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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Aug 23. 2018

아니오, 저는 상대주의자가 아닙니다.

강자의 언어로서의 상대주의에 대해.

다름에 대한 인정, 타인에 대한 존중,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문화적 다양성, 상대주의적 관점.

더불어 사는 미래를 위해 지향해야 한다고 알려진 사회문화적 가치들로서,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 단어들이다.


모든 다름은 인정받아야 하는가? 모든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가? 모든 의견은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 문화들 사이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 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의 대답은, '상대주의적 관점은 강자의 언어'이다.

모든 것은 동일하게 옳지 않고, 동일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강자의 언어는, 유일신의 언어이고 남성의 언어이다. 그것의 사용자는 스스로를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으며, 그의 판단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에 근거한다. 따라서 그 언어는 모든 심판에서 자유롭다. 이러한 절대성은, 상대주의적 원칙에 의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보호받는다.


강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다. 그의 언어는 상대주의에 기반한 정치적 올바름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주류 - 심지어는 적지 않은 수의 비주류까지 포함하는 - 의 지지를 늘 확보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에 의하면, 강자와 약자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전복될 수 있는 임시적/순간적 위치에 불과하고, 구조적 차별이라 일컬어지는 부분들은 차이를 차별로 오해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에 의하면, 현대 사회가 아직 완전히 평등한 것은 아닐지라도, 개개인의 삶의 수준과 모습들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조건들보다 후천적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때문에, 우리가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오해로 인한 역차별이지, 역차별이라는 단어의 존재를 가능케 한 차별이 결코 아니다 (그들에 의하면, 차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역차별은 실존할 수 있다. 역차별은, 차별이라는 환상의 피해의식에 근거한 비 상대주의적 폭력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강자의 언어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은 편하고 안락하다. 문법적 섬세함을 갖출 필요도 없고, 타인의 문장을 자세하게 읽을 필요도 없으며, 심지어는 일관된 논리를 견지할 필요도 없다. 강자의 언어를 위한 도구들 - 사회, 문화, 종교, 정치, 과학, 윤리... - 은 언제든지 강자의 언어를 뒷받침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저 필요에 맞게 다양한 도구들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이야기를 쏟아내면 된다. 중간중간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혹은 관점의 차이 등의 단어를 섞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에 화룡점정이다. 한 손에는 생물학적 차이와 통계 자료 - 이른바 '과학 지식'을, 다른 손에는 의견의 자유와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사회적 가치'를 쥐고 있으니, 무척 세련되게 들리는 그 언어와 맞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금과옥조 같이 여겨지는 규칙 자체들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이상.


상대주의는 우리에게 동등함을 가르쳐주지 않으며, 과학지식은 우리에게 절대적 지식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 전자는 차별을 공고화하고, 후자는 강자에게 무기를 제공한다.


누군가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고 할 때, 남성 또한 얼마든지 차별을 당하고 약자가 될 수 있다고 할 때, 역차별을 주의해야 한다고 할 때 ; 혹은 누군가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그와 같은 구조를 빌어 이야기할 때 ; 혹은 누군가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그와 같은 구조를 빌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당신은 틀렸다'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의견은 차별과 혐오에 기반을 둔 것으로, 그를 가진 자는 존중받을 권리가 없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로 인해 옳음과 그름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판단에 대한 임시적 보류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임시적 판단이지, 동의하지 않음에 대한 동의가 아니다.


혐오하는 자들을 차별해야 한다. 상대주의는 우리의 무기가 아니다.





To the author of "Situated Knowledge", Donna Har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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