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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May 10. 2024

연애와 '깨진 유리창 이론'

덤으로 나의 멘탈도 깨졌다.


  대학시절 '현대사회와 범죄'라는 교양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전공과목으로 '형법'을 수강 중이었기에 공부의 총량을 덜어내고 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배웠던 내용은 범죄의 원인과 예방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이 대부분이어서 꽤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중간시험 이후에는 살인, 성범죄 등 범죄의 구체적인 행위태양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관련 전공자로서 심신의 안정?은 되찾았지만, '차별적 접촉이론'과 같은 생소한 이론에 교수님께 형법 제314조(업무방해)의 죄를 범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도 하곤 했었다. 그래도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내용이 있는데 바로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이 이론은 깨진 유리창을 계속적으로 방치하다가는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범죄가 확산된다는 내용으로 주변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주로 설명된다. 실제로 과거의 뉴욕시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받아들여 간단한 경범죄를 집중적으로 단속함으로써 강력범죄율을 하락시키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 '깨진 유리창 이론'은 범죄학을 넘어 조직경영의 분야에서도 중요하게 자리매김 했다. 작은 리스크를 방치하다보면 그 규모가 커져 큰 리스크를 불러온다는 내용으로 컴플라이언스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보면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작은 사고들이 연달아서 일어난다는 '하인리히 법칙'과도 비슷하거나 같을지 모르겠다. 이렇듯 작은 문제의 해결을 통해 큰 문제를 예방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치였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연애에서도 (나만의 경험칙상) 적용되고 있었다.


  다섯손가락도 채울 수 없는 연애의 경험이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사랑이라는 유리창에 금이갈 기미가 보였을때  곧바로 그 사실을 공유하고 합의된 접착제로 티나지 않게 복원했어야 했다. 미련했던 나는 유리창에 금이간걸 알면서도 애써 이정도로는 끄떡 없다며 계속 그 상태를 유지했었고 서서히 깊어져가는 균열을 알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회피했었고 이미 손을 쓰기 힘들 정도로 균열이 가버린 유리는 아주 미미한 바람에도 깨져버려 날카롭게 흩어졌다. 


  그렇게 무참히 깨져버린 유리를 맨손으로 하나씩 찾아가며 가까스로 다시 붙였을땐 모르긴 몰라도 이전보다는 꽤 괜찮은 연애를 할 줄 알았지만, 이미 서로의 손은 상처로 가득했고 복원된 유리창은 유리엔 사용할 수 없는 딱풀로 이어 붙인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기어코 찾지못한 작은 유리 파편들이 남긴 구멍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유리창은 깨져버렸고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우울증, 공황장애라는 이름을 가진 험한 것들이 침입해 들어와 나를 상대로 강력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이론의 실험결과 처럼 큰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재빠르게 복원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처음부터 깨지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그게 진짜 예방법이었고 깨진 유리창 이론이 주는 진짜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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