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파리라는 도시를 "낭만적인 곳" 등등으로 부르며 마치 이상적인, 꿈과 같은 생활을 하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오호, 쥐뿔. 만약 그 사람들이 정말로 이곳에서 어느 정도 기간 이상, 장기간 생활을 하는 것을 결정하게 된다면 현실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될 것이다. 언어는 안 통하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 말은 안 통하지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지도 모르겠지. 게다가 적지 않은 시간 살아왔던 한국과 화폐는 다르지 무섭지 뭔가 다 비싼 것 같지 그리고 실제로 비싸지. 집 값은 비싸지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 임대료는 비싸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동네가 비싼지 싼 지 살만한 곳인지 아닌지 하나도 모르겠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파리에 도착한 후 약 2년 반 정도를 원룸에서 지냈더랬다. 말이 좋아서 "원룸"이지, 6개월 정도를 지낸 첫 집은 16M² 정도였고 2년 남짓 지낸 두 번째 집은 18M²정도 (두 집 모두 화장실/욕실/주방 포함한 넓이로)였으니, 말 그대로 '단칸방'에서 지냈던 것이렸다 (그렇다, 뭐든 잉글리시를 믹스하면 한국어로만 쓴 것보다 조금 나은 시추에이션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2년을 넘게 지낸 집. 오른쪽 구석에 가려 사진에 나오지 않은 싱크와 화장실을 빼곤 이게 정말 공간의 전부였다.
사실 파리에 정착하기 전 1년 동안 싸구려 호텔과 호스텔들을 전전하는 시간을 보냈기에 좁은 공간에서 아내와 비비고 사는 것 자체가 못 견디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각자를 위한 분리된 공간이 없다는 근본적인 제약은 마음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원룸' 생활이 우리에게 준 일상적인 시련들 중 하나는 방귀. 민망함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도, 손바닥만 한 좁은 공동의 공간을 악취로 채울 수 없었기에 우리 부부의 몸은 늘 어느 정도 이상의 배출되지 않은 독가스를 지니고 있었더랬다...
터무니 없는 생활 환경을 그나마 견디게 해주었던건 창밖으로 보이던 하늘이었다. 달랑 하나 있던 창문이지만, 덕분에 숨을 쉴 수 있었다.
5년인가 6년 전 12월 31일 저녁 아마도 11시 30분 정도. 친구의 파리 방문으로 저녁 외식을 하고 비교적 늦은 시간에 귀가한 우리는 꽤나 피곤한 상태였다. 다른 날 같았으면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 하지만 날이 날인만큼 나는 둘이서 와인 한 잔 더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고, 뜨뜻미지근한 아내의 반응에 조금 토라져 이렇게 저렇게 조금 투닥투닥거리게 되었더랬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사실 그렇게 늦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 못하고 외출 전 몰래 조금 준비 해 놓은 군것질 거리도 같이 먹으며 생색도 내고 이쁨도 좀 받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컸더랬다. 하지만 어긋난 상황으로 인해 이쁨은 커녕 메롱 한 분위기만 가득했던 상태.
그러다 아내는 잠깐 화장실을 갔고, 나는 그 사이를 이용해 마음껏 복부 내 가스를 배출했더랬다. 오오오오 시원해라. 대부분의 끼니를 집에서 직접 준비한 음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식사를 외부에서, 특히 저녁을 기름지게 사 먹고 난 날은 가스가 약 45배 정도는 더 부글거린다. 대체 뭘 넣어서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래저래 오랜 시간 참고 있었던 대량의 가스를 비우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은 나 스스로도 정말 정신 놓고 기절할 것 같은 정도의 무지막지한 냄새. 대체 뭘로 만든 뭘 먹었던 것이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약 10초 전까지만 해도 티격태격하던 상황.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기 전에 이 더러븐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조용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방석을 파닥거려 보았으나... 아 겨울밤에 공기 전체가 모두 얼어붙은 건지 뭔지 바람 하나 불지 않았다. 아무리 창쪽으로 부채질을 해봤자, 차가운 세상은 집안에 가득한 거북한 내음을 냉정하게 거부했다. 화장실에서 아내가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반쯤 패닉에 빠진 나는 조용히 창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는 노력을 하며.
화장실의 문이 열리고 방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아내가 인상을 쓰며 날카롭게 던진 한마디.
"집안 공기가 왜 이래?"
... 너 방구꼈지? 도 아니고... 엑 구려~ 도 아니고... 하수구 냄새가 난다던가 하는 얘기도 아니고... 집안 공기가 왜 이렇냐니... 아아아... 내가 배설한 가스는 대기 오염의 수준인 것이었던 것인가...
정말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눈에 다 들어오는) 집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아내에게 나는 무언가 대답을 해주어야 했으나 완전 패닉 상태의 내 머리는 내게 도움을 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았고... 그 와중에 아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어디서 어떻게 왜 그런 대사가 튀어나왔을까... 아내 쪽으로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나는 외쳤다.
"안아줘어어어어이이이잉~"
... 나의 애교는 그렇게 폭발했고... 덕분에 그 날의 투닥거림은 화기애애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마무리가 되었더랬다. 파리 어딘가 6층에 있는 단칸방에서 어느 해 12월 31일 늦은 밤 - 혹은 1월 1일 새벽에에 벌어졌던, 로맨틱하다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구린(...) 어떤 이야기.
저 순간 내가 외친 "아나줘어잉~"은 우리 부부의 기억 속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명장면(!!) 중 하나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아내는 - 나로 하여금 영혼 밑바닥서부터 애교를 끌어올리게 했던 - 본인의 명대사 "집안 공기가 왜 이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당시 집안에 퍼져있던 독가스가 정상적인 뇌 활동을 방해할 정도로 유독한 상태였던 것인가, 하고 농담만은 아닌 추측을 해본다. 다행히 지금은 그 집에서 이사해 방과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는, 게다가 환기도 무척 잘되는 구조의 집에서 살고 있어 이곳저곳 자유롭게 이동하며 가스를 편하게 분출하고 살고 있다고 한다. 집에는 벽들과 문들이 있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