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을 벌면서 배운 것들 3/3

3. 나의 윤리관을 점검해 보자

by joni


여러분은 돈만 벌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가? 인터넷에 흔히 떠도는 '밸런스 게임'과 같은 이상한 밈들이 떠오른다. '지금 당장 1억 받기 vs 나 대신 친구 감옥 보내고 100억 받기'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물론 내가 겪은 일은 이만큼이나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윤리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 정도는 됐던 것 같다.


3. 나의 윤리관을 점검해 보자

처음에는 그냥 새로 나온 강아지 사료의 프로모션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을 발주한 회사의 이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 회사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다들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꽤 오래된 다단계 회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겠다. 다만 내게 전달된 이 신제품 강아지 사료에 대한 설명만큼은 참 그럴싸했고 취지 또한 괜찮아 보였다. '휴먼 그레이드'라고 해서 사람이 먹어도 무방한 건강한 원료만을 사용해서 만든 건강한 강아지 사료, 프리미엄 강아지 사료라고 설명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휴먼 그레이드' 등급의 애완동물 사료라는 개념 자체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미 시중에 다른 많은 사료 회사들이 판매 중인 카테고리였다. 이 회사는 그런 타 브랜드의 포뮬러나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데 그때 당시의 나는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저 이 회사가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가치 있는' 시도를 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나는 '다단계 회사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제품에 신념과 진정성이 담겨 있잖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판단한 건 진짜 큰 실수였다. 나는 정말 그런 줄 알고, '진정성'과 '신념'을 콘텐츠의 키워드로 잡고 내가 가진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이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일조해 버렸다. 글로 적고 보니 너무 끔찍하다. 순진함과 일에 대한 열정이 잘못 쓰이면 이렇게 된다. 우리는 무지함을 변명 삼을 수 없다. '여기서 차선 변경을 하면 안 되는 줄 몰랐다', 아무리 교통경찰한테 호소해 봤자 경찰은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며 딱지를 끊어서 창문 틈으로 밀어 넣고 떠날 뿐이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몰랐네 어쨌네 해봤자 소용없음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유명한 다단계 회사의 콘텐츠를, 열과 성을 다해서 제작했던 인간이다. 나의 순진함과 멍청함을 공개비난하라! 나는 아직까지도 이 일을 잊지 못한다. 웃기지만 동시에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프리랜서들 뿐만 아니라 외주업체로서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정말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인간인가? 아니면 내게도 신념과 업무 윤리라는 게 있는가? 이 다단계 회사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돈은 그냥 돈일 뿐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그냥 일을 하는 거고, 일을 했으니 돈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에는 모순이 있다.

최근 들어 캄보디아에서 벌어지는 한국인 납치, 감금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처음에는 문자 그대로 한국인들이 납치되어 감금된 상태로 불법적인 사기 행각에 이용된다는 게 사건의 전부 같았지만, 지금은 그 내용이 조금 바뀌었다. 캄보디아에서의 피싱 사기, 납치 등에 가담한 한국인들 중에는 그 일이 불법적인 것임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뛰어든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방송사에서 직접 취재한 인터뷰들을 통해 중간에서 납치 과정을 돕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그때의 내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이 사람들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직접 사람들을 납치한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이 사람들을 데려다준 것뿐. 그냥 돈을 번 거고, 일을 한 것뿐이다.' 이건 진짜 그때 당시에 내가 했던 말이랑 본질적으로 똑같다. 내가 다단계 회사를 운영하는 게 아니며, 나는 그냥 일개 프리랜서로 고용되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한 것일 뿐, 이게 내가 하는 일이고 나는 이렇게 돈을 번다는 식의, 무언가 중요한 것들은 깡그리 무시해 버린 채로 '돈을 버는 것일 뿐'이라고 결론만 말하는 안일하고도 모순된 태도다.


프리랜서란 결국 언제나 나를 고용한 회사의 이익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느 회사 한 곳에 소속되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제는 맥주 홍보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내일은 알코올 중독에 대한 경각심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기업들(및 개인들)의 개수만큼이나 다양한 가치관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또 그게 보는 사람에게 잘 가닿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인 내 일이, 비록 내게 금전적인 보수는 보장할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나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새삼 또 깨닫는다. 내가 왜 돈을 못 버는지. 나는 '돈은 그냥 돈일 뿐'이라는 말을 폐기해 버렸다. 내가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의하기 힘든 것들을 지속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게 내 일이라면 나는 이걸 계속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 문장과 '돈 벌기' 사이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돈은 그냥 돈일 뿐'이라는 내 과거의 발언을 이대로 그냥 폐기해 버린 것이, 어쩌면 내게는 돈을 벌 기회의 창을 꽉 닫아 잠가버리는 일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뚤어진 윤리관을 가져야만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가 아니다. '돈은 돈일 뿐'이라는 말속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잃지 않으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찾아내고 만들어낼 수 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은 것뿐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아직 완벽하지 않고, 절대불변의 진리라는 건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미 수많은 사업들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명백하게 윤리적인 선을 넘은 것들도 물론 있지만(ex. 다단계) '새로운 가치'와 '선 넘음' 사이에서 아직 그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들도 아주 많다. 프리랜서로서(외주업체로서) 이런 일들을 다룰 때에는 결국 '나'라는 개인의 윤리관이 무척 중요해지는 셈이다. 무조건 피하고 거절하면서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마냥 흘려보내기보다는 그런 상황에 대비하여 본인의 윤리관을 누구보다 예민하고 날카롭게 벼려둘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과거의 나처럼 돈을 벌고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면 어떤 식으로든 그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동시에, '돈만 주면 뭐든 한다'라는 노예적인 사고방식 또한 사회적인 의미에서 지속 불가능하다. 우리는 계속 현명해져야 하고, 돈을 번다는 것이 반드시 나의 어떤 면을 포기하는 일이 된다든가, 나의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남게 된다든가 하는 상황을 타파해야 한다. 나는 돈을 버는 일 자체가 개인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무언가로 각자의 삶 속에서 기능하기를 바란다. 직업이란 원래 그런 것임에 틀림없다. 돈은 내가 잘하고 있음을,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옳게 되었음을 증명하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실제로 세상에서 돈이 그렇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과거에는 무작정 '돈은 돈일 뿐'이라고 말하며 아무 일이나 했었고, 지금은 또 반대로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르면 거절해버리기만 한다. 비단 윤리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작업의 단가나 업무 방식에 있어서도 무언가 나의 가치관에 반하는 내용이 있다면 자꾸 몸을 사리고 내빼려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그간 일하면서 호되게 당한 경험이 많아서인지 생각은 마비되고 용기보단 두려움이 앞선다. 나는 돈이 내 삶의 걸림돌이 되게 만들 수는 없다. 확신하건대, 나는 돈을 잘 벌기 위해 지금보다 더 섬세하고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프리랜서 시절에 겪었던 이런저런 경험들을 반추하며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원칙을 세워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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