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패소했다. 항소했지만, 결론은 기각이었다.
회사에서 제기한 소송의 변론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법원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감사하게도 오전 재판이었던 터라 집에서 사무실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법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직장인 7년 차로 어색해진 느긋한 아침을 경험하며 법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0분. 재판은 10시 40분이었다. 법정 앞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자료를 확인하려던 찰나, 10시에 있었던 판결선고를 듣고 나오는 소송당사자들을 마주 할 수 있었다.
A: 어? 이게 왜 빠져 있지?
B: 빠트리고 청구한 거 아냐?
A: 그래도 이건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나: (네, 아니에요)
소송과 친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민사소송에는 '처분권주의'라는 원칙이 있다. 민사소송법 제203조에서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해서는 판결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한 것을 말하는데, 이 원칙은 소송의 개시 · 심판의 대상(청구범위의 특정) · 소송의 종결에 대해 당사자에게 주도권 쥐어주어 당사자의 판단(처분)에 따라 소송을 맡긴다는 내용으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이 내용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사회'과목에서 들어봤을 '사적자치의 원칙'에 뿌리를 둔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처분권주의'와 더불어 민사소송에는 '변론주의'라는 원칙도 있다. 변론주의는 소송과 관련된 사실의 주장과 이에 따른 증거의 수집 및 제출의 책임은 오롯이 소송당사자에게 있으며, 당사자들이 변론에서 제출한 소송자료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판사님이 당사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법률요건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서 예시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법원의 J판사님이 출근하시다가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하더라도 차에서 내려 가해자와 피해자를 소송당사자로 하여 민사소송 판결을 할 수 없다(처분권주의). 교통사고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했고, 우연히도 J판사님께 이 사건이 배당되었다면 판사님이 직접 목격한 사실이 있더라도 소송과정에서 각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으면 이를 재판에서 다룰 수 없다(변론주의). 또한, 교통사고의 피해자(원고)가 경황이 없어서 치료비를 제외한 채 손상된 물건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면 판결에서 치료비는 인정될 수 없다(처분권주의).
위의 내용은 이해를 위한 아주 극단적인 예시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원고가 정해진 시기 안에 청구취지 변경이나 확장을 통해 치료비를 추가할 수 있다. 그리고 '석명권'이라고 해서 판사님이 소송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질문을 하거나 이에 대한 증명을 촉구할 수 있고, 당사자가 법률상 명백히 간과한 부분을 지적하여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를 '석명권 행사'라고 하며, 소송대리인이 없는 소송에서 자주 목격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는 적극적으로 말하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법원은 신청된 내용만을 판단하며, 각 당사자의 변론과정에서 나온 사실 등을 기초로 판결하기에 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연애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 연애당사자가 말을 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나의 예전 연애에 비추어보면 나는 여자친구가 제기한 소송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으른 소송당사자였다. 말을 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알겠지!”라는 주장이나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소송에서 패소하게 될 원인으로서 지적될 뿐이다.
극심한 내향형인 나의 입장에서 상대방에게 표현을 한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선 이 또한 새로운 유형의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예쁜 애가 나를 왜 좋아하지?", "이렇게나 생활 깊숙이 좋아함이 자리 잡았는데 갑자기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등 내가 쓸데없는 걱정으로 혼자서 전전긍긍할 때 빠른 속도로 나의 생각을 여자친구에게 주장했다면 서로가 적절한 공격과 방어를 통해 현재의 나의 일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표현하지 않은 걸 두고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며 아쉬워할 때도 똑같다. 아쉬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상대방이 왜 그러냐며 나를 쏘아붙이더라도 나는 별달리 주장할 수 있는 게 없다. 상대방이 분명히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증거자료가 없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소송이든 연애든 말을 하고 또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소송이 제기되어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면 무변론 판결로 패소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되돌아가는 이별이 있을 뿐이다. 다시 붙잡는걸 '항소'로 볼 수 있겠지만, 이를 뒤집을 확률은 드물뿐더러 상대방에겐 고통스럽고 지루한 시간이 다시 시작될 뿐이다. 이제야 생각하게 되었지만 차라리 항소하지 않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대방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을 것 같다.
P.S. 연애가 너무나도 서툴러서 지인들이 석명권을 행사하면 잘 듣고 고치기라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