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사업가의 첫걸음

꿈과 열정이 내게 돈을 벌어다 줄 수 있을까?

by joni

가끔 일을 하다 보면 밥때를 놓쳐 무척 애매한 시간에 식당에 들르게 되는 오후가 있다. 그런 시간대의 식당에는 브레이크 타임도 없고 시끌벅적한 배경음악도 없다. 지저분한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일하다 놓친 점심시간을 보상할 만큼 만족스러운 음식들이 죽 나열되어 있고 또 때로는, 메뉴판 근처 어딘가에 나란히 붙은 자격증이나 사업자등록증 같은 걸 보게 되기도 한다. 왜 몇몇 식당의 사장님들은 사업자등록증을 소중하게 액자에까지 담아서 벽에 걸어놓을까? 나는 씩씩하게 밥을 먹으면서 그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신없이 일한 다음에 먹는 밥은 늘 꿀맛이고, 절대 모자라지 않으며, 요란하지도 않다. 액자에 담긴 사업자등록증은 숫자와 글자 몇 줄만 빼면 내 것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진작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이미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고도 남은 시간에 나만 혼자 사장님의 사업자등록증과 독대를 하고 있다. 업자 대 업자로.


사업은 결국 '나의 일'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원해서, 자신 있어서, 또는 단순하게 그것만이 내가 할 줄 아는 일이라서 피할 수 없다는 듯이 덤벼드는 순간에 시작되는, 온전히 나의 책임인 나의 일. 사장님은 한식을 선택했고, 나는 때늦은 점심 식사를 감수하기로 선택했다. 나의 특기를 살려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고자 크고 작은 회사에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굳이 내 이름이 적힌 사업자등록증을 한번 가져보기로 결정했다. 이건 병이다. 프리랜서로 처음일을 시작하던 때에도, 사업자등록을 하겠다고 말하던 그때 그 순간에도 결국 내가 원한 건 똑같았다. 그때의 나에게 '대체 왜 사업자등록을 했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마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서 그랬다고 대답하겠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개인적이고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이유였음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일을 통해 세상에 나의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업자등록을 함으로써 세상에 내가 발붙이고 설 자리가 마련되는 것 같았고, 아마 그때의 나는 그런 감각을 지나치게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어쨌든 사업자등록을 하려면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것 또한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나의 '비즈니스'를 위해서 사무실을 꾸려야 하다니, 이제 진짜 어엿한 사장님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쓸데없이) 대학 때부터 해온 예술 활동 때문에 작업실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이참에 오랫동안 필요로 했지만 괜히 무리하는 일이 될까 봐 모른척해왔던 작업실(+사무실)을 합법적(?)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어느 동네로 가면 좋을까' 하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임대료와 공간의 효율성을 따져가며 몇 주 동안 치열하게 고민했다. 사실 사무실을 마련함에 있어서는 더 합리적일 수 있는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다. 공유사무실에서 시작하는 것도 가능했고 심지어는 따로 사무실을 마련하지 않고 등본에 나와 있는 집주소를 사업장으로 적어 넣어도 등록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내가 한겨울에 굳이 발품 팔아가며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 이유는 이 죽일 놈의 낭만 때문이었다. 아, 자고로 사무실이란 이래야지. 작업실이면 폼이 좀 나야 하는데. 작업실에는 이거 할 공간도 있어야 하고 저거 할 공간도 필요하고 그 와중에 난 비즈니스도 해야 하니까 이런 것도 필요한데. 네? 얼마라고요? … 좀 더 저렴한 공간은 없을까요…


물론 낭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같이 일해온 동료 프리랜서들을 직원으로 등록할 계획이었으니 내 집에서 일할 수는 없었고, 조용한 데스크 업무 외에도 전동 공구를 이용해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 또한 필요했으며, 보관해야 할 재료와 장비만 해도 방 한 칸은 나오는 상황이었다. 사무실을 구하러 다니는 나를 본 누군가는 자꾸 지식산업센터나 공유사무실을 권했지만 내게는 그게 그다지 합리적인 선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허름한 상가나 사무실의 임대료가 위치와 공간 대비 더 저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사무실을 구하기 직전 몇 개월 동안 우리는 그전까지 일터로 삼던 24시간 카페 근처의 작은 공유오피스 사무실을 임대해서 써본 경험이 있었다. 그 임대사무실은 거의 방음이 되지 않았고, 공간도 충분치 않았으며, 심지어 늦은 밤까지 작업하는 날에는 불 꺼진 깜깜한 복도를 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해 헤쳐나가야 하는 등 단순하게 가성비 때문에 참고 견디기에는 어려운 단점이 많았다.

이래저래 바라는 것이 많았다 보니 사무실을 보러 다니는 것이 무척 설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끝내 내 요구사항에 딱 들어맞는 곳을 찾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혹시 지금 내가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가? 나한테 정말 이런 조건들이 모두 필요한 걸까? 자꾸 의심하면서, 내가 내건 모든 조건들이 정말 효율적이고 합리적인지를 계속 되물었던 것 같다.


그런데, 20대 중반인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이런 가소로운 낭만 좀 가지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단 말인가? 이건 나의 일이니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할 뿐이고 또 그 결과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사업을 한다고 하면 어쩐지 효율과 합리성, 가성비 같은 것들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예술을 전공한 자로서, (이건 어쩌면 좀 편협한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지만) 효율과 합리성, 가성비를 따지는 것에는 별로 재주가 없다. 애초에 이런 내가 대체 왜 사업을 시작했던 거지. 메타 인지가 굉장히 부족했음을 반성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나는 말한다… 사업이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뿐이라면 세계는 지금처럼 멋지고 다채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장님들이 나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일에 대한 구제불능 수준의 낭만과 철학을 품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 음식점의 사장님은 왜 사업자등록증을 고이 액자에 넣고 굳이 벽에 못질까지 해가며 작품처럼 전시해 놓기를 선택했을까? 어쩌면 정식 등록된 사업체임을 증명해서 손님들로부터 신뢰를 얻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고, 또는 나처럼, ‘나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일은 가급적이면 평생 해야 할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도 있고 자아실현 때문도 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저 그런 존재로 살다 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를 원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며, 결국 이렇게 얻은 인정이 곧 명예가 되어 돈이 따라오는 법일뿐인데, 나는 애초부터 나의 목표는 돈이라고, 종종 착각을 한다. 사업은 성과와 결과로 증명되어야만 지속가능해진다는 것은 알지만, '돈으로 착각된 목표' 때문에 사업의 과정 자체를 번거롭게 느끼거나 매 순간 겪는 어려움을 단순히 해결해야 할 장애물로만 받아들인다면 일을 해야 하는 나의 일평생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사업을 하기로 선택했는가? 이 모든 허세와 낭만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은 목표라기보다는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목표는 나만의 (유치하고 구제불능인) 철학과 낭만을 녹여낸 사업의 비전에 대한 것이어야 하고, 돈은 내 비전을 평가한 성적표, 즉 결과로 보고 방향을 수정하거나 설계하는 데에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목표라면 사업보단 차라리 주식이나 코인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런 일들에는 굳이 번거롭게 비용 들여가며 사업장을 마련할 필요도, 온갖 서류와 사람 응대에 시달릴 이유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필승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완성된 공식이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사업 성공담을 늘어놓지만 사실은 그 이야기를 가장 값지게 느끼는 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업 도전자들이 아니라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 본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앞에 서서 내 이야기를 들려줄 자격이 주어질 정도로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야말로 그에겐 소중한 사업의 성과일 수 있다. 그게 아무리 돈이라는 성적표를 통해서 증명했기 때문에 얻어낸 자격이라고 해도 말이다. '내가 참고 견뎌온 고통과 어려움이 증명받았어.', '이제 나의 우여곡절을 남들에게도 권할 수 있을 만큼, 나의 사업은 인정받았고 나는 자신 있어.' 남들에게 자기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이런 생각들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상상만 해볼 뿐이다.

나의 일을 멋지게 키워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정말 '돈'이라는 목표만으로 해낸 걸까? 돈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 그 어떤 일이든 다 참아낼 수 있게 해 줄 만큼 강력한 동기로 작동할 수 있는가? 돈은 현대인의 종교라는데, 과연 이 돈이라는 게 인간에게 신을 저버릴 만큼의 의지와 용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나는 의심한다. 사람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무언가를 해낼 만큼의 인내와 힘을 발휘할 때에는 그 이면에 분명 돈보다 더 자연스럽고 지당한 동기가 있다. 내가 그리는 미래,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 내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의 뿌듯함, 뭐가 됐든 분명 돈은 이런 인간적인 감상과 고결한 이상 앞에서 물렁하고 약해지기 십상이다. 나는 돈을 못 벌까 봐 두려워진 내 마음이 나의 진정한 목표와 맞붙을 때, 생각보다 쉽게 패배했음을 기억한다. 내게는 분명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는 것이다. (아! 역시 내가 이래서 돈을 못 버는 걸까?)


고작 사업자등록증 발급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뿐인데 대체 왜 이런 장광설이 쏟아지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몇 주간 열심히 부동산을 돌아다닌 결과, 마침내 용산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찾아냈다. 한파가 매서운 2월이었고 함께 부동산을 돌던 동료는 너무 많이 걸은 나머지 발바닥에 염증이 생겨 반깁스를 한 채로 절뚝거리기까지 했지만, 처음으로 내 미래의 작업실이 될 공간을 보고 나와서 부동산 중개인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후에 돌아서서 서로 말없이 눈빛만 주고받고도 확신했던 그날은 무조건 내 기억 속의 아주 기쁜 날 중 하나다. 동료는 이 공간이 당초의 예산을 약간 초과한다고 내게 여러 번에 걸쳐서 알려주었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일을 조금 더 하면 그만이야, 유치하고 순진한 발상인데 그때는 또 그런 말이 내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으니 포기하고 돌아서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역시 돈은 여기서도 내 마음에게 졌다). 그곳은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의 주택가 이면도로에 위치한 상가주택의 1층이었는데, 오래된 ‘점빵’을 리모델링한 듯이 앞쪽으로는 장사를 하거나 작업을 할 법한 공간이 있고, 뒤쪽에 붙은 방은 사무 공간으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놀랍게도 사무 공간용 뒤쪽 방에는 새로 공사한 깨끗한 화장실과 싱크대가 있는 탕비실까지 따로 붙어있는 구조였다. 비록 내 예상보단 큰 고정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결코 그게 부당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최대한 빠른 날짜를 요청해서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열쇠를 넘겨받았다. 드디어 그 공간에 혼자만 남게 되었을 때, 나는 기쁨이 만연한 얼굴로 잿빛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자,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뭐부터 해야 하지?

리모델링을 하고 나서 첫 입주였기 때문에 사무실과 작업실로서는 손볼 곳이 별로 없었다. 나와 동료들은 대학 시절에 배워둔 잡다하고 엉성한 기술들을 십분 활용한 덕분에 인테리어와 수리를 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필요한 벽 한 곳에 가벽 공사를 하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페인트와 빠데를 뒤집어쓰고도 깔깔 웃으며 책상과 의자 따위를 주문하는 며칠을 보냈다. 그다음 날도 선반, 난방기, 복사기, 회의용 테이블과 지류함 따위로 사업을 위한 지출 목록은 한동안 길게 이어졌다. 게다가 직원이 생길 예정이었으니 작업용 데스크톱도 몇 대 마련해야 했고 업무에 필요한 기자재와 장비들도 재정비해야 했다. 이 모든 준비 과정을 내가 가진 돈으로만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으므로, 이 무렵 나는 진작에 사업자 대출을 알아보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들 투성이었던 시절인데 겁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 새삼 놀랍다. 사업자 대출을 알아볼 때 필연적으로 거쳐가는 곳 중 하나인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마침 작업실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었던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라 하겠다. 나는 이제 조만간 새로 주문한 프린터기로 출력한 온갖 종류의 대출 관련 종이뭉치를 담은 서류 봉투(이것도 내 회사의 이름을 박아서 멋지게 만들었다)를 소중히 껴안고 신용보증재단에 방문할 것이다. 자, 이렇게 나의 빚더미 인생이 서서히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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