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구린 드라마는 어떻게 시즌 5까지 살아남았나

재능만 있으면 경쟁에서 이긴다는 순진한 착각

by joni

며칠 전, 오밤중에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SF 드라마 시리즈 하나를 골라 시청을 시작했다. 다소 오래된 시리즈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놉시스는 흥미로워 보였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 제작자가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 작품이었기에 '뭐 기본은 하겠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리즈는 단순히 질이 낮은 수준을 넘어서서 성의가 없다고까지 느껴졌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일관성 없이 매화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휙휙 바뀌고,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다양한 에피소드를 접붙여놓은 시트콤처럼 큰 궤적을 제대로 그리지도 못했다. 분명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는 방식 또한 신을 할애하거나 다이내믹한 묘사 없이 그저 대사로만 쭉쭉 진행해 버려서, 시청자는 그저 수동적으로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는 무려 시즌 5까지 제작되었던 모양이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도 없고, 형식적인 시나리오에, 연출 또한 탁월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수준인데 말이다. 게다가 SF라는 장르 특성상 제작비 또한 적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과 대적하여 싸우는 생존자 집단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VFX와 사람 크기의 특수분장, 총기 및 바이크 액션씬이 거의 매화 등장하기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 속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무한 경쟁'이라는 키워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넷플릭스에 차고 넘치는 영화와 시리즈물들도 마찬가지의 룰을 적용받는다. 수많은 드라마의 PD들이 투자사들을 전전하며 자신이 가져온 대본을 설득시키고자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감독들도 자신의 역량과 페이를 통해 경쟁하고, 촬영 감독과 미술 감독, 배우들까지 각자의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했을 것이며, 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팀을 이루어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다. 각자의 여건과 상황 안에서 최고들만 선별하여 만들어진 드라마일 텐데 왜 어떤 드라마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접스러울까? 물론 모두의 재능이 같을 수는 없고 개인의 취향이란 칼로 자르듯 딱딱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겠지만, 내가 보았다는 그 SF 드라마 시리즈의 허접스러움은 그런 니치함이나 다양성 때문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하자 때문이었다. 재능 없는 감독, 그저 그런 배우들, 재미없는 대본의 조합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유명 할리우드 감독이 제작을 맡은 대작 시리즈에 '선발'되었는지가 의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작품이 '구린' 이유로 예산 부족을 운운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것조차 해당 사항이 없다... 안목이 별로인 사람들이 모여 별로인 작품을 제작했다고 보아야 할까? 그러기에는 스튜디오의 규모와 포트폴리오가 너무 화려하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그 지독하다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비결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 및 드라마의 감독들이 한 작품을 놓고 경쟁한다고 상상해 보자. 이들은 무엇으로 경쟁할 것인가? 명목상 감독에게 필요한 역량이란 '연출력'이므로, 자신의 연출력을 놓고 경쟁해야 마땅하다.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들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감독의 이름과 필모그래피로 홍보하는 걸 보면 이건 분명 상업적인 성공에도 유의미한 지표다. 그런데 실제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단순히 연출력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사람의 작업 단가나 스타일, 성격, 영화판에서의 인맥이나 관계 등 바깥에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부분들 또한 고려 사항에 포함되어야 한다. 연출력은 인정받았으나 촬영 현장에서 사람을 패는 것으로 유명했던 모 영화감독은 차기작 진행에 앞서 '다시는 스태프들을 때리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각서를 작성해야 했다. 물론 사람을 때리는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감독직 제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감독의 연출력(또는 우리는 알기 어려운 다른 여러 상황들) 덕분이겠지만, 사람들이 경쟁의 과정에서 능력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함께 고민한다는 것 또한 사실인 셈이다. 사람을 때리지는 않는지, 이 사람을 쓰면 심기가 불편해질 높으신 분은 없는지, 페이가 감당할 만한 수준에 있는지 등등. 그러니까 무한 경쟁이라는 것이 단순히 재능과 역량을 가지고서 줄 세우기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도 경쟁에서 패배할 수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 승리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데에 힘을 쏟고, 실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이라든가 이해타산을 계산하는 것에 공을 들이는 식이다. 어떤 식으로든 각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고, 여기서 이긴 자는 감독이 되어 필모그래피에 한 줄을 더 추가할 수 있게 된다. 내 눈에 무척 별로였던 SF 드라마 시리즈도 분명 이런 종류의 복잡한 경쟁을 통해 넷플릭스까지 흘러들어온 것일 테다.


그러나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완성한 작품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안에서도 살아남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감독한 작품이 혹평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혹평은 곧 상업적 실패를 의미하고, 돈을 못 벌면 그 지독했던 경쟁 또한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선발이 된 이후에도 주어진 제작 환경 안에서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내야 하며, 최종적으로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것에도 성공해야 한다. 대충대충, 설렁설렁 맡은 바 역할만 해내고 페이만 따박따박 받으면 그걸로 됐다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인간이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갈망하는 못된 버릇이 있지 않은가? 유의미한 의미에서의 상업적인 성공을 떠나서도 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좋겠고,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는 마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작품 제작을 위해 치렀던 경쟁은 결국 작품의 흥행 경쟁을 위한 1차 시기였을 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론적으로 경쟁에서 패배하는 작품들이 참 많다. 투자사들은 다양한 조건을 검토해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대본을 골랐을 테고, 제작사에서는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을 골랐을 텐데, 결국 그 결과가 나 같은 한량에게 '허접하다'는 평가를 듣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이건 본 게임인 흥행 경쟁에서 진 것이다. 실제로 넷플릭스 내에서 그 시리즈의 존재감이란 참으로 미미하다. 과연 이 드라마를 제작한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경쟁했으며, 심사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도전자들의 승패를 갈랐던 것일까? 다른 건 몰라도 감독을 고를 때 연출력을 최우선 요소로 두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재능만 있으면 경쟁에서 이길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해야 하겠다. 우리가 '구리다'라고 평가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이 차고 넘치는 걸 보면 그렇다. 정말 좋은 작품인데 대중과 소통하는 것에 실패한 걸 두고 '구리다'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정말 별로인, 일면 잘못 만들어진 것 같은 작품들을 볼 때 나는 '저게 어떻게 투자를 받았을까?'라든가, '누가 이 대본을 OK 한 거지?'라는 의문을 품는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승리해서 배역을 따내고 감독직을 따냈을 텐데, 과연 저들보다 못한 감독과 배우들이 세상에 그렇게나 많다면 다른 하자 없는 멀쩡한 드라마들의 존재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단순히 안목이 별로인 사람들이 모여서 안목이 별로인 경쟁을 한 결과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것이, 과연 이렇게 큰돈을 투자하면서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수 있을까 싶다. 분명 대본을 여러 사람들이(그것도 매월 수십 편 이상의 대본을 검토해 온 사람들일 텐데) 돌려가며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구린 걸 제작해 보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많이 팔릴 것으로 기대하면서... 도대체 왜?

아마 사실은 이런 구린 드라마에 대한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고 들어간 결과물일 것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가 시즌 5까지 제작이 됐던 걸 보면 흥행에 완전히 실패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멋지고 화려한 드라마 말고, 조금 허접하고 짜치더라도 딴짓하면서 대충 봐도 내용이 다 이해되는(대사로 모든 걸 줄줄 설명하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가 어필할 수 있는 소비층이 분명 존재한다. 심오하고 복잡한 내러티브는 빼고,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차용해서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와 딱 적당한 만큼의 즐거움만 선사하는 그런 드라마를 제작하고자 했다면 이 작품은 단순히 '구린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아마 이 드라마는 치밀한 게 맞을 것이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느냐 마느냐, 수익을 얼마나 많이 남기느냐 하는 문제이므로, 이 드라마를 구리다고 평가하는 내 의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버려야 한다. 이 드라마가 경쟁에서 살아남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돈으로, 숫자로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정말로 잘 만든 작품보다 이런 '치밀하게 계산된' 작품을 더 맡고 싶어 하는 배우와 감독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승리할 수 있는 경쟁이란 진짜 실력으로 맞붙는 경기가 아닌, 실력 외의 다른 지점에서 결판이 나는 미묘한 경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재능만 있으면 경쟁에서 이긴다는 생각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 분명 무한 경쟁의 시대에는 재능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심사자들과 승리한 자들은 경쟁을 논할 때 자꾸만 역량과 재능을 가지고 설명을 하려 든다. 능력과 재능, 역량을 최우선으로 한다면서 실제로 겪는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니 말이 앞뒤가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보다 못한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걸 이해하기 어려워 정신적으로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모든 것이 거대한 착각이다. 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의 변명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허세도, 그리고 그걸 심사하는 사람들이 '무한 경쟁'을 위해 세운 제멋대로의 기준도 모두 자기중심적인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쓸모와 용도란 결국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고, 시장의 결정이란 그저 부품일 뿐인 나 같은 노동자가 간섭하거나 휘두를 수 없는 문제다. 대신 나는 진짜가 되기를 선택하는 법을 배우는 수밖에는 없다.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는 허망한 목표 아래에서, 체계도 기준도 모호한 룰에 나를 끼워 맞추려는 가련한 시도는 결실을 맺지 못할 공산이 크다. 진짜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각인시키는 일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쓸모와 용도를 증명하기를 요구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쓸모와 용도를 증명할 의무란 없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났고, 존재한다. 플라나리아부터 코끼리까지 모든 생명에게 쓸모와 용도를 따져 묻지 않듯이, 우리 또한 가치 없는 인간, 쓸모없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실용성을 증명해야 하는 무한 경쟁이란 기치 아래에서도 나는 그냥 존재할 수 있어야 하며, 대체 불가능한 진짜가 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경쟁의 과정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만이 이 세계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므로(어쩌면 이것마저도 내가 통제하기 어려울지도?). 부디 이 세계가 '나'라는 고유함을 쓸모 있는 것으로 인정해 주어야 할 텐데 걱정이 많다... 그래. 나도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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