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을 벌면서 배운 것들 1/3

1. 희망과 꿈은 때때로 좌절되기도 한다

by joni


역시 세상은 넓고 별의별 일거리들이 다 있다.

이제 막 프리랜서가 되어 이리저리 부딪치며 돈을 벌던 시절은 '경제 활동의 기초적인 구조를 배워가는 단계'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일감들이 떠돌아다니는지, 어떤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지 등을 이해하고 깨우치게 해 준, 피와 살이 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아무 데서나 막 구르며 일하던 초창기 시절에 내가 겪었던 몇 가지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내 경험이 유난히 특별했다기보다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두 번쯤은 겪어보았을 법한 사례들이기에 분명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리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이 사례들을 통해 프리랜서라면(또는 사회인이라면) 응당 알아야 하고 또 이해해야 하는 기초 소양 몇 가지를 배워보도록 하자.



1. 희망과 꿈은 때때로 좌절되기도 한다

자, 다들 상상을 해보면 좋겠다.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 멋도 모르면서 프리랜서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설치고 다니는 중인 철없는 젊은이로서, 신생 연예기획사에서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는 데 필요한 홍보용 콘텐츠를 제작할 프리랜서를 구한다는 온라인 공고를 접했고 결국 이 회사와 미팅을 잡는 데까지 성공했다. 전달받은 회사의 주소지는 강남 모처. 미팅 당일 나는 지도 앱이 안내하는 대로 열심히 움직인다. 지도 앱은 내게 지하철 역에서 나와 유명한 빌딩을 지나치라고 지시하더니 이후로 좌회전, 우회전을 거듭하여 결국 어수선한 골목길에 들어서게 했으며, 끝내 한 주거용 빌라 건물 앞에서 나를 멈춰 세웠다. 내가 찾던 회사명이 적힌 간판이 거기 실제로 달려 있는 것을 재차 확인한 뒤 빌라의 지하층으로 내려간 나는 그곳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드디어 프리랜서 구인 공고를 냈던 마케팅 담당자를 만난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인 회의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총 3명이 모여 앉았다. 조금 긴장한 나와 그런 내게 물을 가져다주는 마케팅 담당자, 그리고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치는 기획사의 대표까지 우리 모두 이 위대한 K-Pop 산업의 한 귀퉁이에서 중대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원탁에 둘러앉은 전문가들이다(내가?). 나는 어쩐지 떨떠름하고 묘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애쓰면서, 성실한 프리랜서의 소양을 몸소 증명하고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얻고자 가방에서 노트와 아이패드 따위를 꺼내 업무에 대한 설명을 받아 적을 준비를 한다. 마케팅 담당자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에 앞서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트레이닝복 차림의 앳된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와 테이블 옆에 공손하고도 절박한 얼굴로 줄을 섰다. 대부분이 내 또래일 것 같은 이 남자아이들은 이 순간의 나만큼이나 어리둥절하고 긴장되어 보인다. 그러나 기획사 대표는 왠지 모르게 자신감에 차 있다. "얘들아, 인사해라." 그러자 이 땀범벅의 꼬질꼬질하고 비실비실한 남자아이들이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이며 힘차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크아악. 나는 왠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걸까? 나는 지금 여기 처음 와 본, 연예계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가난뱅이 프리랜서인데. 그렇게 배꼽인사는 하지 말지...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인사를 마친 남자아이들을 밖으로 다시 쫓아 보낸 대표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애들 어때요?" 아하. 지금이 바로 이 전문가가 한마디 뱉을 차례인 것인가.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음...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의 배움을 통째로 뒤져보아도 이럴 때 뭐라고 답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바가 없음을 깨닫는다. "오, 네... 좋은데요?" 좋다니 대체 뭐가? 내가 아이돌의 자질에 대해 뭘 안다고 좋네 마네를 지껄이는 걸까? 이 사람들은 고작 몇십만 원짜리 일회용 프리랜서를 고용해 놓고(심지어 아직 내가 맡을 업무에 대해서는 일체 설명도 하기 전이면서) 대체 뭘 바라는 거야? 나는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과업과 지시사항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미팅에서 돌아와서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작업에 임했으며, 이후 내가 만든 콘텐츠가 실제로 대중에 공개되는 과정까지 꼼꼼히 지켜보았다. 뭐랄까, 그때 대표의 반짝이던 눈빛과 데뷔조 멤버들의 우렁찬 인사를 받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랄까? 나도 물론 열심히(그리고 맹목적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긴 하지만 그들만큼 어떤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것을 내던져본 적은 없다는 것에 대한 근거 없는 미안함? 아무리 푼돈이라지만 내가 이 허름한 사무실에서 나온 돈을 받아도 되는 건지(애들 밥이라도 한 끼 더 먹여야 되는 건 아닌지), 내가 아이돌 콘텐츠를 제작할 자격이나 있는지, 내가 납품한 작업물이 이들이 걸고 있는 기대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뭐 그런 종류의 별의별 생각에 납작 짓눌린 채로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 남자아이들의 얼굴이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작업을 완성했더랬다... 그리고 내게 절박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리던 그 남자아이들의 예쁘장한 얼굴들이 세상에서 천천히 사라져 가는 과정 또한 똑똑히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들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방식의 일을 접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노트 만드는 회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더라면 노트 제작에 사용될 이미지를 제작하는 데에만 집중했을 테고, 그런 방식은 내게 노트 디자인에 대한 전문성을 길러줬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프리랜서는 (워낙 다양한 일을 하게 되다 보니) 좀 잡학다식해지는 면이 있다. 얕은 지식을 넓게 흡수하게 된달까.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배웠고, 평소 내가 잘 알지 못하던 (아이돌 산업과 같은) 영역에서만 내밀하게 작동하는 원칙이나 논리도 알게 됐다. 아이돌 산업은 무척 치열하다. 비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듯도 싶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문자 그대로 '사람 장사'를 하는 업종이기 때문도 있지만 업무 자체가 밤낮이나 주말이 없고, 매우 빠른 템포로 돌아가며, 터무니없다고 느껴지는 수준의 스케줄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상대적으로 보수가 무척 짠 편인 것도 큰 특징이라 하겠다). 이 회사의 콘텐츠 제작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비슷한 작업을 해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쪽 분야의 일은 열정 없이는 지속하기가 힘들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잘 풀리면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을 벌기도 하지만, 초창기이거나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경우에는 밑도 끝도 없이 힘들 수가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표현에 부합하는 산업인 만큼, 내가 작업했던 이 아이돌의 흥행 실패 자체는 그리 놀라울 것도 없었다. 세상엔 이런 식으로 망한 아이돌이 정말 정말 많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한 게 안타깝지 않은 건 아니다. 아이돌 연습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연습에 매진하고, 대표는 이들을 트레이닝하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투자했을 것이다. 물론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못된 기획사 대표들도 더러 있겠지만 나는 이 대표가 진심으로 '이 멤버면 된다!'라고 믿었던 것 같아서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는 왜 (내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이 남자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었을까? 분명히 내가 첫눈에는 보지 못한 어떤 매력을 그는 보았을 것이다. 그걸 대중에게 잘 설득하기만 하면 그는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남자아이들은 '중소기업 출신 망돌'이 되고 말았고, 때문에 대표는 큰 손실을 보았을 것이다.


아이돌 산업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많은 대표들이 사업 실패를 경험한다. 모두들 어떤 식으로든 부정할 수 없는 자신만의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것임에도. 그 희망과 확신 때문에 열심히 자본을 끌어오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자신의 그림을 열심히 설명하는 데 무척 공을 들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모든 과정을 잘 통과하여 회사를 성장시키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비전을 세상에 증명해내지 못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로 폐업을 한다. 시작할 때 가졌던 희망과 확신이 헛된 것이었다고 결론 나면 그 착오의 대가는 너무 쓰고 아픈 것이다. 단순히 금전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과 희망에 대한 의심까지 감내해야 하므로. 나는 비록 프리랜서의 입장에서 딱 한번 이 망한 아이돌 그룹의 작업에 참여한 게 다였지만, 이들의 흥행 실패는 일면 내게도 영향을 주었다. 요청받은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나 또한 대표가 설명했던 각 멤버들의 고유한 매력과 개성에 대해 이해했어야 했고, 공감했어야 했다. 나는 용병답게 나의 자의적인 판단이나 비판적인 시선은 가슴 한편에 묻어둔 채로 열심히 수용했다. 그렇게 내가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찌 됐건 나도 이 대표가 보았던 비전을 (좋든 싫든) 납득하게 됐던 것이다. 그래 어쩌면, 어쩌면 그럭저럭 잘 될지도 모르지. 또 누가 알아? 이 멤버가 나중에 명품 앰버서더가 될지. 이 정도면 웬만한 1군만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내 위치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내 작업은 결국 비공개 처리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나야 했다. 내게는 이 작업물이 포트폴리오가 되어 지금까지도 남아있지만, 직접 시간과 노동을 갈아 넣어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으려 했던 대표와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는 그저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이들은 정말 세상과 공명할 만큼의 충분한 매력을 가지지 못했던 것일까? 이 대표는 아이돌 산업의 어떤 부분을 오해했던 걸까? 뭐가 됐든, 내가 (억지로라도) 공감할 수 있었던 지점들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다. 사업으로 돈을 번다는 건 결국 내가 아닌 타인에게 나만의 무언가를 이해시켜야만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세상의 눈높이에서 말하는 법을 궁리해야 하고, 내 비전이 타인에게 어떻게 가닿을지를 잘 관찰해보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걸 필요로 할지를 잘 따져 묻고 내가 가진 것들이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적용될지를 물으려면 결국 나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먼저 냉정하게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언제나 세상의 누군가는 설득에 실패하고 있다.

돈 버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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