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피할 수 없는 인간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벌기 위해서

by joni

사업에서 빚을 지는 것 자체는 당연한 과정에 가깝다.

사업의 모든 과정을 내 자본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안전하기야 하겠지만 자본 수익률의 측면에서는 (내가 엄청난 부자인 게 아닌 이상) 효율이 좋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사업 과정에서 빚을 지는 이유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이고, 같은 시간을 투자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건 상대적으로 효율이 좋다는 뜻이다. 시간만큼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할 자유가 있다. 시간이 금이라는 표현처럼 돈을 많이 버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다면 (그래서 풍족한 삶을 남들보다 더 길게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노동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기에 우리는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젠가 반드시 빚을 질 운명을 부여받았다. 갓난아기인 나도 결국에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더 빨리 더 많이 벌고 싶어 할 것이 뻔했으므로. 그러니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빚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채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신용보증재단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나 담보력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자들이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해 준다. 이름처럼, 재단에서 나의 '신용을 보증'하는 보증서를 적어서 은행에 제출해 주는 것이다. 은행이 보기에 '나'라는 개인은 현재 큰돈을 빌려줄 수 있을 만큼 믿음직스럽지가 못하지만, 신용보증재단에서 '내가 보증할게'라고 말해줌으로써 그걸 믿고 내게 대출을 승인해 줄 여지가 생긴다. 어지간히 잘 버는 인플루언서 이상이 아니라면, 보통 프리랜서 자격으로는 큰 대출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제 사업자등록증이 생긴 내가 신용보증재단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느꼈던 것은, 생각보다 대출 절차가 까다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의 양이 많긴 했어도 준비하는 데에 어려운 부분은 없었고, 상담 과정에서도 내 사업 분야를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있었기에 대출 금액도 예상했던 만큼 잘 승인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나의 사업 영역은 감히 대중적인 수준이라고 해도 될 만큼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고, 해당 필드에 대한 미래 또한 낙관적이었기 때문에 '청년 창업' 카테고리에서 대출을 받고자 하는 내게는 딱히 위험 요소로 꼽힐 만한 지점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의 내가 무척 자신감에 차있었던 것도, 대출을 심사하는 입장에서는 좋게 보였을지 모른다.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빌린 이 몇천만 원이 내 인생 최초의 빚이었다. 나는 학자금 대출도, 전세자금대출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세상이 말하는 '운 좋은' 젊은이였으므로. 우리 부모님이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나를 부잣집 자식처럼 대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것이 인생 첫 대출이라는 점에서 아주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당시의 내게는 이 빚이 '나를 짓누르는 굴레'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프리랜서 때의 일들을 그대로 사업자로 이어왔기 때문에 딱히 수입이 불안정한 상황도 아니었을뿐더러, 대출에 1년의 거치기간이 주어졌으므로 지금 당장 걱정에 빠져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부모님께 내가 사업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구태여 알리지 않았다. 설사 부모님이 알았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한두 번 통화하며 안부를 물을 때 말 몇 마디 더 오가는 정도에 그쳤겠지만, 나는 왠지 부모님께 대출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든가, 사실은 조금 겁나기도 했다고, 하나뿐인 자식새끼답게 징징대보고 싶다든가 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사실 굳이 그런 마음이 들어야만 자식다운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제 똑 부러지게 자기 일도 알아서 잘하는 자식'으로서의 성장 과정을 유감없이 보여줄 기회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제 우리 애가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 부모님으로서도 걱정이 되는 한편 격세지감을 느끼며 나를 대견해했을 텐데.


어쨌거나 빚이 생겼다는 감각은 확실히 내게는 좀 낯선 것이었다. 통장에 찍혀있는 숫자를 볼 때마다 이중 얼마는 남의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또 금방 몽땅 내 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기묘했다. 물론 나는 바보처럼 대출받은 '사업 자금'을 아무 데나 펑펑 써재끼거나 사치스럽게 사업을 굴리지는 않았다. 나는 가급적이면 그 돈을 잘 간수하려고 노력했고, 또 동시에 꼭 필요한 데에 잘 쓰려고 애썼다. 대출받은 자본 덕분인지 확실히 사업은 프리랜서 때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았고 수입도 전보다 많이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이 생겼다는 그 묘한 감각은 나를 자꾸만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첫 1년은 거치기간이었으므로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됐지만, 오히려 이 거치기간 때문에 시간이 가도 전혀 줄지 않는 대출 금액을 보면서 막연한 갑갑함이 들기도 했다. 1년 거치기간에 4년 상환, 단순한 계산을 해보면 이 빚이 없어지는 데까지 총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내게 5년이란 시간은 터무니없이 긴 것 같았다. 나는 독촉에 시달린다거나 당장 돈이 부족하다든가 하는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니면서, 벌써부터 이유 없이 빚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업을 정말 잘해봐야지', '진짜 돈을 왕창 벌어야지', 이런 생각들은 오히려 내가 빚을 지면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적당한 부담감이 동기부여로 작동한 셈이니 꼭 나쁘다고 할 건 아니었지만, 빚으로부터 비롯된 동기는 결국 나를 끝나지 않는 노동의 굴레로 밀어 넣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분명 내게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대출을 받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서서히 내 마음에서 흐려지기 시작했다.


사업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프리랜서 때는 손대기 어려웠던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됐고, 프리랜서 때 하던 수준의 견적 금액들은 어느새 패기 넘치던 초창기의 무용담이 되어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직원이 더 필요했다. 오랫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고 지내온 대학 선후배들, 동기들을 우리 회사의 프리랜서로 고용한 다음에 페이를 나눠주는 것이 이제는 나의 매 월말의 과업이었다. 나는 일할 땐 웃으면서 친구처럼 굴지만, 정산을 할 때는 3.3% 원천징수 계산을 칼같이 하는 고용주가 되어간다. 가끔 친구들이 내게 일거리가 없느냐고 물어오고, 또 반대로 내가 친구들에게 페이를 조금만 깎아줄 수 없겠느냐고 묻기도 하면서 그간의 관계들이 재정립되거나 뒤집어지거나 되돌아오는 경험을 반복한다. 어쨌거나 돈을 버니 좋았다. 생각했던 것처럼 업체가 되고 나니 확실히 돈을 더 많이 벌고 있었다. 금액이 적든 크든 내가 이렇게 친구들, 선후배들에게 일감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다. 나는 삶의 이런 순간들이 지속되고 더 좋아질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었고 또 반드시 더 잘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내가 과감히 사업자등록을 하기로 결정한 것과 용기 내서 몇천만 원의 빚을 진 것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이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빚은 절대로 나를 찍어 누르는 돌덩이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나는 빚으로부터 시작된 '돈을 왕창 벌어서 빚을 다 갚아버려야지'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상 때문에, 돈과 사업에 내 삶의 모든 것을 바치게 됐다. 나는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돈 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당시의 나는 분명히 돈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행복, 만족감, 성취, 성공과 같은 이미지를 돈과 결부시켜서는 안 됐다. 돈은 그저 내가 열심히 한 것에 따른 결과이자 보상일 뿐, 내가 프리랜서로 고용한 친구들이 부당한 노동 환경에 처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은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어야 했다. 나는 언제나 옳게 된 고용주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면서, 그게 다 내가 돈을 잘 벌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라고 착각해 버렸다. 이런 사고방식대로라면 돈을 잘 못 벌 때는 친구들을 저임금으로 마구 부려먹게 되어도 그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하며 어물쩍 넘기게 될까? 행복이 돈을 잘 벌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 믿는다면 돈을 적게 벌 때는 불행한 것이 당연하다는 걸까? 돈을 적게 벌면, 성취를 해내지 못한 내가 되고 마는 것인가? 아니, 돈은 그런 게 아니다. 돈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의 나는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필요에 의해(심지어 자의적으로) 수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된 당시의 나로서는, 그 빚을 졌다는 감각 때문에 '돈은 그저 돈일뿐'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말았다.


당시의 나는 분명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빚을 갚고 있었을 뿐이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든 해치워야 하는 걸림돌이었고, 내가 기다리는 건 오로지 정산, 입금날이었던 셈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돈 버는 걸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내 입장에서는 일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모든 클라이언트들은 우리 회사에 불만이 없어야 했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결과물에 충분히 만족스러워해야만 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나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사고방식의 문제다. 당시 나는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가 아니라, '돈을 받기 위해서는 일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라고 생각했다. 글로만 놓고 보면 '아 다르고 어 다른' 수준이지만 나는 이제 이 두 문장이 내 안에서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한 것 같다. 내가 이렇게나 열심히 돈을 받으려고 했던 건 결국 그 돈을 다시 은행에 되돌려주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나는 사업, 즉 '나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왜 돈을 벌기가 싫을까.

그 '아 다르고 어 다른' 사고방식 간의 차이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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