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있었던 일이다.
“악!!!!!!!!!!!!!!!!!”
거실에 깔린 이불 위에 무릎 꿇고 앉아 TV를 보던 내가 소리쳤다. 피가 이불 위에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나의 생리혈이었다. 하필 양이 많은 둘째 날이었다. 둘째 날인 것을 고려해 대형 패드도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다 새 버렸다. 엉덩이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흐르는 게 느껴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큰 생리대의 힘을 믿었다. 아, 너무 믿은 탓이다.
바로 옆 물티슈로 핏자국을 박박 닦아댔다. 급한 대로 지도 자국이 마르기 전에 지워보자는 생각이었다. 나의 흔적이 부끄러웠다. 웬일인지 그 자국은 날 놀리기라도 하듯 닦을수록 더 번졌다. 포기했다. 창피했다. 화장실로 피했다. 샤워를 하며 울었다. 아직도 피를 저만큼이나 흘리다니. 성장하지 못한 것 같았다. 초등학생 그대로 멈춰 있는 기분이었다. 호르몬 변화로 더 예민해서 그런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 짜증을 견딜 수 없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 진짜 자궁 없애고 싶어! 자궁 적출 수술하고 싶어!”
그러면서 과거 들었던 말이 틀린 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초경을 시작했다. 엄마는 이제 어른이 된 거라고 했다. 당사자인 나는 얼떨떨했다.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귀찮고 번거로운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지옥의 문이 열린 거나 다름없었다.
생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피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날이 극히 드물었다. 위생 속옷을 입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이불 빨래를 맡겨야 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 내가 하의 속옷을 손으로 빨 수 있을지언정 비교적 큰 빨래인 이불을 세탁하는 건 여전히 무리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자기의 숨기고 싶은 생리 흔적을 남기고 그 처리를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현실이 싫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본적인 자기 신변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다른 건 뭐가 준비되어 있겠나.
어린 시절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첫사랑과 결혼하는 것, 나를 이해해주는 따뜻한 사람을 만나는 것, 나를 잘 도와줄 수 있는 힘 좋은 비장애인 남성과 연이 닿고 싶었다. 장애인 남성은 본 적이 없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 능력대로 살기로 했다. 사실 현재 상황에선 못할 것 같아서 미리 안 한다고 하는 거다. 준비 없이 사랑에 빠지는 건 괜찮을지 몰라도 결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비혼 선언이 어쩌면 내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자기 짝 만나서 잘 사는 장애인들도 많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누구나 자기 여건이나 본인만의 이유로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지 않나.
개인이 선택한 일에 타인이 왈가왈부하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의미가 없다고 본다. 선택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순 있지만, 그뿐이다.
과거 또 다른 대학 동기로부터 아래와 같은 말을 들었다.
“너는 장애인이면서 일반인 만나려고 하는 거 욕심 아니야?”
나의 연애관을 밝히기도 전에 날아온 화살이었다. 당시 그 충격이 커서 답하지 못했다. 이제야 제대로 답해 본다.
“장애인이라도 비장애인 연인 만날 수 있어. 당시 너와 내가 대학 동기로 인연을 맺었던 것처럼 연인 관계에서도 둘이 괜찮다면, 사랑한다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 주변에도 꽤 많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만나는 일이 욕심이 될 수도 있겠구나. 지극히 현실적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단순히 너 잘못이라기보단 그런 사고를 자리 잡게 만든 우리 사회가 문제겠지. 중요한 건 사람이 끼리끼리 모일 순 있어도 끼리끼리 만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거야. 또한, 장애인끼리 만난다고 해서 타인이 ‘너희 둘이서 어떻게 살래’하며 걱정할 필요도 없을 거야. 결국 본인만이 본인 삶을 살 수 있는 거니까.”
내 이불에 피가 묻어도 스스로 빨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노력하며 기다릴 것이다. 그때쯤엔 누가 누구를 만나 어떻게 살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살고 있길 바란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