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거짓말에도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진심인 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혈기왕성하면서도 수줍음과 무뚝뚝함이 흐르는 곳은 어디일까? 아무래도 부산의 남자고등학교일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친구들이 그랬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1년에 딱 한 번 설레는 기념일이 있다. 바로 '만우절'이다. 평소에는 무뚝뚝해서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단순한 거짓말일지라도 만우절엔 웃어 넘어갈 수 있으니 이런 마법 같은 날에 설레지 않을 이유가 있었을까?
만우절의 다음날이면 언제나 들려오는 소식이 있다.
매년 4월 2일. 학원이나 남녀공학을 다녔던 친구들로부터 A가 B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소식을 종종 듣곤 했었다. 그때 그 당시에는 "아... 쪽팔리겠다."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지금까지 곱씹어먹는 술안주가 만들어지던 날인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을 떠나 서울 있는 D대학교에 입학했다. 성인으로서의 첫 만우절이자 새내기의 첫 만우절에는 K교수님의 수업이 휴강되었다거나 강의실이 바뀌었다는 등 행정적인 부분에서 사람을 낚는 거짓말이 대부분이었기에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고 이 글을 읽으며 떠올릴 그런 설레고 풋풋한 거짓말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소주잔의 '짠'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때, 만우절 때, 메시지로 고백했는데 차였어"
나와 다른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친구를 놀렸었다. 그 친구에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 혼자 짝사랑하는 모습이 우리들의 눈엔 4K마냥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한바탕 친구를 놀린 뒤에야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생각했다. 그 친구의 만우절 거짓말은 풋사과 같은 싱그러운 청춘이 성인이 되자마자 했던 가장 가슴 떨리던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것.
친구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만우절날 고백은 친구의 얼굴이 차은우가 아닌 이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만우절은 알다시피 가벼운 거짓말을 장난정도로 여겨 그냥 웃어넘기는 날이다. 즉, 거짓말이더라도 보이지 않는 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친구의 입장에선 1byte마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만우절스러운 애매한 고백의 멘트를 날려 보냈겠지만, 이런 어설픈 고백을 받게 되는 상대방의 입장에선 '사랑의 시작'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그냥 장난스럽게 메시지로 날려 보낸 사람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이 얘기는 지금에서야 밝히는 이야기이지만 친구가 고백공격 했던 상대방에게서 직접 들은 심경이다.)
작년에도 그랬을 것이고 봄기운 가득한 올해의 만우절 날에도 누군가는 고백을 하겠지만, 거절하는 입장에선 진심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만이라도 빠르게, 아니면 하루라도 늦게 진심을 고백한다면 진정성이라도 전해지지 않을까?
(친구야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