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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Aug 23. 2019

2019년 8월 23일(처서)

마지막 여름 나기

8월 21일 처서 이틀 전.

저녁 무렵 아내의 눈치(ㅇㅇ)를 슬슬 보면서 묻는다.


"여보 에어컨 켤까?"


내일, 모레가 처서이고 언론에서는 처서를 기점으로 더위가 한풀 꺾이고 열대야가 사라진다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만 아직도 아파트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하루를 견딘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아파트 외벽 에어컨


올 한 해도 예년처럼 무척 더웠고, "더운데 어떻게 지내세요?"가 만나는 사람들의 첫인사가 되었다.


7월 초순부터 시작된 더위가 지금까지 계속되더니 그저께 밤부터 그나마 열대야는 조금 사라진 듯이 느껴졌다.


거기서부터 평범한 민초(民草)의 고민은 시작된다.




"에어컨을 계속 켤까???  말까???"


몇 년 전부터 계속되는 하절기 폭염으로 냉방 전기료 가격을 내렸다고는 하지만 가정에서 에어컨을 마음 놓고 켜기에는 항상 주변의 눈치가 보인다.


전기료도 문제이지만 아직도 에어컨은 사치품의 일종인 것처럼 느껴지고, "마구 쓰면 산업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무더위에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잤다고 하면, 부모님들이나 주변 어르신들은 내가 참을성이 부족하고 사치스럽게 사는 듯이 말씀들을 하시고 괜히 아내만 생활을 헤프게 하는 여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잠을 자는 동안 에어컨 가동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죽부인, 얼음물주머니 끼고 자기, 대나무자리 깔기, 목침 사용 등 오만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하기도 했다.


여름용 얼음물주머니, 죽부인 대용 쿠션(대나무 죽부인은 가시에 찔리는 경우가 많아서 ~~)


이제는 자가용 없이는 모든 사회, 경제적 활동을 못하는 시절이지만 아직도 자동차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으로 차량 구매 시 차의 등급에 따라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처럼, 가정에서 에어컨을 마구 쓰는 것은 대표적인 과소비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형님 댁이나 처갓집에도 거실 구석에 버젓이 에어컨이 놓여 있지만 거의 장식품일 뿐이다.

가족모임이 있어 집안에 여러 사람이 모일 경우에만 한, 두 번씩 잠시 가동할 뿐 어른들만 계실 때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거의 켜지를 않는다.


심지어는 집안이 시원하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우리 집은 선풍기로 충분하다"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실제 하루 종일 있어보면 더위가 부모님의 집들만 피해가지는 않는다.




몇 년 전 무척 더웠던 여름에 대만을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폭염과 함께 에어컨 사용에 따른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로 한참 시끄러울 당시였다.

상가나 공중시설은 에어컨 사용 온도를 제한하고, 에어컨 가동 후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상가를 단속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관공서에 가보면 에어컨을 틀지 않아 공무원들이 근무를 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고, 더위로 인해 생산성이 극도로 떨어질 때였다.


알다시피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더 덥고 습한 기온을 갖고 있는 나라지만, 여행 내내 4일 동안 특별히 덥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물론 습도와 기온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았지만, 지하철 승강장이나 쇼핑센터, 대중들이 이용하는 대형시설물이나 상가에는 늘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고, 심지어 길거리의 가게들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장사를 해서 도로변을 돌아다닐 때도 상가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 덕에 시원함을 느끼곤 했다.



타이베이 장개석 기념관(대만)


그래서 야외 관광지를 도보로 걸어 다닐 때만 더위를 느꼈을 뿐, 이외의 시간이나 장소에서는 더위에 대해서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동남아 국가(일본,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를 출장이나 여행을 다닐 때도 특별히 무더위로 인해 고생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도 낮고, 원자력 발전소도 적고, 전기생산량도 낮은 나라, 심지어 사계절 무더위와 높은 습도가 일상적인 나라에서도 에어컨 가동을 부담 없이 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가정에서 에어컨을 마음대로 켜지 못할까?  사계절도 아니고 겨우 여름 두 달뿐인데~~!!"


아직도 풀리지 않는 기분 나쁜 수수께끼지만, 해마다 다가올 여름 무더위는 올해보다 더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젠 여름이 온다는 것이 미리 두렵기만 하다.


드디어 오늘 처서.......


어제부터 바람이 습기를 조금 덜 머금은 듯하더니, 오늘은 햇살이 따갑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은 등허리에 땀이 조금 맺히지만, 여름의 무더운 햇볕이 아닌 "처서"의 따가운 햇살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너무나 반갑기만 하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보이는 처서의 하늘



내년 여름에는  모든 민초들이  이왕 있는 에어컨을 마음껏 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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