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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Apr 03. 2024

취업 같은 소개팅, 회사 같은 연애

정년까지 가능할까?

  얼마 전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도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한사코 거부를 했겠지만,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고 난 직후의 몽글몽글함과 피로연장의 테이블에 놓여있던 이슬의 알딸딸함에 그만 ‘콜’을 외쳐버렸다. 분위기에 휩쓸린 탓에 소개팅을 승낙해 버린 것이다.


  평소의 나는 연애에 있어서 ‘자만추’를 추구해 왔다. 지금까지 나의 소중했던 인연들은 학교나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왔기에, 연애라는 확정적인 목적을 두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소개팅이 개인적으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평가'받는 느낌도 싫었고 내가 상대방을 평가한다는 것도 싫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지인들은 “그냥 나가서 밥 한 끼 먹는 거지. 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라는 동일한 반응들을 보였지만, 밥 한 끼의 목적은 단순했다.


이 사람이 나의 연애 상대로 적합할까? 몇 점일까?

  그냥 단순히 밥을 먹는다는 생각이었으면 소개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혼밥도 하는데, 모르는 사람과 밥 한 끼쯤이야. 하지만, 내가 느낀 소개팅은 참으로 힘든 시간의 연속이다. 소개팅 전에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힘들게 했고, 소개팅을 마친 직후에는 준비한 것들을 모두 보여주지 못한 채 면접을 마친 찝찝한 취업준비생의 느낌이었다. 애프터에 실패했을 때에는 그간의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나의 자존감은 낙하산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듯 빠르게 곤두박질치곤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소개팅부터 연애까지의 과정은 취업과정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서로를 가장 잘 나타낸 서면(사진)으로 서류·필기전형을 치른 다음 몇 번의 예행연습을 거쳐 1차 면접장에 도착한다. 면접장 의자에 앉아 1분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의 질문에 답하다 보면 금세 1차 면접이 끝난다. (누군가는 운명처럼 1차 면접에서부터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굉장히 드문 일임이 분명하다.) 1차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해 다시금 의자에 앉게 되면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로 면접을 이어나간다. 2차 면접에서는 1차 면접보다는 좀 더 핵심적이고 내면을 알아볼 수 있는 토론 면접이 진행될 수 도 있다.  여기서 곧바로 합격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도 있겠지만, 최종 3차 면접을 마치고 합격하는 것이 보편적인 국룰이다.


합격한 뒤에도 회사와 연애는 별반 다르지 않다.


  합격을 한 뒤에는 초심을 유지하며 잘 다니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초심을 잃고 방황하다 끝내 이직을 감행하기도 한다. 애초에 몇 번의 평가만으로 일평생? 정년?을 함께할 짝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연애부터 결혼까지의 수습기간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벚꽃과 함께 3차 면접까지 치른 오늘의 나는 평가를 받고 있음과 동시에 “이 회사(소개팅 상대방)가 나랑 맞을까?"를 고민하며 그렇게 싫어하던 정성평가를 진행 중이다. 3차 면접까지 치렀다고 해서 무조건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다. 최종합격에 따른 연애? 근로계약? 은 쌍방의 의사가 합치되어야 하고 이는 자신의 미래와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이다. 특히나 회사에서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이의를 제기할 순 없다. 상대방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정해놓은 기준에 따른 오랜 숙고를 고친 결정이고, 나는 그저 원치 않는 인재상이었던 것뿐이다. 


끝까지 어렵다. 그래서 모든 구직자가 드라마 같은 스카웃을 기다리거나 취업을 포기하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어렵다. 그래서 모든 솔로들이 드라마 같은 이끌림을 기다리거나 연애를 포기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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