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앉았어도 일은 할 수 있다
빚이라는 것은 딱히 줄어들지는 않고 그저 늘어나기만 한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받았던 대출금을 수년간 야금야금 갚아왔지만, 상황이 어려워져 추가로 대출을 받았더니 그간 꾸준히 갚아온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것까지 더해 또 차근차근 잘 갚아나가는가 싶었는데 상황이 악화되어 또 다른 대출을 받는 바람에 내 빚의 총량은 순식간에 두 배로 늘어버렸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그간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온 나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건실한 사업체를 잘 운영하고 있었고, 인간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일 하느라 많이 바쁘고 지치긴 했어도, 그 모든 것이 그 나이대 청년이 겪을 만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준의 고생을 하고 있는 거라 믿었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고생이라면 오히려 '잘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어찌나 거짓말에 능했던지, 주변의 다른 어느 누구도 나의 경제적 곤궁함이나 정신적 어려움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사업 때문에 바빠 보였고, 늘 무언가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일이 아주 끊어진 건 아니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사업과 관련한 연락을 종종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꼭 수천만 원짜리의 프로젝트를 맡겨주는 고객들이 있었다. 모든 것은 순전히 내가 그전까지 열심히 일해 쌓아 놓은 포트폴리오 덕분이었다. 연매출이 크게 감소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막상 부가세 신고를 하면서 확인해 보면 이런 큰 건들 덕분에 아예 말아먹은 수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 세계를 불황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절이라 모두가 나의 반토막난 매출을 자연스러운 일로 납득해 주기도 했다(심지어 국세청마저도). 이런저런 외부 상황들 때문에 스스로도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업에 대한 열정이 식을 대로 식어버린 그 무렵, 조금 특별한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왔다. 그간 해오던 일과는 결이 조금 달랐지만 내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열심히 일하던 때에는 '이런 일을 꼭 한번 맡아서 해보고 싶다'라고 말하며 부지런히 그 꽁무니를 쫓아다녔음에도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던 그런 프로젝트였다. 클라이언트는 작업에 앞서 견적서를 요구했다. 사업을 손에서 놓다시피 했던 당시의 나는 일을 꼭 따내야겠다는 간절함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상태였기에, 여태껏 일을 따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어렵게만 적어오던 견적서를, 그동안의 한풀이라도 하듯 속이 시원해질 만큼 정당한 금액으로만 쓱쓱 채워 넣고는 망설임 없이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나는 내심 기대를 걸었다.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클라이언트라면 분명 나의 견적서를 납득하리라 믿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누가 이런 (모자란 인간인) 나를 믿고 그렇게 큰 금액을 투자할까'하는 의심 또한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오래전 일할 때 느끼던 자기 의심과 자기 비하가 가슴 한 귀퉁이에서 슬쩍 머리를 쳐들고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작성한 모든 항목과 모든 단가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비용임을 확신하면서도, 나와 같은 업종의 어느 누구도 실제로 이런 금액을 정산받으며 일하지는 못하고 있을 거라는 슬픈 직감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인간이란 언제나 대체 가능한 자원으로 취급된다(몇몇 아주 특별한 인물들을 제외하긴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업체끼리는 서로 견적서를 통해 경쟁하기를 멈출 수 없다. 내가 이 가격에 못한다고 말해봤자 그 가격으로 진행해 줄 의향이 있는 다른 업체가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나와 내 직원들과 내 사업체를 지키기 위해서 일을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프로젝트에 착수하기에 앞서 터무니없는 조건들이 있다면 그걸 잘 알아차리고 진행 가부를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다. 때로는 조건이 조금 부당하고 치사해 보여도, 그게 어떻게든 또 다른 좋은 기회로 연결될 것처럼 보이는 미끼 같은 일들도 있다. 나는 사업체의 대표로서 그런 종류의 일들을 구분하고 판단하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두려웠다.
어째서 세상만사 깔끔하게 떨어지는 법이 없는 것일까? 사람들은 각자 더 잘 살기 위해서 스스로를 쥐어짜거나 상대를 쥐어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모두가 더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견적서를 쓰고, 더 끼워 넣을 틈이 없을 만큼 일을 하며, 아침에 눈뜨기 고통스러울 만큼 혼곤한 잠에 빠져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상하게도 이 세상에는 두 사람이서 하면 딱 좋을 것 같지만, 한 사람만으로도 '가능은 한' 일들이 있다. 둘이서 하면 작업자들이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되므로 실수와 사고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는 대신 회사가 지불해야 할 임금이 2인분이 된다. 만약 같은 일을 혼자 하도록 시키면 작업자는 무척 고된 매일매일을 견뎌야 할 것이며, 업무량이 많아 너무 바쁘다 보니 피치 못할 실수도 종종 범할 것이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임금을 1인분만 지급하면 된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어쨌거나 회사에는 분명 선택권이 있다. 1명을 고용할 것인가, 2명을 고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명백히 선택의 문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마치 자신들에겐 선택권이 없다는 듯이 한 명만 고용하려 들 거란 점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일을 한 사람을 지지고 볶아서 어떻게든 진행시키는 방식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혼자서 2인분을 해온 1인은 필시 언젠가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나가떨어지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낸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정년도 없이 영원히 그 일을 맡아서 해줄 리가 없으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후임을 구해야 할 텐데, 이 사람처럼 혼자서 2인분을 해내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다른 데서 또 찾기란 정말로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무렵쯤이면 아마도 회사들은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이건 원래 혼자서 하는 일이에요, 여태껏 그렇게 해왔으니 너도 할 수 있어요'라는 식으로. 그러면 후임자는 '이걸 혼자서 해내지 못하는 나는 무능한 인간이야'라는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시작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걸 해내지 못하면 안 돼, 더 열심히 해야 해'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스스로를 쥐어짜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껴 스스로 막다른 골목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기 마련이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미 이런 굴레 속에서 두려움과 절망을 견디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러므로 나도, 별 수 없이, 두려움과 절망의 행군에 발을 맞춰 걷기 시작한다. 우리의 세계는 이렇게 겁에 질린 개인의 끝없는 행군을 바퀴처럼 바닥에 깔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회사들이라고 뭐가 다를까? 경쟁사가 내건 단가를 보면 우리 회사도 둘이서 할 일을 나 혼자 하도록 해서 가격을 낮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스스로를 쥐어짜는 행위로 시작한 것이 서로를 쥐어짜는 행위로 마무리된다. 내가 운영하는 것과 같은 조그만 사업체도 이러한데 중견기업, 대기업들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 도시인인 우리가 생존과 돈 앞에서 두려움과 절망을 떨쳐낼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기적 같은 일이다. 내가 망설임 없이 적어 보냈던 견적서가 그대로 통과되어 결국 계약서에 서명까지 마쳤던 그날, 나는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이런 일(프로젝트)이 또 있을까? 만약 신이 있다면, 지금 내 처지를 가엾게 여겨서 내게 다시 힘을 낼 기회를 주려는 게 아닐까? (정말이지 가련하고 무지하고 나약한 인간에게 딱 어울리는 정도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아마 나는 그냥 '기뻤다'는 말을 이렇게나 빙빙 돌려서 해야 할 만큼 어리숙한가 보다.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종류의 일을, 내가 원하는 만큼의 보수를 받으면서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두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세상엔 이런 일거리도 분명 존재한다는 걸 늘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서로에게 이런 종류의 일을 더 많이 제안하고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보수까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닐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모든 '원치 않는' 상황들을 감수하는 걸까? 돈,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돈'이 나오면, 그 모든 부당함이 일순간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현대 사회에서 돈이란 곧 생존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놈의 '어쩔 수 없는' 상황들 때문에 수도 없이 무언가에 굴복하고 어떤 것들을 견뎌야 했다. 나는 아직도 이런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 돈을 두려워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걸까? 당시에도 이렇게나 멋진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도 마냥 즐거워하거나 기뻐하질 못했다. 돈을 벌고자 시작한 일에서 즐거움과 기쁨의 감각을 누리는 것이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게 참으로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