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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Aug 24. 2018

파리, 지하철, 20180823.

일상적 사진 #2

누가 내게 가장 도시적인 공간이 어디라 생각하냐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지하철 역이라 대답할 것이다. 무척 기능적이지만 늘 효율적이지는 않고, 구불구불하게 연결된 길들, 어디론가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많은 사람들, 서로에 대한 가장된 무관심들, 매일 같이 지나다니는 길들에 대한 무관심한 표정들, 하지만 복잡함에 수반되는 약간의 불안함으로 인한 경계하는 눈빛들. 출퇴근 시간에 맞춰, 그리고 열차들의 도착/출발 시간에 맞춰 늘어나고 줄어드는 행인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리듬. 딱히 싫지도 좋지도 않지만 정확한 스케줄이 비교적 보장되는, 약간의 불편함과 북적임을 견딜 수 있다면 그보다 조금 나은 편리함이 보장되는 곳. 현대적인 도시들이 내게 주는 느낌들과 무척 흡사하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도시들에서는 늘 관광객의 신분으로, 출퇴근 시간을 비껴서 지하철을 타려고 노력해왔지만, 나 또한 일상인들 중 한 사람인 이곳 파리에서는 물론 내 마음대로 열차를 타는 시간을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시간대의 파리 지하철은, 아무리 삶의 조건들에 대해 딱히 불평불만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라도, 생각만으로도 큰 미소가 떠오르는 종류의 경험은 결코 아니다. 정말 복잡하다.


하지만 시간대를 잘 맞춘다면 - 혹은 그저 운이 조금 좋다면, 텅 빈 순간들을 마주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사람들이 넘칠 때의 장면이 강렬한 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왠지 모르게 좀 더 넓어 보이고, 조금 더 어두워 보이며, 조명은 조금 비현실 적으로 느껴진다. 도심 내부의 역들에서 자주 마주치기는 어렵지만, 때로 이런 광경을 마주하게 될 때면, 바쁘더라도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렇게 나는 도시 속에서 도시의 공간들을 마주치곤 한다.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 그들을 태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내리고 떠날 열차들.


흔치 않은, 빈 공간의 순간들.






촬영: 니콘 D750, 니콘 F6, 리코 GR1s, 미놀타 TC-1, 코닥 필름 BW400cn, 후지 필름 Neopan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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