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명언 해석하기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의식 속에 갇힌 외로운 감옥의 죄수다.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인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사상을 응축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인의 의식에는 절대 직접 접근할 수 없으므로 결국 인간은 모두 자기 내부에 갇힌 존재라는 다소 절망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존재라고 보았다.
이 문장은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로 슬프다! 흔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존재'라고도 표현하는데, 인간은 결국 평생을 무리 지어 생활하는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면서도 끝끝내 타인과 완벽하게 연결될 수는 없다는 점이 설정 과다라고 부를 만큼 아이러니하고도 비극적이다. 심지어 우리 모두 언젠가 한 번씩은 느껴봤을 법한 감정이기에 반박조차 할 수 없다. 잘 통하지 않는 사람과 말을 섞다 보면 순간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막막함, 벽에 부딪친 것 같은 기분, 그러니까 우리나라 속담으로 하면 ‘소 귀에 경 읽기’ 같은 상황을 겪는다. 그럴 때는 다들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다들 나처럼 시도하고 또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가 화도 내보고 울기도 해 보고 제발 이해해 달라고 싹싹 빌기도 하는지. 나는 타인으로부터 구하는 이해와 성공적인 소통의 경험이 무척 유의미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런 ‘완벽한 이해’란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서서히 인정하게 됐다. 엄청나게 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년 전에 온라인에서 심각하게 회자되었던 일명 ‘드레스 색깔 논쟁’을 아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촬영한 한 장의 드레스 사진으로부터 촉발된 사건인데,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이 드레스의 색깔을 각각 ‘검은색 바탕에 파란색 레이스다’, ‘흰색과 금색의 조합이다’로 나뉘어서 격렬하게 싸웠다. 나는 명백히 흰색과 금색 파였고, 당시에는 파란색+검은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좀 심하게 말하면) 미친 게 아닌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드레스의 실제 색상이 파란색과 검은색의 조합인 것이 밝혀졌을 때에도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솔직히 그걸 어떻게 해야 파란색과 검은색 조합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착시와 디지털 사진 등에 일가견이 있다는 여러 전문가들이 등장해서 '흰색과 금색으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 효과이자, 사람마다 인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놓는 것을 보고도 나는 완벽하게 그걸 검정과 파랑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인지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문제의 드레스 사진을 보면, 어떤 이의 뇌는 그 사진이 역광으로 촬영되었다고 판단해서, 광원보다 앞쪽에 위치한 드레스의 색깔이 실제보다 어두울 것이라고 짐작하여 궁극적으로 흰색과 금색의 조합이라고 제멋대로 보정해 버린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의 뇌는, 이 사진이 오히려 텅스텐 라이트(노란 불빛)에 과노출되어서 드레스가 실제보다 밝게 나왔을 것으로 판단하여 자동으로 어두운 색깔로 보정해 검은색과 파란색의 조합이라고 결론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드레스의 색깔이 실제로 어떻든, 각자의 뇌가 색깔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개인이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기에, 어느 한쪽이 잘못됐다거나 이상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두 눈으로 목격했던 여러 장면들, 예를 들자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을 등지고 선 사람을 촬영할 때에 겪었던 역광에서의 어려움과 같은 나의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이 드레스 색깔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인간이 본질적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존재라면, 나는 결국 영원히 이 드레스를 흰색과 금색의 조합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뜻은 아닐까? 사람들이 나서서 이게 왜 파랑과 검은색이 들어간 드레스인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고, 내가 이걸 흰색+금색으로 오인한 이유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데, 아니 심지어는 실제 같은 드레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 색감을 살려서 제대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는데도 내 머리는 여전히 납득을 하지 못했다. 나는 정말로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나의 의식 속에 갇힌 외로운 죄수’다!
생각해 보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남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다르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늘 끔찍했다. 나의 의식 안에서 나는 편안하고 자유로우며 무척 당당하다. 나는 나의 관점을 타인과의 대화 과정에서 아주 당연하게 내뱉기도 하고, 때로는 동의를 구하거나 검증받고도 싶어 한다. 때문에 이런 종류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대화가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이다. 어째서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그런 설명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도 많다. 그런다고 내가 나의 의식이 옳다고 말하는 나의 관점을 쉽게 포기할 줄 알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또 말하고 또 설명하고 또 다른 예시를 꺼내 온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지도 몰라, 이렇게 화를 내면 좀 알아들을지도 몰라. 정치적인 문제들 뿐만 아니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도저히 접점을 찾지 못하는 세상의 다양한 논쟁들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메아리치며 맴돌고 있는 것일 테다. 정말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완벽하게 소통할 수는 없는 존재인 것일까? 이런 절망감 속에서도 우리는 왜 각자의 이야기를 떠드는 행위를 멈추지 못할까? 서로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면서 왜 우리는 굳이 공존을 택한 것일까.
하지만 나는 끝끝내 믿고 싶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거나 타인의 세계에 직접 들어가 보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소통은 결국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진심으로 가닿고 싶은 욕망으로 노력하고 애쓰는 행위 자체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와, 또는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고 마는 존재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상대가 어떤 존재이든 온전히 수용하고 납득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상대의 어떤 부분이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싫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와는 다른,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어떤 것들마저도 묵묵히 수용한다.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더 많이 가닿고 싶어서 몸을 비틀며 애를 쓰는 나는, 결국 내 의식 속에 갇힌 죄수답게 여전히 상대방의 말을 곡해하고 내가 아는 방식으로만 이해할 따름이지만, 다행히도 상대방은 그렇게 오해되고 곡해되어 내게 와닿은 자신의 상을 부정하지 않았다. 상대방 또한 나를 사랑하므로. 본인마저도 내게 와닿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죄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서로 사랑하기에 서로의 감옥을 이해(수용)한다. 말이 너무 이상한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서로 애쓰는 그 마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와 소통, 공감 이런 것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모두 각자의 세계에 갇혀있지만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내면의 고통, 슬픔을 공유한다. 모두 작동 방식이 같은, 근본적으로 같은 ‘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슷한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같은 음악을 듣고 흥겨워하며,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감명받기 때문에 모두가 동의하는 ‘명작’과 '유행'이 끊임없이 탄생한다. 예술은 그런 방식으로 인류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공유하지만 언어로는 소통이 어려운 보편적인 가치들을 감각을 통해 표현해냄으로써 소통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의식에 갇힌 외로운 죄수들이어도, 우리 모두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이건 정말 아름다운 아이러니 아닌가?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한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오해해도 괜찮다. 서로 딴 곳을 보면서 왕왕 떠드는 꼴이어도 좋다. 나는 희망을 가진다. 내 말은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타인을 이해해 본다. 소통을 포기하지 않기만 해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같고, 물리적으로는 모두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을 따름이다. 나를 가둔 벽 너머로 소리치자. 벽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독창적인 모스 부호라도 만들어 소통해 보자. 모두 각자의 방에서 고독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동시대'라는 하나의 교도소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