 이후로 설 명절이 공휴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음력을 바탕으로 한 설명절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양력 1월 1일 설을 쇠는 것으로 강제되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도,  없는 나라 살림에 설을 두 번 쇤다는 이중과세 또는 일제의 잔재의식 때문인지 설명절은 공휴일 지정조차 되지 않았고, 양력설을 쇠게 하기 위해 강제적인 조치가 취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관습과 전통을 어찌 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여러 규제에도  불구하고 설명절에는 여전히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한 불편으로 설날 때마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다다랐다고 한다.


1985년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마침내 하루가 공휴일로 지정 됐고, 4년 이후 1989년에 설명절 공휴일로 3일이 지정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한 노릇이지만, 일제강점기가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양력설이 정착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설날이 공휴일로 인정받기 전만 해도 "우리 집은 양력설을 쇠고,  누구 집은 음력설을 쇈다!!" 하여  세배를 어느 때 해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일 년 내내 설날만 고대하던 아이들은 어른들께 세배를 못하게 될까  수없이 가슴을 졸이던 시절이었다.


어찌  어린이뿐이었으랴!!


부모님과 어르신들의 주머니사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사연을 뒤로 한채, 새해 인사를 두 번씩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설날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가장  큰 명절이  되어있고 세배를  하는  날의 기준노릇을 아직도 꿋꿋이 하고 있다.


세뱃돈  풍습이 남아  있는 한 설날명절은 대대손손 영속하리라 생각하며  며칠 후 다가올 설날이 마냥  기대되고 즐겁기만 하다.

더구나 올해 설날에는 처음으로 세뱃돈을 줄 수 있는 외손녀도 있지  않은가!!


대화가 필요해~~


예전에는 국가 지정 공휴일에 오전에 학교에 가서 기념식행사를 한 후 마지막에 기념일 노래를 제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만은 많았지만 출석 체크를 하는 바람에 이익이 두려워 어쩔 수없이  참석을 했었다.


양력설  쇠는 것을 강요하던 당시 기념식장에서 "새해의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새해의 노래.


온겨레 정성덩이 해되 오르니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정겨운 전통 설날 노래인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보다는 왠지 구시대의 잔재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작가의 이전글 인생 1막, 필부의 삶이 이만하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