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감각
이제는 그날의 이야기를 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사업이 한참 잘되어가던 그때 당시의 내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전화 통화로 오간 내용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일정에 대해 논의한 말들을 종종 잊어버리고, 설사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는 일부를 누락시키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칠칠맞지 못한 성격 때문에 실수가 잦다고 여기며 다음부턴 더 주의하면 될 일로 넘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진지하게 사업에 전력투구 중이던 나에게 이건 너무 심각한 문제 같았다. 나는 전화보단 가급적이면 메일로, 그것도 모두가 볼 수 있는 공용 메일로 내용을 보내주기를 요청하기 시작했고, 메모를 위한 노트를 여러 권 준비해서 책상과 가방 여기저기에 쑤셔 넣고 다니는 등 어떻게든 대화를 기록하려 애썼다. 나의 갖은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종종 내가 맡은 프로젝트들은 일정이 꼬이고 견적 금액이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모두가 골머리를 싸매게 되는 사건사고로 변질되는 경우가 자꾸 생겨났다.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고심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심한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라지만 왠지 내가 저지르는 실수들이란 흔히 얘기하는 '인간적인 실수'의 범주를 살짝 벗어나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내게는 갚아나가야 할 빚이 있고, 여러 사람 불러다 놓고 큰돈이 오가는 판에 앉아있으면서, 이런 대학생들도 안 하는 원초적인 실수를 한다는 점이 스스로를 무능하고 멍청한 인간으로 폄하할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는 듯했다. 나는 수시로 '죄송하다'라고 말해야 했고, 이런 사과의 말들은 클라이언트들의 머릿속에 내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쌓아 올려졌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마음에도 나의 죄송하단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고, 이것들이 결국에는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돌덩이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없었고 내가 떠올리는 제안들은 모두 내 안에서 터무니없는 소리가 되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맞다.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앞선 내 이야기들이 모두 엄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나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할 수가 없었다. 내 실수가 보통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다 실수해도 나는 실수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잣대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대표니까. 나는 돈을 잔뜩 벌고 싶고, 갚아야 할 빚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해내야만 해, 더 똑바로 해야 해, 이런 생각들이 사람을 얼마나 제 구실을 못하게 만드는지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내가 저지른 실수는 언제나 자책과 고통이 되어 내 마음속에 눌러앉아버렸다. 욕을 먹는 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런 생각들은 내가 돈 버는 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 이것은 의외로 엄청나게 큰 약점이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협력업체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소통해 오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외주'라고 부르면서도 실상은 반쯤은 아랫사람 (심하면 노예) 부리듯 하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박살 난 내가 후자의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던 모습을 지금에 와서 반추해 보면 처량하기 그지없다. 나는 미안해할 일이 없는데도 자꾸만 죄송하다고 말하고, 상대방은 사과받을 일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사과를 자신의 발밑에 차곡차곡 쌓으며 본인의 위치를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죄송하지만 이 일정 한번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나는 지나치게 공손해서 결국 스스로를 노예처럼 보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상대방이 보기엔 내가 정말로 노예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실수가 너무 많은 나 자신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마저도 내 모습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칠까를 전전긍긍하며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만 생각하는, 뒤틀린 형태의 '자의식 과잉'일 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노예처럼 보인 나를 노예처럼 부렸던 것뿐인 당시의 클라이언트들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빚을 끼고 사업을 한다는 것, 그건 결국 어떤 상황이든 참고 견뎌서 열심히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스로 가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막연한 감각이 되어 나를 노예로 만들었다.
그날도 꼭 이런 식이었다. 갑자기 바뀐 업무 지시에 대해 상대방은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일전에 이렇게 진행하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라고 주장했고, 나는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내용을 전달받은 바가 없는 것 같았으며, 그렇다면 필시 이것은 또 내가 까먹었거나 실수를 저지른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어 '제가 죄송합니다. 관련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내일 일정에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오후 7시를 살짝 넘긴 시각, 나는 당장 내일 시작될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느라 서둘러 거리를 누비던 중이었다. 나는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를 무시하기 위해 애쓰며, 손에 든 휴대폰의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귀에 바싹 갖다 댄 채 길거리에 서있다. 활기차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얼어붙은 듯했다. 사실은 그리 큰 일도 아니었고 지금 충분히 수습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이미 전달받은 내용을 내가 기억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런 내가 무슨 사업을 한다는 걸까?
나는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퇴근하지 못한 채로 내일 일을 준비 중이던 (피곤해 보이는) 우리 직원에게, 나는 또다시 저지르고 만 나의 실수를 비통한 마음으로 설명해야만 했다. 분명히 또 내가 잊어버린 것 같다고, 내가 잘못한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나 우리 직원은 나와는 정반대로 탁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이건 이 직원의 가장 멋진 자질 중 하나다. 직원은 대번에 내 말을 반박했다. "그분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데?" 직원이 그간 그 사람과 주고받은 메일과 카카오톡 대화방의 내용을 다시 훑어보고는 내게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일전에 이렇게 말씀하셨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답변했으며, 지금에 와서 다르게 해달라고 요청하시는 것은 본인이 말을 바꾸시는 것 같다'라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었다는 것과,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것인지를. 그 사람은 내가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힌 인간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본인의 실수를 나의 실수로 믿게끔 만들 수 있었다. 이 사람 말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대했을까? 그간 남의 잘못까지 다 내 실수라고 착각하며 스스로 자괴감에 빠졌던 날들이 내게는 얼마나 많았던 걸까? 나는 문득 시계를 올려다봤다. 오후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그 사람은 퇴근하고 저녁 식사까지 마쳤을 그런 시각, 죄 많은 나와 죄 없는 우리 직원 둘만 이 생기 없는 사무실에 남아서 그 사람이 싼 똥을 대신 치워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이게 다 내가 부족해서였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 내가 노예처럼 보여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며칠 뒤에 나는 병원에 갔다. 여러 번에 걸쳐서 상담을 받으며 복잡하고 값비싼 검사도 몇 가지 받았다. 번아웃, 우울증, ADHD(나의 기억력 문제는 실재하는 것이었다)와 같은 태그가 나를 설명하는 말들 앞에 새로 붙었다. 남들은 병명이라고 부르는 것들인데도 나는 그 결과에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홀가분했다. 나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마침내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엔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사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걸지도 몰랐다. 말의 첫머리마다, 그리고 말끝마다 죄송하지만,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부디 그러지 말라고들 했다. 자꾸 미안하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내가 정말로 죄인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그러면 내가 관계에서 을이 된다고. 그러나 나는 사과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이렇게나 엉망진창이고 실수투성이인 나를 상대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대화를 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 뻔뻔한 행동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그 정도로 모자란 인간이라고 믿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사업을 하는 동안, 빚을 갚아나가는 동안, 나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이 시기의 나는 과연 얼마나 모자란 인간이었을까? 번아웃과 우울증을 앓기 때문에, ADHD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개도 못 들 정도로 나는 자격 없는 대표였을까? 정말 그랬다면 내가 이만큼이나 돈을 벌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사업은 계속해서 잘 되어가고 있었고 나와 한번 거래했던 회사들은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일이 생기면 꼭 내게 다시 전화를 해주었다.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맡겨주는 회사가 많았다는 것,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고객사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분명히 나름대로 잘하고 있었고 회사로서의 평판도 좋았는데도, 나는 일하는 나의 모습을 미워했다. 스스로를 실수투성이에다 무능한 대표라고 여겼다. 어떤 사건사고가 터지든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버리고는 더 깊이 따져 보려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내가 못 미더운 인간인 것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더 많이 벌고 싶은 마음 앞에서, 더 직접적이고 간결하게 말하자면 '돈' 앞에서, 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을 가장 먼저 던져버렸던 것이다. 당장 나부터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타인이 나를 존중해 줄 리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고객사들이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었다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인 셈이다.
이제 나는 내가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지나치게 순진했고, 촌스러운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인간일 거라고(이것도 일종의 자아 비대증이다), 나는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이런 사고방식이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들마저도 고생스럽게 만들고 있었으므로. 리더가 멍청하면 직원들이 고생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멍청한 리더인 나는 그저 내 일을 잘하고 싶었고, 언제나 모두에게 최선을 다했으며, 성실히 빚을 갚고 있었을 뿐이지만 결국 지금의 이 방식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돈 버는 것에만 몰두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땅만 보고 걷던 나는 이제 문득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대로는 사업도, 돈 벌기도, 빚 갚기도, 커리어를 쌓는 것도 모두 무리가 될 거란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지도를 펼쳐 들고 내가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를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말로 구글 맵을 켰다.
이것이 내가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차 되던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