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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친의 결혼식에 갈까? 말까?

잊는 것이, 진짜 배려다.

by 이종원

내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


징검다리 연휴가 낀 주말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근로자의 날부터 휴식을 취했고, 주말이 지나도 이틀을 더 쉴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지만, 나는 평소보다 더 차분히 2025년 5월 3일을 마주했다. 이날은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오랜 시간 알아오다 연애를 시작했기에, 연인이라는 끈은 끊어졌지만 지인이라는 몇 가닥의 실이 여전히 관계를 이어오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주위의 숱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첩장 모임까지 참석했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결혼식에 불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유가 먼데?


드라마 속 장면처럼, 혹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짤처럼 전 연인의 결혼식에 헤어숍 원장님의 손길을 빌려 외적인 모습에 힘을 '빡'주고, 전 연인보다 더 멋지고 예쁜 사람과 동행해 오래오래 신경 쓰이게 하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솔직한 마음으로는 당당히 참석해서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을 좋아할 여정을 시작한다는데 응원 말고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런데도 왜 가지 않았냐 묻는다면, 좋아했던 사람의 결혼식에 작은 흠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연애 전부터 그녀의 가족들과 몇 번의 식사를 나눴고, 하객들 역시 학교 후배들이거나 대부분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결혼식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한 오해와 불편이 생길 수 있었고, 그 불편함은 그녀의 성격상 완벽하게 준비했을 결혼식에 결점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속은 후련하고 좋네요.


월요일즈음에 미리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을 전하며 축의금을 보냈고, 결혼식이 있었던 토요일 점심을 숙면으로 피해보고자 전날 밤부터 영화를 연달아 보기 시작했다. 해가 뜬 뒤에야 잠들었지만, 무의식은 결국에 나를 깨워버렸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결혼식에 참석했던 지인들과 커피를 마시기 위해 결혼식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카페에 앉아 (이 글의 초안이 된) 나의 감정들을 써내려 갔다.


그동안 전 연인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왜?" 혹은 "그게 가능해?"라고 물었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어쩌면 아주 작고 일방적인 희망이었다. 결혼식이 지나고 이제는 그런 희망을 품는 것조차 도의적으로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정확하게 끊어졌기에, 나는 더 이상 끈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전 여자친구와 연락을 이어오던 나를 지인들이 왜 그토록 다그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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