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나 혼자 박수치며 떠나는 일이 없도록.
공공기관과 사기업의 차이점 중 하나는 공공기관의 사장님(기관장)에게는 임기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기업의 사장님도 계약기간이 있을 수 있지만, 공공기관처럼 법률이나 정관에 임기를 규정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기관장의 임기는 사회적 물의 등으로 중도에 사임하거나, 정해진 임기를 채우고도 후임자가 지명되기까지 계속 근무하는 경우도 많아서 일반 직원의 퇴직처럼 딱! 끊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화요일에 나는 모셨던 기관장님의 퇴임식에 참석했다. 2018년에 입사한 이후로 3번째로 겪는 기관장의 퇴임이었지만 '퇴임식'을 경험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선 기관장님들의 경우에는 일신상의 사유로 임기를 남겨두고 떠나셨지만, 이번 기관장님은 정해진 3년의 임기를 넘어 무려 10개월을 더 근무하셨다. 나의 근무기간 중 절반이상을 함께하셨던 것인데 그런 기관장님의 퇴임식 장소에 도착하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퇴임식은 '엄숙, 근엄, 진지'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월요일 퇴근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임기가 종료되신 기관장님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퇴임식장에 입장하셨고 직원들은 박수로 맞이했다. 그리고는 모두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직원들의 기관장님에 대한 인터뷰로 만들어진 영상을 시청했는데, 중간중간 기관장님과 직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누군가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면 슬픔이 전염될까 싶어 참아내는 모습들로 가득했다.
영상이 상영되던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생각했다. "이번 기관장님은 앞선 기관장님들과 같이 내외부적으로 큰 반대에 부딪혀 포기하셨던 일이 있으셨나?" 적어도 나의 기억 중에는 없었다. 이전의 기관장님들은 구성원들의 의무를 먼저 강요했기에 구성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한 목소리를 냈다면, 이번 기관장님은 구성원들의 장점을 먼저 보셨고 또 권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셨다. 그 모습에 우리는 자연스레 본연의 의무를 찾아서 이행할 뿐이었다.
내가 겪은 기관장님은 직장에서의 보스를 넘어 '올바른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이었다. 회사에서 중요히 여기던 소송의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을 진행 중일 때, 계속해서 나의 안부를 물으시며 소송은 본인의 임기 내에 끝나고 그 책임도 기관장인 본인이 짊어지신다며 크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업무 하라며 위로해 주셨었다. 또,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에는 다소 부족한 계획이라도 빠르게 실행해 보고 보완점을 찾아내어 탄탄한 계획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기관장님이 주신 의견을 내가 듣기 싫었다면 분명히도 꼰대의 고리타분한 얘기였겠지만 계속 듣고 싶었고 수긍이 가는 얘기였다.
이런 기관장님 밑에서 기관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성과도 당연히 뒤따라 왔다. 그리고 기관장님은 그 성과를 우리의 공으로 돌리셨다. 생각하건대 어떤 조직이든 리더는 구성원들이 일궈낸 열매를 가장 빠르게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고 항상 관심을 기울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많은 열매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을 때 뒤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기관장님은 그러신 분이었다. 물론 나의 평가와 다른 시선도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외부에서 평가하는 점수들이 임기중에 단계적으로 높아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기관장님의 임기가 3년을 향해 달려갈 때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벌써? 연임하시면 안 되나?"라고 생각했었고, 후임자 인선이 늦어진 탓에 10개월간 근무를 이어가시다 퇴임일이 결정되었을 때에는 "딱 4년 채우고 가시지..."라며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에 아쉬워했다. 그렇게 퇴임식을 마주하게 되었고 퇴임식의 시작과 함께했던 박수는 기관장님의 퇴임사와 기념촬영에도 항상 함께했다. 그렇게 기관장님이 퇴임식장을 떠나실 때까지 박수는 이어졌고 나는 기관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삶의 목표를 한 가지 떠올렸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오랜 시간 함께한 구성원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렵겠지만, 적어도 혼자 박수치며 떠나지 않도록 살아가야겠다."
기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행복하세요.
공공기관의 기관장은?
1. 기관장의 임기는 3년이고, 이사 및 감사의 임기는 2년이다.
2. 기관장의 평균 연봉은 2023년 기준으로 186,201,000원이었다.
3. 공공기관 기관장은 이론상으로는 1년씩 연임이 가능하지만 상당히 어려운 일이며, 연임의 여부는 구성원이 아닌 임명권자(대부분 기관이 소속된 중앙행정기관의 장관)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