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설날이다. 나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사업이 한창이던 때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사업이 무너지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교통비가 무서워서였다.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만들어드릴 상황이 못된다는 수치심이나 창피함 같은 것 보다도, 나는 진심으로 KTX 왕복 티켓료가 훨씬 더 두렵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이나 먹거리 따위를 구입하는 비용도 무섭다. 엄마는 보고 싶은데, 엄마를 보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를 넉넉히 마련하지 못한 나는 아무래도 엄마를 볼 자격이 없나 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인간의 힘으로 끊을 수 없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천륜)이라는데, 이 돈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힘을 넘어선 무언가라도 되는 듯이 나와 엄마의 관계를 끊어내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돈 벌기를 반쯤 포기해 버린 나(개인)의 잘못일 뿐이건만, 이걸 또 돈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하려 드는 나는 역시 글러먹은 인간인가 보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개인들)이 적지 않을 것임을 떠올리면 또 이 모든 상황을 그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 버리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만 느껴지지도 않는다.
사실 올해 설날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기차표가 무섭고 빈손으로 내려가기가 뭐 한 것도 물론 없는 말은 아니지만, 실제로 올해는 시작부터 조금 바빴다. 나는 요즘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당장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머릿속에선 '이런 거 할 시간에 차라리 돈을 벌 일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금 내 형편에 정말 이걸 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반복되지만 내 삶이 여기까지 온 이상 무언가 예전과는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렬한 자기 인식에 번번이 항복하고 만다.
나는 최근 들어서 많은 시도를 했다. 몸으로 때우는 단기 아르바이트, 일을 처음 시작하던 프리랜서 시절에나 해봤을 법한 수준의 일들, 난생처음 해보는 분야의 업무까지 얼마간의 생활비라도 벌어보고자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 셈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가 거의 평생을 비슷한 일만 하며 살아왔음을 깨닫기도 했다. 정말이지 세상은 넓고, 일자리(직업)는 다양하다. 이런 일 저런 일 모두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이 없다. 모두가 하루를 낭비 없이 꽉꽉 채우며 몸이 녹초가 되고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을 하고 있다. 내가 명절에 엄마를 보러 가기를 포기하고 내 사무실에 앉아 일했듯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명절을 포기한 채로 배달을 하고 택시를 운행하며 가게를 운영했던 것이다. 기차표가 무서워서 고향에 내려가기가 꺼려진다고 말하는 오늘의 나와, 일이 너무 바빠서 고향에 내려가기가 어렵겠다고 말하는 예전의 나는 사실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에는 둘 다 돈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나는 최근 들어 오랫동안 놓지도, 붙들지도 못하고 있던 나의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사업이 한창 잘 되던 때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반쯤 방치해 두었던 일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작은 기회라도 생기면 시간을 잘게라도 쪼개어 어떻게든 그것과 관련된 작업을 해내고는 했다. 돈이 안 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그게 하고 싶었고 또 실제로 지금까지 그렇게 실행에 옮겨온 것들은 성과가 되어 내 곁에 남아 있다. 사업과 관련한 일들은 내게 돈을 벌어다 주는 대신 고통과 스트레스를 안겼다. 그러나 나의 꿈에 대한 일들은 자부심과 행복감을 주는 대신 내 통장의 돈을 쭉쭉 빨아먹는다... 비극이다. 다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고들 한다. 정말 그런가 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믿음은 환상이다. 삶에 이미 정해진 원칙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이 우주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면 반드시 그 모든 노력이 충분히 보상받으리라는 것은 믿음이고 신념일 뿐 원칙은 아닌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서서히 이런 말들의 의미를 깨우치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수 있구나.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결과도 최상일거란 보장은 없는 거구나. 이런 것들은 곧장 절망이나 무력함으로 연결되고 만다. 노력한다는 말에는 어쩐지 무언가 원치 않는 것을 참고 견딘다는 인상이 포함되어 있는가 보다. 내가 어렵고 싫은 무언가를 참고 견뎠는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으면 억울할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한 만큼 보상을 받을 거라는 믿음이 없으면 안 그래도 힘든 '노력'이 지금보다도 한층 더 힘든 일이 되고 만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성실히 회사를 다니거나 꾸준히 저축해서 돈을 모으는 것 대신 주식이나 비트코인 같은 '한방'과 '역전'을 더 기대하게 된 것일 테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런 믿음 없이도 노력을 잘한다. 사업을 할 때도 그랬지만 특히 나의 꿈과 관련된 일들을 처리할 때에는, 이 일의 끝에 '돈'이라는 보상이 없을 것임을 잘 알면서도 잘하려고 죽어라 노력하고 쪽잠을 자며 애를 쓴다. 나는 예정된 보상도, 이유도 없이 시간을 쓰고 공을 들이고 노력하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한 나무와 돌멩이처럼 잘 버티고 견딜 수 있다. 사업을 할 때의 방식은 흔들리고 지치면서도 버티는 노력이라면, 이건 써도 써도 닳지 않는 배터리와 같은 노력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구나, 내 시간을 의미 있게 쓴다는 건 이런 뜻이구나,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해하게 됐다. 내 꿈은 내가 돈이 없어도 조급해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다. 하루살이처럼 일당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도, 거울 속 내 모습은 절망에 빠진 표정이 아니다. 상황을 낙관하거나 외면하고 회피하는 멍한 표정도 아니다. 일에 치여 예민해지고 지쳐버린 안쓰러운 얼굴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무와 돌멩이처럼 입술을 꽉 다물고, 눈으로는 별을 올려다보며, 머리카락으로 힘듦과 고통을 덮어두었을 뿐이다.
운명은 하늘이나 신의 뜻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나의 기질과 삶의 경험, 그리고 의지에 따라 나의 운명이 길을 놓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사업을 할 때처럼 열심히 해서 높은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우지 않는다. 나는 그냥 한다.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 한다.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아도, 돈이든 더 나은 삶이든 행복이든 명성이든 바라는 것 없이도 나는 노력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꾸려나간다는 이 감각을 위해서. 그러므로 돈은 앞으로도 계속 없을 예정이다. 슬퍼하지 않겠다. 삶은 당분간 불안정할 예정이다. 당당히 인정하겠다.
나 말고 다른 누구에게 이런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권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건 어쨌거나 불행이고 슬픔이며 고통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나의 일, 나의 꿈을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마음의 가치는 부동산과 주식, 비트코인이 우위를 점한 이 세계에서도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세상에 다양한 직업과 일거리가 있듯이, 삶의 방식 또한 하나의 집단과 개인이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고 무궁무진한 것이다. 내가 돈 대신 나의 꿈을 좇기로 선택한 것은 평범한 수준인데도, 주변에선 어쩐지 나를 프레임을 벗어난 인간인 것처럼 취급하는 모양새다. (요즘 부쩍 많이 느낀다) 설날인데도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은 불효자식 주제에 당당히 삶의 방식과 태도를 논하는 꼴이 우스꽝스럽다... 글은 여기까지만 쓰고 부모님께 전화라도 드리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