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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Aug 21. 2018

아니오, 나는 당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닙니다.

'남자끼린데 뭐 어때'라고 말하는 저질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YES라고 명백히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면, 혹은 애당초 상대의 의사를 분명히 묻지 않았다면, 기본적인 세팅은 NO인 거다. 그리고 그 YES는 언제 어느 순간에든 취소될 수 있다.


정말 간단한 거니 기억해두자.

"명시적인 동의가 오가기 전까지 기본적인 세팅은 NO인 거다. 그리고 YES 이후에도 언제든 다시 NO를 외칠 수 있다."

당연하다.


이미 큰 물살이 지나가고 조금은 잠잠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MeToo 운동이 일어난 이후, 위와 같은 내용들의, '고발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팁'류의 글이 많이 쓰이고 읽혔다. 예를 들어 마치 'Dwayne “The Rock” Johnson'을 대하는 것처럼 여성을 생각하라는 이야기나 (https://goo.gl/Bq6z25), '그 인간(that guy)'가 되지 않기 위한 팁이라던가 (https://goo.gl/rqDoFo), 특히 직장에서의 최소한의 예의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https://goo.gl/BX9HAJ).


이런 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자 가장 놀라운 점은 제안하는 팁들이 정말 너무 당연하고 기본적인 내용이라는 것이고, 다음으로 충격적인 것은 이런 글들에 대한 반응이다. '여성과 이야기할 때 상대의 가슴을 보지 말고 눈을 보라'던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상태가 성관계에 대한 동의는 아니다'라던가, '직장 동료를 외모가 아닌 업무 능력으로 판단하라'던가. 아니, 21세기 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지, 이건 거의 원시 시대의 야만 상태인 짐승들에게나 해야 할 얘기 아닌가.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그건 그냥 내 바람인가 보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저런 글에도 엄청난 수의 트롤들이 달려든다고 하니 (https://goo.gl/F3iexC). 아니, 다른 사람의 말을 수시로 끊거나 타인의 외모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거참, 그런 일에 부지런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트롤 짓도 부지런해야 하는 거다. 검색하고 쫓아가서 리플 달고 하는 것이 그냥 자동으로 되는 일이 아니잖는가).


하긴, 세상에 어느 무엇도 모든 사람에게 당연한 것은 없는 거다. 심지어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가 겪게 되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조차 의견이 분분하니, '평등'과 같은 최신 개념들에 대해서야 오죽할까. 어떤 이들에겐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다른 어떤 이들에겐 상대를 차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 있겠지.


하지만 후자의 그룹이 '문화적 차이', 혹은 '사상의 자유', 또는 '상대주의적 관점' 등을 핑계로 보호받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21세기의 첨단 문화/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그 정도로 무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극단적 예를 억지로 찾아 들이대며 모두가 문명의 혜택을 받는 건 아니고 어쩌고 하는 소리는 하지 말자. 정보 통신 기기로 인터넷에 접속해 블로그에서 한국어로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본인이,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 극단적 예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당신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서두에 소개한 저런 글들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만큼, 마음이 조금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론 물론 인류의 절반이 오랜 시간 동안 당해온 폭력에 대한 생각에, 다른 한편으론 저런 글들의 대상이 되는 집단에 우얏든 소속이 되어있다는 사실로 인해. 놀라울 정도로 만연한 불평등 덕에 눈에 띄는 불이익을 보는 것은 솔직히 이야기해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덕 별로 보고 싶지도 감사하지도 않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그러한 불평등의 덕을 보고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남성들이여,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이 억울하거나 속상하지 않은가 (내가 이야기하는 '정상인'에 대해서는 내 다른 글, '혹시, 페미니스트세요?'를 보라)? 이성이라는 존재는 성적인 대상으로 밖에 보지 못하고, 교육받은 두뇌가 아니라 '수컷의 본능'으로 생각하는 짐승으로 취급당하는 것에 화가 나지 않는가?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우리가 그런 취급을 받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바로 '그 남성'들에게, 마치 우리가 자신들과 비슷한 종류의 동물인 것으로, 자기들과 같은 편의 존재로 여겨지곤 하는 것이 진저리 나지 않는가 말이다.


정상적인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은 남성들이여, 저 못난 인간들로부터 '남성'이라는 타이틀을 빼앗아 올 것을 그대들에게 제안한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자에게 '아니오, 정상적인 남자는 그러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것을, '남자끼린데 어때'라고 말하는 자에게 '아니오, 당신은 정상적인 남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것을 제안한다. 그들의 얼버무림에 눈치 보며 장단을 맞춰주지 않고, 분명히 선을 긋고 거리를 둘 것을 제안한다.


남성은 '일반 남성'과 '일부 페미'로 구성되어 있는 집단이 아닐 수 있도록 바꿔가자.

'정상적인 남성'과 '일부 여성 차별 주의자'로 나누어지는 집단으로 바꿔나가자,

읽고,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가자.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여성들에게 동등하게 성숙한 사회 구성원 - 짐승 혹은 미개인이 아닌 - 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소망하며 조금씩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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