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구 Nov 07. 2018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오래간만에 필름을 세 롤 현상/스캔했다. 올초에 찍은 사진들을 3월에 뽑은 이후 처음으로 한 현상이니, 생각보다 필름 사용이 꽤 뜸했었나 보다. 게다가 세 롤이 각각 다른 세 대의 카메라에서 나온 것이라, 시간 순서도 없고 촬영 기간도 정말이지 제멋대로다. 그중 제일 사용 빈도가 떨어지는 니콘 FM의 경우는 작년에 담은 장면들이 절반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점이 필름을 사용하는 매력 중 하나라고도하던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서너 달 정도의 시간 차이라면 모르겠지만 1년은 좀...


사용 중인 세 대의 필름 카메라. 니콘 F6, FM, 그리고 리코 GR1s.

전에는 역시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좋다는 둥 스캔하면 어차피 모두 디지털이라는 둥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어차피 구분 못한다는 둥 모든 면에서 디지털이 필름을 앞선 지 오래라는둥 둥둥거리는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꽤 있었는데, 여전히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만족하는 마당에, 프로가 아닌 사람들이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 자체가 드문 일이겠거니 싶다. 아주 소수의 사이트들을 제외하면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들 자체가 씨가 말랐고, 사진 구경은 인스타그램으로 전 인류가 마음을 모은 지 오래이니.



아무튼, 필름과 디지털.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필름으로 찍은 사진과 디지털로 찍은 사진을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찍은 사진들이야 내가 찍은 사진이니 대부분 무엇으로 찍었는지 기억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전에는 물론 명부가 뻥뻥 하얗게 날아가거나 색들의 콘트라스트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심하거나 하는 문제들이 있어 디지털 사진인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요즘은 센서들이 워낙 좋아져서 중급 이상의 기종들이라면 그런 문제도 전혀 없으니. 색이 틀어진 사진이나 암부가 부옇게 뜬 사진, 심지어는 초점이 나간 사진들을 흔히들 필름 감성이니 뭐니 부르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건 그냥 모르니 하는 얘기인 거고..



프로도 작가 지망생도 아니면서, 게다가 꽤나 괜찮은 디지털카메라도 여러 대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추가 비용을 계속 들여가며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습관'이다. 필름 카메라들을 완전히 정리하고 디지털 바디만 사용하려는 생각과 결심과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번번이 실패했더랬다. 선물을 받은 것이라 판매할 수 없는 카메라가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한편으론 필름을 사용하는 과정 전체가 주는 만족감과 재미를 완전히 잊는 것이 정말이지 영 어려운 일이었다. 덕분에 중고 판매 및 재구입 과정에서 이래저래 손해만 보고 슬픔만 쌓이고(...) 나니, 이젠 정말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 접겠다는 (짧고 거칠고 거짓되며 실패할) 생각 따위 하지 말고 새로운 필름 카메라를 더 들이지나 않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랬다.



집을 나설 때면 정말 늘 카메라를 들고나간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이거나 정말 짐만 될 것이 확실한 날이 아니라면 (사실 그런 날에도 어지간하면 GR이나 GR1s를 챙기곤 한다). 꽤나 오래된 습관 중 하나인 데다가, 이상하게도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날이면 눈에 띄는 결정적인 장면을 마주치곤 해서, 셔터 한 번 누르지 않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대부분이어도 카메라를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물론 스마트폰 카메라도 엄청 발전해 일상적 목적으로는 충분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도무지 그 이야기엔 동의할 수가 없다. 찍는 과정도, 결과물도, 조금도 만족스럽지가 않아, 스마트폰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난 사진을 안 찍는 것을 선택하는 편.



아무튼. 원래는 요가와 관련한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서없는 긴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카메라 이야기도, 사진 이야기도 나눌만한 곳이 많이 사라져 버린 것이 무척이나 아쉽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공간을 하나 마련하고 나니 그나마 내 이야기와 사진들을 적고 나눌 수 있어 마음이 참 좋다. 그래도, 글이 더 산으로 가기 전에 오늘은 여기까지.




** 이글에 포함된 사진들이 모두 이번에 현상/스캔한 필름 사진인 것은 아닙니다...

** 촬영: 니콘 F6, D750, FM, AF 50mm F1.4, AF-s Macro 60mm, 50mm F1.8E; 후지필름 X-E2, XF 18mm F2; 리코 GR1s; 코닥 포트라 800, 포트라 400, BW400cn


https://instagram.com/like_a_lom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