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언제까지 완주해야 된다는 규칙은 없다.
서른이 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을 꼽아보자면 "사귀는 사람 있어?",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정도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상반기로 한정해도 가장 많이 들은 말임에는 틀림없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이 남자는 34세(33.97) 여자는 31세(31.45)였다고 하니 세는 나이로 33살인 나에게 결혼과 관련된 질문은 어쩌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나를 향한 질문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도 바뀌었다. 20대 때에는 취업, 연애,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해장음식 선정과 같은 제법 ‘청춘'의 이야기였다면, 30대에 접어들어서는 모든 대화의 착륙지는 결혼 전·후의 생활이나 육아에 대한 내용으로 귀결되는 이른바 '으른'들의 대화였다. 물론 현재의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주제이므로 나는 말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켬으로써 대화에 무언으로 참여 중이다.
그렇게 커피를 들이켜고 있을 때면 명절마다 마주하는 부모님의 결혼공격과 마찬가지로 먼저 결혼하신 으른들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나는 이에 대한 반박으로 “청년(만 19~34세) 5명 중 4명은 미혼으로 나는 늦은 것이 아닌 평균적이며,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주의가 아니므로 때가 되면 하겠다.”라는 나의 소신으로 항변해 보지만 그들의 잔소리는 좀 더 굳게 단호해지기 시작한다.
이 사람이다 싶으면 재지 말고 일단 GO!
지인들 중에는 소개팅한 날로부터 딱 1년이 되는 날에 결혼식을 올린 사람도 있고, 연애를 시작하고 1달 ~ 2달 정도의 시간만에 각 당사자가 결혼에 대한 의사를 확인하고 준비를 시작하는 등 나의 기준에선 엄청난 속도감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결혼식장 예약금이 50만 원밖에 안 한다. 일단 GO!"라며 결혼에 대한 장점과 결혼 후에 바뀌는 행복한 일상에 대해서 설파한다. 나는 이때마다 항상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다 Back 하게 되면?
이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답변은 "아니면 아닌 거고, 그냥 끝인 거지"라는 다소 허무한 답변들을 내놓는다. 이 사람들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은 결혼을 통해 행복을 느끼며 잘 살고 있기에 나로서는 더 이상 반박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 결국엔 결혼에 신중한 입장인 “내가 이상한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아마도 지인들은 내가 하루라도 젊은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인생을 빨리 경험해 보길 바라는 염원으로 조언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Go'와 'Back'을 반복함으로써 얻는 감정적인 소모를 되도록이면 줄이고 싶은 게 솔직한 감정이다. 왜 'Go'하기 전에 'Back'부터 생각하냐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오래전부터 가져온 나의 생각이다.
간혹 ‘마라톤’이나 ‘장거리 달리기’에서 초반부터 너무 빠르게 달려 금방 지쳐버리는 선수의 모습을 목격했거나 스스로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랑과 결혼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초반부터 너무 빠르고 도파민이 폭발하는 자극적인 사랑에 익숙해지면 그러한 것들만을 쫓다가 결국엔 지쳐 쓰러지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 다시 일어나 예전처럼 빠른 속도감과 자극을 되찾는 것은 상당히 버거운 일이기에 때로는 완주를 포기하게 된다.
나는 무조건적인 ‘GO!’가 아니라 일정한 수준으로 서서히 속도감을 올려가는 완급조절이 가능한 사랑을 하고 싶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닌 서로가 내고 싶어 하는 속도에 맞추어 주위를 돌아보고 함께할 길에 다칠 수 있을만한 돌은 없을지, 흙탕물로 가득한 웅덩이는 없을지 충분히 확인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한 다음에야 손을 잡고 결승점인 버진로드를 통과하고 싶다. 그래야만 넘어져도 상처가 덜할 것이고, 뒤로 Back 하더라도 흙먼지만 털어내고 아쉬움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도 사랑과 결혼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행복감을 느껴보고 싶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긴 레이스를 안전하게 완주하는 것이 1순위 목표이다. 다만, 그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이다.
신중했던 만큼 Back 없이 Go만 있는 사랑.
이런 사랑으로 완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