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곧 생존이라는 믿음
최근 기묘한 뉴스를 보았다.
미국의 한 뉴스 앵커의 어머니가 실종된 사건을 다루는 뉴스였다. 이 앵커는 미국 내에서는 꽤나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고 대중적인 인지도나 평판 또한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최근 개최된 밀라노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은 물론 주요 경기의 중계도 맡을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실종사태로 인해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곧장 비탄에 빠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사건은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실종된 어머니에게는 치매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정신과적 질병은 없었으나, 심혈관계와 관련한 지병이 있어 약 없이는 단 하루 만에도 건강이 매우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머니의 집 앞에서 몸싸움의 흔적과 혈흔이 발견되었고, 사건은 그렇게 단순 실종이 아닌 납치 사건으로 번져갔다. 실제로 딸인 앵커는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거액의 비트코인을 송금하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 협박 때문에 앵커는 방송을 통해 '어머니의 안위를 실제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최근 Ai를 악용한 범죄가 많기에 단순히 사진이나 영상, 목소리만으로는 그것이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를 판명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런 와중에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경찰이 협박 메시지와 관련하여 한 남자를 입건하여 조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종자인 어머니의 둘째 딸 내외, 즉 저명한 이 앵커의 여동생과 남편이 이 남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내용을 확인한 것이다. 여동생의 남편과 입건된 남자 사이에서 '비트코인을 송금했느냐'라고 묻는 메시지와 더불어 짧은 통화 기록까지 남아있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재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여동생의 남편, 즉 실종된 어머니의 사위인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떠돌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사위 또한 피해자로서 이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받은 것일 뿐,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아니라고 한다.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누군가가 나이 지긋한 노인을 납치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인 그 딸을 협박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동기가 있어도) 이런 잔인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하더라도 막상 실제로 행동에 임하려고 하면 매 순간마다 스스로의 결정에 대한 의심과 자책, 의문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실제로 어디 텔레그램 같은 곳에서 대신 납치해 줄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검색창에다 대고 '납치 대행'과 같은 (평생 입에 담아보지도 않았을) 단어를 직접 입력해야 했을 텐데(그냥 한국식으로 상상해 본 것이지만 이 사건의 범인도 이런 방식의 과정을 거쳤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끔찍한 네 글자로 된 단어를 검색창에다 처넣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든가 자괴감이 몰려와 망설이고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이 정말 없었을까? 걱정과 슬픔에 빠진 가족들이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연일 보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이나 고통 따위는 없었을까? 비트코인, 그러니까 돈이 그 모든 감각을 무뎌지게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이런 상상을 하면서 내가 처한 상황과 돈이라는 개념의 성질에 대해 또 한 번 곱씹어본다. 우리의 삶이 넓게 뿌리박은 이곳, 이 시대, 이 장면에서 돈이란 곧 생존을 의미한다. 돈이 없으면 삶 자체가 지속 불가능하다. 적어도 우리 현대인은 모두 그렇게 느낄 것이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관념적으로는 다들 돈이 많을수록 삶이 더 나아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 기를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타인을 조금 괴롭히게 되거나 슬프게 만들기도 하는 모양새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기에,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이런저런 사소한 정도의 고통과 상처는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라며 곧잘 이겨내기도 한다. 그 정도로 돈이 중요하다. 원치 않는 시간을 참아내고 혐오스러운 얼굴들을 견뎌낼 정도로, 우리는 돈을 꼭 갖고 싶어 한다.
현대인에게 돈이 곧 생존을 의미한다면, 과연 지금의 세계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랑, 희망, 행복, 정의와 같은 것들이 종종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거론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진짜 자기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 희망, 행복 같은 것들은 허울뿐인 말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들은 돈이 곧 행복이고, 사랑 또한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으며, 돈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고 여긴다. 어린 시절의 우리들은 모두 사랑, 희망, 행복, 정의야말로 진정 중요한 가치이며, 삶 속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이런 개념들을 그저 순진하고 바보 같은 것들로 치부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야 '철이 든 것'이고 '성숙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황당하다. 특정한 삶의 단계에 도달하고부터 이런 개념들을 결국 폐기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는 대체 왜 이런 (거짓) 말들로 삶을 시작하는 걸까? 애초에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돈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웠더라면 철이 들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충돌하는 관념들로 인한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언젠가 필연적으로 버려야만 하는 허울뿐인 관념들을 토대로 성장을 시작한다니, 어쩐지 지름길을 놔두고 비효율적으로 빙빙 돌아가는 기분이다. 나는 분명 세상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배웠지만, 혹시 그 배움을 이 나이 먹도록 버리지 못하고 잘 간직해 온 죄로 지금 이렇게 가난해진 건 아닐까? 진작에 버렸어야 할 순진하고 바보 같은 말들에 대한 믿음을 남들보다 빨리 철회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저 사건의 범인 만큼은 아니어도, 얼마간은 돈 때문에 남을 괴롭히거나 슬프게 만드는 게 사랑, 정의, 희망, 행복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꽤나 명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건을 두고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이며, 더럽다고 말할 것이다. 돈 때문에 죄 없는 할머니를 납치하고 일가족을 괴롭히다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느끼지 않을까? 범죄의 동기가 '비트코인'이었기 때문에 아마 사람들은 이 사건이 특히 더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다. 돈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감정의 폭이 참으로 넓다.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그 모든 치열한 노력은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웠던 '정의'의 범주 안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돈 때문에 '행복'을 저버린 인간이란 어딘가 헛똑똑이처럼 느껴진다. 모두 이미 느끼고 있다시피 '사랑'은 아마 돈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돈을 보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돈을 사랑했을지는 몰라도 나를 사랑한 것은 아닐 테니까. '희망'은 사실 돈 같은 게 없을 때에야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에 배웠던 이런 허울뿐인 관념들이 결국 내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바는,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이었던 모양이다. '돈이 곧 생존'이라는 내가 세운 명제도 어쩌면 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 이렇게 방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되지 않는 채로 생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낸 바가 없다. 그럼에도 저 사건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면, 미국의 저명한 뉴스 앵커로서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은, 즉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을 것임이 틀림없는 이에게도 이런 끔찍한 비극은 차별 없이 닥친다는 점이다. 정말로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돈 때문에 이 고통스러운 사건이 시작되고 말았다.
돈은 이런 짓을 벌일만한 가치가 없다. 무력한 노인을 납치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영원한 비난과 저주를 받는 대가로 비트코인 몇 개를 얻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 이 범죄자의 결정은 극단적으로 잘못됐다. '사랑, 희망, 행복, 정의 같은 개념은 돈을 통해서 완성될 수 없다'라는 어린 시절의 배움을 잊은 자가 실로 멍청한 거래를 하려고 한 셈이다. 인간은 무리 지어 생존하는 동물이다. 그러니 온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는 것에 더해 자신의 주변인들마저 배반하고 실망시키는 행위를 저질렀다면, 그때는 오히려 돈이 없을 때보다도 더 생존이 위협받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도 들키지 않으면 될 거로 생각했겠지만, 무사히 범죄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평생 일가족이 껴안고 살아야 할 범죄 피해의 상처에 대한 부분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찰에 검거되지 않고 비트코인까지 수중에 넣었다고 해도, 나의 멍청한 거래로 인해 나와 한 일가족의 '행복'이 해쳐졌음을, 본인이 처벌받지 않음으로써 '정의' 또한 훼손되었음을 스스로가 죽는 날까지 느껴야 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이 사람이 소시오패스라든가 사이코패스 등 어딘가 고장난 인간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므로, 돈은 이런 짓을 벌일만한 가치가 없다. 돈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런 사건을 목격한 나는 과감히 돈을 평가절하하겠다. 돈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이하로?) 참 별볼일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