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나도 돈을 벌고 싶다(당연히)

당연하지 나도 부자 돼서 누구보다 멋진 차 좋은 집 부모님께 효도하고 당

by joni


25년 9월 중순에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어째서?

날씨는 끔찍하리만치 쾌청하고 따뜻했다. 며칠째 터무니없을 정도로 찬란한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가을을 맞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았고 바람은 전에 없이 부드러워서 내 복잡한 머리통에 닿는 느낌이 꼭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과 비슷한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어떤 바람도 내 머리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시꺼먼 모자를 눌러쓰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엄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안될 것 같았다. 드디어 폐업을 하든 패가망신을 하든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날이니까.


사실은 그냥 일도 나 자신도 다 놓아버리고 싶어서 머리를 감지 않았기에 모자를 썼을 뿐인데 엄살을 피우고 있다. 나는 그저 묵묵히 발끝만 내려다보며 느릿느릿 사무실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감히 하늘을 올려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러서만은 아니었다.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들면 멋들어진 디자인의 고층 빌딩들, 고급 아파트들, 한없이 자유로워보이는 새들을 고스란히 마주 보아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저 높은 빌딩에 칸칸이 들어찬 사무실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직원들, 대표들과 나는 어디가 그렇게 달랐을까? 늘 주택에 살기를 원했던 나로서는 한 번도 갖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고급 아파트 한 채의 가격을 정말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기 자식들을 대신해서 손주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같은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나를 너무 우울하게 했고 길바닥에서 눈물을 쏟게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그러니 오늘 까만 모자를 쓰기로 선택한 것은 퍽 잘한 일이다. 현대인에게는 맞지 않는 위생 관념을 보유한 덕분에 머리를 감지 안은 나 자신에게 더는 불만 없다.


이 거리의 푸른 가로수들이 여기 세워진 이유가 있듯이, 나도 엄연히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로서 세상에 존재할 자격이 있다. 허름하지만 사무실도 있고 한 명뿐이지만 직원도 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대표님, 사장님, 그렇게 부른다. 나는 여태껏 열심히 했고, 성심성의껏 했다. 그런데 왜 지금 모자를 눌러쓴 채로 청명한 하늘과 따스한 태양의 응시에 움츠러들어야만 하는 하찮은 존재가 되어있는 걸까? 그렇게 비참한 기분과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30분 남짓 느릿느릿 걷는 것이 나의 출근길의 전부다. 근 몇 달 동안 이 똑같은 기분, 똑같은 방식, 똑같은 길을 걸어 기다리는 일거리 하나 없는 사무실을 왕복하는 짓을 밤낮도 주말도 없이 바보처럼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골목길 담벼락에 올라앉은 길고양이는 내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라고 (눈빛으로) 말한다. 유아적인 짓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라고. 그 싸늘한 눈빛 때문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거리의 풍경을 바라본다. 앞서 가는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에게서 돈과 인생에 대한 힌트를 얻어보려 애를 쓴다. 저 아저씨는 만약 지금 당장 벼락부자가 된다면 어떤 것부터 하려고 할까? 새 옷 사기? 자동차 사기? 집 사기? 나는 만약 오늘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면 곧장 이 천문학적인 금액의 빚부터 갚아치울 것이다. 매달 결코 까먹는 일 없이 내 뒤를 바싹 쫓는 것만이 존재의 목적인 듯한 이자, 원금, 결제일, 한도, 신용, 대출. 대체 이게 다 뭘까? 이것들은 내 마음을 울릴 멋진 단어나 관용어 하나 적지 않고도, 그저 건조하고 상투적인 한자체와 숫자 몇 개만 가지고서도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내가 번 돈과 내가 쓴 돈은 손에 잡히는 형체조차 없다. 통장에 숫자가 찍히고 또 앞에 마이너스(-) 표시를 붙여서 한번 더 찍히면 나는 기뻤다가 좌절했다가 겁에 질렸다가 환희에 찼다가 오두방정을 떤다. 정말이지, 대체 이게 다 뭘까? 하늘조차 올려다보기 싫어하게 된 내 삶은 이제 휴대폰 속 모바일 계좌에서만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내 돈처럼, 그 실체가 없다.


사실은 나도 돈을 왕창 벌고 싶다. 돈을 벌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다. 아무리 비싼 아파트여도, 아무리 멋진 자동차여도 눈 똑바로 뜨고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노골적으로 탐을 내고 부러워할 자신이 있다. 돈, 돈만 있으면 뭔가 지금의 흐릿하고 불안정한 삶이 180도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횡단보도 건너편의 복권판매점 간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빨간불 앞에 서 있다. 곧 신호가 바뀌어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동안 내 마음은 이제 복권을 사는 일조차 사치인 것을 서서히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복권판매점이라는 희망을 못 본 척 지나친다. 이걸 희망이라고 부르는 내 인생은 대체 얼마나 뒤틀려있는 것일까? 나는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면서, 일하기보다는 복권을 생각한다. 세상의 다양한 부자들은 결국 돈이란,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마음과 열정으로 겁 없이 부딪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온다고들 한다. 나는 그렇다면 포기했고, 끈질기지 못한 마음과 부족한 열정에 겁을 내고 부딪치기를 그만둔 인간이라는 것일까?


자, 사무실에 당도했다. 나름대로 분위기 있는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상가 건물의 2층 좌측 호실이 내 사무실이다. 얼마 안 되는 보증금과 월세인데 내부는 나와 직원에게 충분할 만큼 널찍하고 편안하다. 커피 머신도 있고 일하다 쉬기 좋은 소파와 회의용 테이블, 컴퓨터 등이 잘 갖추어져 있는 내 사무실. 이제 나는 내 자리에 앉아서 오늘치 돈을 벌 궁리를 하거나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기만 하면 된다. 하기만 하면 된다! 외투를 벗어서 걸어두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바탕화면을 가득 메우고,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메시지와 메일, 일정 따위가 친절하게 내 눈앞에 스스로 도열한다. 나는 오른손에 마우스를 쥔다. 눈은 모니터를 똑바로 마주 보고 나머지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왜 돈을 벌기가 싫은 것일까?

돈을 벌어야만 하고 버는 방법도 알고 있는데, 이제 나는 가루약이 먹기 싫어서 엄마로부터 꼭꼭 숨어버렸던 7살 무렵으로 퇴행해 버렸다. 이제 내게 돈이란 물에 갠 가루약을 억지로 삼켜서라도 물리쳐야만 하는 질병과도 같다. 나는 이 질병이 무서워서 매일 우울한 거리를 걸어 출근하고 모니터를 마주 본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해둔다. 이렇게 사업자를 내고 사무실까지 얻어서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하던 날의 나는 분명히, 대부분의 면역력 강한 어른들이 그러하듯, 1. 미래에 대한 희망과 2. 포부와 3. 죽도록 열심히 할 자신과 4. 열정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1, 2, 3, 4번으로 똘똘 뭉친 그날의 나만 없었더라면 오늘의 내가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무식하게 에너지만 넘쳤던 과거의 나를 좀 원망해도 되는 거 아닌가? 멍하니 모니터를 마주한 내 뒤편 창밖으로 새 한 마리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쌩 날아간다. 그 새는 길고 새까만 그림자의 칼날로 어지러운 내 뒤통수와 책상을 과감하게 쓱 베었다. 그 따끔한 깜빡임 덕분에 마침내, 나는 새처럼 겁 없고 자유로웠던 그날의 내가 고대해 온 나의 미래는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내 마음은 이 모든 것이 그저 형체조차 없는 이 질병 같은 돈 때문에 해야 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이해하고는, 내가 텅 빈 눈으로 키보드 위의 손가락을 휘적휘적 놀리며 사무실 한 구석에서 황금 같은 시간을 서서히 녹여 흘려보내는 것을 묵묵히 모른 척해준다.


동그란 얼굴형 때문에 모자 쓰기를 참 싫어했던 나는 이제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눌러쓴 시꺼먼 모자를 벗고 싶어 하지 않게 됐다. 열정 없고 겁이 많아 돈을 못 버는 나는 아마 내일도 하늘을 마주 보기 싫을 것이다. 다시 예전처럼 돈을 왕창 벌고 싶다면 이 일을 처음 시작하던 그날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날의 내게, 왜 이 일을 선택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폐업에 앞서 패가망신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