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
개천절과 주말사이의 금요일. 모처럼 휴가를 쓰고 성수동으로 향했다. 대문자 I의 성격인 나에게 성수동은 힙한 외향인들의 공간이라는 인식 때문에 좀처럼 발길을 주지 않는 곳이었지만, '글'을 주제로 한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라는 생소함에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에 도착했을 땐 '텍스트힙'의 인기 때문인지 글 쓰는 재미를 알아가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전시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입구에서 예약내역을 확인한 뒤에는 손목에 입장권을 채웠는데, 나로서는 이런 팔찌 형태의 입장권을 놀이공원에서만 접했던 터라 왠지 모르게 들뜬 기분으로 전시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입장을 하니 친절한 스태프분께서 "혹시 작가님 이실까요?"라고 질문해 주셨고, 처음으로 오프라인 공간에서 타인에게 '작가'로 불리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영감을 얻으시면 됩니다.
스태프분은 입장한 나에게 전시 구성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번 전시의 목표라고도 볼 수 있는 '영감'을 얻기 바란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나는 평소에 글의 소재를 일상 속에서 찾아왔기에 '억지로 영감이 찾아지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몸을 오른쪽으로 틀자마자 "아! 다음글은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버렸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워크북 p.10, 나만의 질문 찾기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한 작가 10인이 나만의 키워드를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수집해 붙이고, 나만의 답을 적어 보세요.
팝업 전시의 첫 공간에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작가님들의 작품들과 함께 작가님들이 주제를 얻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스티커로 인쇄되어 작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러 질문들 중에서 "내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간단하지만 어렵고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만, 곧바로 결론을 낼 수 없는 그런 질문이었다.
다음 전시 공간으로 넘어와 브런치 대표 작가 5인의 애장품과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 그리고 최근의 화두인 '텍스트힙'에 대한 생각을 접했다. 다양한 소재들로 '글쓰기'에 대한 용기와 재미를 깨우칠 수 있었지만, 전시 공간에 머무른 40분 동안 '내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해 답답할 뿐이었다. 다행히도 저녁 즈음에 집으로 돌아와 팝업전시에서 받은 워크북을 살펴보며 질문의 답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었다.
워크북 p.16, 인생 타임라인 작성하기
인생의 주요 순간들을 연도별로 정리해 보세요.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나 처음의 순간들도 좋아요.
작가의 여정의 가장 큰 힌트는 지나온 길에 있습니다.
잊고 싶지 않은 '인생의 주요 순간'들은 다양했다. 나만의 노력으로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던 일,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다양하게 노력했던 일 등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의 공통점은 바로 어딘가에든 나의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전형 시 제출했던 포트폴리오와 합격통지서에 적힌 이름,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했던 다양한 활동기록 등으로 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어릴 적부터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고, 여러 사건들에서 나의 이름 세 글자가 어딘가에서 보존되어 유지되는 게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수형인 명부와 같은 무시무시한 것이 아닌 나의 노력으로 타인들에게 좋은 의미로 인정받는 것을 즐겨온 것이다. 내향적인 관종의 기질로 '선항 영향력'을 생각했던 것 같다.
'선한 영향력'을 위해 역경을 버텨내거나 자수성가 등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겠지만, 나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많은 흔적을 남겨 오래도록 나의 생각들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닌 누구에게나 허락된 방법인 '글'을 선택했고, 브런치스토리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내놓은 글들이 개개인의 인생에서 완벽한 답일 수도 없거니와 오답일 수도 있기에 실명으로 활동하면서 '나의 이야기'라는 점을 부각하고 나만의 진실성을 담아내기로 했다.
삶「명사」「1」 사는 일. 또는 살아 있음
「2」 목숨 또는 생명.
'삶'이라는 건 출생이라는 탄생과 죽음사이를 의미함은 모두들 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탄생과 죽음은 부모님이 적어주신 출생신고서로 또, 자식 또는 배우자가 적는 사망신고서에 의해서 기록된다. 그렇기에 탄생과 죽음사이의 흔적은 부모님, 자식, 배우자와 같은 타인이 아닌 오롯이 나의 몫일지도 모른다.
워크북에 있는 마지막 글처럼 나는 흔적들을 남김으로써 나의 감정들을 세상에 남기고 그 흔적들을 통해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나침반을 만들고자 한다. 기록을 통해 흔적을 남김으로써 새로운 좋은 흔적을 발굴해 낼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찾은 '내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면서, 이를 통해 나 스스로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남긴다.
워크북 p.28~29, Epilogue
매일 쌓이는 고유한 생각과 감정이 한 편의 글이 되고, 그 글이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삶의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중략) 글쓰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깊게 만드는 평생의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