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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Aug 13. 2018

파리, 지하철. 20180812

일상적 사진 #1

나는 버스보다 지하철을 선호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버스를 타면, 오래 동안 살던 동네에서 매일 보던 친숙한 노선일지라도, 내리는 순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도무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쪽 방향의 버스를 타거나 정류장을 잘못 내리기가 일쑤였다). 이곳 파리에서 또한 마찬가지, 지하철은 도보 다음으로 내가 애용하는 이동 수단이다.

파리는 지하철이 무척 잘 되어있다. 노선도 많고 역도 많다. 노선이 정말 많고 역이 정말 많다. 정말, 정말 많다. 무진장 많다.

파리는 지하철이 무척 잘 되어있다 (아, 이런저런 문제들이 많이 있으니 '파리에는 정말 많은 지하철이 다니고 있다'라고 하는 쪽이 더 맞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열차들을 제외한 지하철 노선만 해도 14개나 되고, 역도 많다. 물론 버스도 어마어마하게 다니기는 하지만, 버스를 조금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지하철이 잘 되어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조금 웃긴 건, 서울과 같은 정말 넓고 큰 도시에 비교하면 그래 봐야 작은 유럽 대도시에 엄청난 수의 지하철 역이 설치되어 있어, 도심의 경우 두세 정거장 정도는 지하철을 타러 역을 찾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열차를 기다려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그냥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런 이유들 때문일까, 파리 내 이동 수단의 1위가 도보라고 하니 (전체 이동량의 51%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도시에 살면 참 많이 걸으며 산다고 할 수 있겠다.

때때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딘가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잦은 고장, 많은 승객, 낙후된 시설 및 불만족스러운 청결 등등으로 악명이 높은 파리 지하철이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이곳의 지하철을 타는 것을 딱히 싫어하지 않는 편이다.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 역을 걸을 때면, 나는 늘 일상 속에서 작은 여행 - 모험 같은 느낌을 받는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모습들, 다양한 장면들. 바쁜 일상의 장면들과 빠르게 스쳐가는 사람들, 복잡함과 정교함. 꿈과 영화 사이의 어디쯤인 것처럼 느껴지는 아득함. 지하철은 종종 내게 그런 느낌을 준다.

한편 사진을 좋아하는 나에게, 지하철 역 내부는 바깥 거리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좋은 곳이다. 바깥세상의 기상 상태와 관계없이 늘 같은 방식의 조명이 유지되는, 다만 시간대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만이 바뀌는 그런 공간. 흐린 날에는 빛도 그림자도 숨어버려 야외에선 아무래도 사진이 조금 심심해지기 마련이지만, 다양한 빛이 늘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하철역 내부에선 그런 지루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부신 햇살과 인상적인 그림자, 아름다운 노을만을 따라다니곤 했다면, 지루하게 여겨지곤 하는 지하철역을 조금 눈여겨보는 건 어떨지. 일상과 사진을 위한,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이 펼쳐질 거다.

수 없이 많은 관광객들 또한 복잡한 지하철 사정에 크게 한 몫 한다.
엄밀히 따지면 이 열차는 지하철은 아니다. RER이라는, 서울의 국철 비슷한 열차 시스템이지 싶다. 노선 수는 아마도 6개.

* 촬영 : 리코 GR1s & 코닥 포트라 800, 리코 GR, 니콘 D750, 후지필름 X-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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