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왜 우리는 나이키 앞에서만 비장해지는가

by joni

Just Do It

-Nike


1988년부터 사용된 브랜드의 핵심 슬로건으로, '일단 한번 해봐!', '그냥 해!'라는 의미이다. 이는 한계를 걱정하기보다 도전을 강조하는 격려의 메시지로, 나이키의 '스우시(Swoosh)' 로고와 함께 사용되며 동기부여와 성취감, 인내 등을 상징하는 문화적 기호로 자리 잡았다. '나이키'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형수가 처형 직전에 남긴 유언인 'Let's Do It'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게 명언이 아니라면 무엇이 명언이란 말인가? 현대인이라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한 번쯤은 이 문장을 외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케팅 캠페인 목적으로 시작된 문장임에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참으로 거절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는, 짧고도 강렬한 한마디로 인식되어 버렸다. 아, 정말 그렇다. 그냥 해야 한다. 그냥 하는 게 무언가를 해내는 지름길이다. 스포츠 브랜드 기업인 나이키가 그냥 하라고 외치는 광고물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이 문장을 선택한 이유가 명확하게 와닿는다. 사람들에게 닥치는 대로 일단 ‘그냥’ 해 보라고 부추긴 다음에, '좋아! 결심했어!'라는 결단 바로 다음에 뒤따를 소비를 한시라도 빨리 촉발시키고자 함이다… 우리는 뭔가를 해보겠노라 마음을 먹은 직후에는 ‘그래서, 이걸 해보려면 뭐가 필요한데?’하고 곧장 쿠팡에 들어가 보는 법이다. 나이키의 물건들은 대단히 고가인 것도 아니니 'Just Do It(일단 한번 해봐, 그냥 해)'이라는 문장과 정말로 잘 어울리는 브랜드라고 하겠다. 우습게도 시작하려는 새로운 취미와 관련한 장비나 용품이 지나치게 비싸면 그게 또 진입장벽이 될 테고, 너무 싸면 또 시작한 기분이 안 나거나 힘내서 결심한 내 마음이 해보려는 일보다 더 크고 중한 것 같아서 어딘가 시원하지가 못할 텐데, 나이키 제품은 딱 결심한 내 마음의 무게와 대칭이 맞는 그런 가격대다. 지불하고 나서 '드디어 저질렀군. (하지만 너무 부담스럽지는 않게)'싶은 감각을 느끼며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이키와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은 진짜로 위대하고 치밀하다.


아무리 나이키가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기반한 영리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짧고 멋진 명언을 써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몇 번이나 나이키 매장에서 뜻 모를 벅참과 에너지를 느끼며 각종 러닝 용품, 등산 용품 따위를 사재낀 역사가 있으며, 그런 문장에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우면서도 또 동시에 그 문장 덕분에 이렇게 뭐라도 시도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본 기억이 있다. 그러니 'Just Do It'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소비를 유도하려는 거대 자본의 비열한 마케팅 수법이라고만 축소하려 든다면 그건 좀 너무한 처사일 거란 생각이 든다… 세상만사, 좋기만 한 것 또는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 안경은 시력을 보조해 주니 분명 좋은 물건이지만 동시에 그 무게로 사람의 코를 압박해서 형태를 비틀어버리기도 하는 것처럼, 나이키의 'Just Do It' 캠페인 또한 나와 같은 소비자로 하여금 속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도 또 뭐라도 해낸 자기 자신을 긍정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아, 나는 마음이 비뚤어져 뭐든 아니꼽게 보려고 드는 것일까? 나이키는 그저 마케팅 공룡으로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걸 받아들이는 수많은 대중 중 하나일 뿐인 내가 혼자 좀 지랄을 떨고 있는 것일까?


어찌 됐든. 그냥 하라는 이 말, 인생의 진리다. 머릿속에 아무리 위대한 아이디어와 생각이 떠올랐어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 최소한 누굴 붙잡고 떠들기라도 해야 나의 이 위대한 아이디어가 비로소 세상에 인지된다. 머릿속은 알껍질 같은 것이다. 머리에 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알껍질이 쩍 하고 갈라지며 비로소 속에 든 것에도 생명력이 깃들기 시작한다… '만약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을 때, 그 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쓰러지는 소리가 날까?'라는 유명한 사고실험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인 조지 버클리로부터 출발한 질문인데, '인지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논리를 전제로 한다. 나는 생각과 행동도 마찬가지의 논리를 따른다고 여긴다. 내 머릿속에만 머무르는 무언가는 텅 빈 숲 속에서 홀로 쓰러진 나무처럼 아무도 그 존재를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뭔가가 떠올랐다면 그냥 해야 한다. 고민과 망설임은 길어질수록 힘이 세지는 법. 한두 개뿐이었던 안 해야 할 이유가 천 개, 만 개로 늘어나기 전에 재빨리,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작해버려야 한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또 막상 해나가는 과정은 아무렇지도 않을 때가 많다. 인간이란 정말 왜 이렇게 디자인된 것일까? 망설임 없이 시도하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진화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하기 싫어서 고통받는 마음, 하기 싫어하는 나를 자책하는 마음, 고민하는 동안의 번뇌와 망설이는 동안의 초조함,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한 인간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냥 하는 사람'은 정말로 단순하게 그냥 하는 것일 테다. 이 모든 이성과 감성의 소용돌이 안에 꼼짝없이 갇힌 채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그냥 하는 걸 거다. 한 번쯤 망설이고 초조해 본 경험이 있는 우리는 무작정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을 보면 경외감이 들면서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똑같이 고민했고 똑같이 망설였을 거란 뜻이다. 해야 할 이유 같은 것들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내가 억지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러니 이유를 따지지 말고 그냥 해보라는 이 'Just Do It'은 얼마나 명료하고도 불가능한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이키가 우리에게 자신의 제품들을 선보이는 것이다. 이유? 동기? 만들어줄게, 일단 해. 우리 신발을 사면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될 거야. 엄청 싸구려도 아니고 보기에도 멋지니까. 돈 썼잖아, 해야지. 넌 이미 시작한 거야.


'여기서 속물적인 감수성이 작동하면 안 되는데...' 싶지만 사실은 나 또한 바로 이런 점 덕분에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다고 본다. 내 마음을 흔든 것은 사실 ‘Just Do It’이라는 문구뿐만 아니라, 날 위해 준비된 것만 같은 이 러닝용 신발이기도 한 게 아닐까…? 내일부터 매일 몇 km씩 달려야지. 난 이 멋진 신발을 신고 뛸 거야. 얼마나 편할까? 얼마나 탄성이 좋을까? 빨리 내일이 와서 달리기 시작하고 싶다. 이 모든 게 나이키 신발 때문에 시작됐다. 역시, '그냥' 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동기'와 '이유'가 충분해야 ‘한다’. 동기와 이유는 그다지 거창할 필요도 없는가 보다. 거창하면 폼이야 나겠지만 그런 대단한 이유를 떠올리려다가 결국 못'한다'. 나이키가 내게 뭔가를 해볼 이유(신발)를 주었다(사실 그냥 준 건 아니고 판 건데)… 사고방식이 요 모양 요 꼴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냥 해봐'라는 표현은 나이키 밖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나이키가 스우시 마크와 함께 'Just Do It'이라고 해야 비로소 내 마음속에서 뭔가 끓어오른다. 나이키는 동기와 이유(제품)를 먼저 만들어놓고 '그냥 해'라는 말을 나중에 붙이는 영리함을 보였다… 나도 나 자신에게 망설이지 말고 그냥 해보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동기와 이유를 먼저 만들어놓는 꾀를 한번 부려봐야겠다. 내가 글을 계속 쓰기 위한 동기와 이유로는 어떤 것이 좋을까? '내 인생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지속하기는 싫으니까' 정도면 될까? 인과를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제는 삶을 돌이킬 수 없어서 글쓰기를 한다'가 되겠지만(그리고 보통 때는 이렇게 인과를 거꾸로 생각하는 편인데, 이러면 궁지에 몰린 기분만 들어서 하는 과정이 썩 즐겁지가 못하다), 반대로 말하면 힘들 때 소화하기가 훨씬 편할 것 같다. 어느 날엔가 뭔가를 그만둘 이유를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미 만들어두었던 ‘해야 할 이유와 동기’를 스스로 다시 발견하게끔 나의 사고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아아 그냥 하자. 5초 룰이라는 것도 있던데. 뭔가 할 일이 생각났을 때 5초 안에 실행에 옮기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5초 안에 해야지. 하자. 그냥 하자. 아니? 왜 해야 되는데? 안 해도 되는 이유가 몇 가지나 떠오른다고! 아니, 해야 돼. 지금 안 하면 우리 인생이 무너진단다. 아... 그래? 그럼… 그냥 한번 해볼까? (ㅠㅠ)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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