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와 사업자는 천지차이다
프리랜서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내게 과분한 프로젝트를 맡기려는 회사가 나타났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꽤 큰 회사였고, 내게 맡기려는 프로젝트도 유명한 식품 기업의 인기 제품에 대한 프로모션이었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나는 프리랜서로서는 꽤 잘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리랜서로서 잘한다는 것, 그것은 (때로는) 비인간적인 노동량과 불가능한 일하기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자고로 밤낮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작업량에 비해서 작업 단가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후려쳐져야 비로소 클라이언트로부터 일 잘하는 프리랜서라는 칭호를 하사 받을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기업들이 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프리랜서를 선택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처리하려는 일이 단발성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내부에 관련한 전문 인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어떤 회사들은, 무지막지한 난이도의 업무에 대한 비용 절감과 밤낮과 주말을 구분하지 않을 정도의 신속한 일처리를 목적으로 프리랜서를 고용하기도 한다. 당시 같이 일하던 동료로부터 내가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비용 절감과 신속한 일처리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이다... 평소보다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다면 그에 대한 비용을 별도로 더 지불한다는 것이 차라리 합당한 발상이지 않을까? 아아, 이건 수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에서 비롯된 내 동료의 조용한 분노라고 치고 그냥 넘어가자.
어쨌거나 당시의 나는 계속 일을 했다. 프리랜서는 어딘가에 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프리랜서는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없다. 회사원처럼 나인 투 식스, 휴가, 병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것이 결국 나 하기 나름인데도 불구하고. 왜? 일을 멈추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여태껏 같이 쭉 일해오던 클라이언트가 "이 건 맡아서 진행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올 때, "죄송하지만 제가 내일부터 일주일 정도 휴가를 가려고 합니다. 다음 주부터 작업이 가능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라고 되묻는 건 우스운 일이다. 이 클라이언트는 그냥 "알겠습니다. 휴가 잘 다녀오세요!(그러면 다른 프리랜서를 찾아봐야겠군)"하고 떠난 뒤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을 뿐이니까. 일하는 게 다들 그렇지 않나? 어지간하면 여태껏 손발을 맞춰온 사람과 쭉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쩌다 그 사람에게 사정이 생겨 다른 사람과 일을 한번 진행하게 되면 그 뒤로는 전에 같이 하던 그 사람에게로 돌아가기보다는(새로 구한 사람이 어지간히 일을 못하지 않는 이상) 마지막에 함께한 새 사람과 일을 지속하는 게 더 편하다. "휴가 잘 다녀오셨나요?"와 같은 인사치레도 업무에서는 그저 타이핑 노동일뿐이므로. 내가 원하면 며칠 쉴 수 있다는 것, 어제 늦게까지 작업했으므로 오늘은 늦잠을 자겠다고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이 '자유로움'이 결국에는 나의 한 달 월급을 결정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변질되는 건 시간문제다. 결국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면서 일하는 프리랜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언제고 아무 때나 연락해도 무조건 'OK'를 외치는 프리랜서가 살아남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성형 관련 플랫폼과 지속적으로 일을 하던 때였다. 당시 콘텐츠의 성격상 작업 과정에 성형 수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홍보를 원하는 병원의 의사들이 직접 관련 있는 의학적 자료(문서와 이미지 등)를 갈무리하여 내쪽으로 공유해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자료들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이해하여(!)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고 때로는 요청에 따라 전달받은 이미지를 참고 자료로서 콘텐츠에 삽입하기도 했다. 코수술, 쌍꺼풀 수술, 지방 흡입 등의 토픽을 몇 달간 반복적으로 다루다 보니 어느새 나는 당장 성형외과 상담사로 취직을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가 되었다...
그 주의 콘텐츠 주제는 가슴 성형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작업에 앞서 해당 병원의 의사가 보내온 자료.zip 파일을 전달받아 압축을 풀었다. 가슴 수술의 과정과 다양한 방식을 설명하는 텍스트 자료를 비롯하여 각종 보형물의 제조사 설명서 PDF 파일 등이 잔뜩 들어있는 폴더를 찬찬히 훑으며 머릿속으로 콘텐츠의 구성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텍스트 자료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미지 자료들 사이에... 내가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나는 성희롱 같은 걸로 의사(의느님)를 고소하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불법 포르노(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영상)의 한 장면을, 그것도 무려 GIF 파일로 잘라놓은 움직이는 이미지를 콘텐츠에 실제로 포함시킬 '예시'랍시고 첨부해 두었기 때문이다. '예시 1', '예시 2', '예시 3'... 나는 의사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의사가 되려면 무지막지하게 많이 배워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비상식적인 요구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기 병원 홍보를 위해 제작하는 콘텐츠에 불법 포르노를 불법으로(저작권까지 논해야 하다니) 캡처한 장면을 넣겠다고 하는 것이 어째서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걸까? 본인에겐 그게 순수한 '의학적' 탐구의 목적일 뿐이고 '관찰의 대상'일지 몰라도, 그 콘텐츠를 보게 될 소비자나 그걸 작업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아니다.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내가 지금 난데없이 이 몰지각한 의사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내가 왜 사업자를 내기로 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프리랜서는 사업자로 일할 때보다 업무 과정에서 이런저런 괴상한 일을 훨씬 더 많이 겪는다. 어쩌면 프리랜서는 '개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기에 오히려 각종 '사짜'들에게 접근성이 높은 걸지도 모른다. 사업자등록번호가 있고, 사무실이 있고, 어느 정도 번듯한 이름을 걸고 하는 업체로 보이게 되면 일단 고객의 풀(Pool)이 달라진다. 어딘가 하자가 있거나, 단가가 지나치게 싸거나, 조금 치사한 면이 있는 일감을 가진 사람들은 공식적인 업체에게 연락하기를 꺼려한다. 어딘가 켕기는 면이 있어서 업체에서는 거절할 것 같은 일들이 프리랜서에게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 셈이다. 피라미드 구조의 계층처럼 논하기는 싫었는데.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가끔은 프리랜서에게 주어지는 일들이란, 정말 그렇다. 업계의 청소부처럼, 브라만이 던진 것들을 크샤트리아가 줍고... 바이샤가 던진 일을 수드라가 줍는 것처럼... 프리랜서의 일이란 때로는 불법 포르노를 마주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겪은 현실이라 하겠다. 사족이지만 나는 그 불경한 포르노 이미지를 콘텐츠에 삽입하는 것을 거절했다. 분노를 담은 정중한 어조로 분명하게.
어쨌든 내게 갑작스럽게 맡겨진(과분한) 유명한 식품업계의 프로모션 프로젝트 때문에 나는 진지하게 사업자 등록을 고민하게 됐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프리랜서의 업무 환경에 대한 부분을 떠나서, 세무와 관련해서도 나는 서서히 프리랜서의 한계에 대해 이미 체감하고 있었다. 1. 정산받는 모든 금액이 고스란히 내 수입으로 잡힌다는 점과 2. 작업의 단가가 높아질수록 클라이언트로부터 세금계산서 발행을 요청받는 빈도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프리랜서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없으며, 일한 것에 대한 세금 처리로 3.3%의 원천징수가 이루어지는 방식인데, 대부분의 업체들은 세금계산서 발행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러니까 나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을 필요가 있었다.
1. 의 경우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해 보자면,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산 금액 전부가 단순히 나의 수입으로만 취급된다는 말은 내가 실제로 번 돈보다 더 큰 비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지우개를 만들어서 파는 일을 하고 있는데, 지우개의 판매 수입이 10만 원이고 그중 재료비가 4만 원이었다면 나의 실제 수입은 6만 원이지만 종합소득세는 10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세금이 과도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수입으로 잡히는 금액이 커질수록 세금을 계산하는 비율도 높아진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국세청에서는 나를 돈 잘 버는 슈퍼스타 프리랜서로 취급하지만 실제로 나는 경제적으로(시간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으며, 스스로를 매일매일 죽어라 일만 하는 노예 같다고 느끼는 그런 요상한 괴리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 무렵의 내 머리통은 바로 이 요상한 괴리에 빠져있는 채로도 그저 일하기 바빠 이런 세무와 관련한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너무 행복한 집요정 도비처럼 피곤했고, 세금을 너무 많이 냈다.
(여기서부턴 정말이지 사족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무렵의 내게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그냥 무척 기쁜 일이었다. 물론 나는 '일 잘하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쉬는 날 없이 매일매일 카페에서 날밤을 새웠고(당시만 해도 이게 민폐가 아니었다. 정말정말정말정말로다걸고), 맡은 일은 내 눈에도 아름답게, 클라이언트 눈에도 만족스럽게 보일 때까지 무한히 수정하고 또 수정했으며, 작업 단가가 지나치게 합리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순수한 시골 출신의 배포대로(나는 촌스러워서 돈을 못 번다), 내가 돈을 주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감각 자체를 사랑했다. 예술은 배부른 자들의 유희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세상에 실질적으로 쓸모 있는 일이 아니라고 폄하당할 때마다 나는 그걸 전공으로 선택한 나 자신의 가치마저도 덩달아 폄하당하는 것 같아서 울분에 차곤 했다. 실제로 예술 전공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이렇다 할 직업 한번 제대로 가져본 바가 없었던 나는 누군가에게 그 쓸모와 유용함을 증명해 보인 역사가 없었다. 내 졸업 작품이 그런대로 눈에 띄어 여기저기 불려 다니던 시절에도 나는 나의 가치를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예술 생태계 바깥의 실용적인 사회에서는 나를 그저 한량, 백수 정도로(요즘 말로 하면 쉬었음 청년이 된다) 취급했을 뿐이다. 시골에서 지방의 소도시로, 지방의 소도시에서 서울로 흐르는 내 삶의 궤적을 따라가 봐도, 나는 한결같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하는 올바른 자식/학생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유년기에는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 대신 시골의 논밭을 거닐었고, 학창 시절에는 내신 공부와 모의고사 준비보다는 노래방과 번화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방식을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내가 서울로 대학을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고 내신을 거의 안 보는 예술 전공과목 덕분이었으며 동시에 재앙이었다. 나는 일하는 나 자신이 뿌듯했고, 프리랜서로서 성장하는 나 자신이 너무 만족스러웠던 나머지 다단계 업체의 프로젝트도, 불법 포르노의 이미지도, 아리송한 세무도 그냥 견디고 참는 것이 가능했다. 아니, 단순히 견디고 참는 것 이상으로 그것마저도 마냥 '괜찮았다'... 무식한 나는 도시에서, 그것도 서울에서 살아남을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던 셈이다.
이 세상과 사회는 분명 예술을 한답시고 제멋대로만 사는 내게 '낙오자'라는 딱지를 붙일 만반의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낙오자 딱지 대신 프리랜서 명찰을 달고 나타나자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대기업의 프로모션 프로젝트가 내 손에 굴러들어 온 것이다. 이걸 삐뚤빼뚤하게만 걸어온 나에게 돈까지 주고 맡기려 든다고? 이런 건 좀 번듯하고 똑바른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었어? 이제야 드디어, 세상이 무려 돈이라는 것을 내게 지불함으로써 나의 가치와 존재의 목적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일에 치이고 어떻게든 통장에 돈이 찍히는 나의 상황을 두고 '드디어 세상에 내 자리가 생겼다'라고 표현하곤 했다. 나도 이제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능하고 있구나. 다들 귀하고 중하다고 말하는 이 돈이라는 걸 내게 덥석 덥석 내어줄 만큼 나를 인정해 주는구나. 정직하게 씨를 뿌리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가꾸면 나무에서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자라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 나는 세상과 돈이 내게 이토록이나 다정하고 온화하며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 순진한 자여! 가여운 촌사람이여! 나는 한층 더 꿋꿋하고 당당하게, 돈과 일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져 보기로 했다. 내가 사랑에 빠진 이 '인정받는 감각'을 지금보다 더 끌어올리고 고양시키고자, 다들 그토록 부르짖는 위대한 세금계산서를 마음껏 발행해 드리고자, 나는 사업자 등록을 진행하기로 결심한다. 프리랜서로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보다는 이런 순진무구한 발상이 내 사업자 등록의 직접적인 계기였음이, 지금 되돌아보면 참으로 통탄스럽다. 어쨌거나 사업자 등록을 위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럼에도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