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서 인간으로 남기

by joni


깊은 숲 속에 자리한 멋진 폭포를 떠올려보라. 멀리서 보면 너무나 멋지지만 그걸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물고기에게는 고통과 인내의 상징일 뿐이다. 인생은 멋진 폭포이고 우리 모두는 이걸 거슬러 오르려는 물고기다. 우리는 사정없이 쏟아지는 폭포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잔잔하고 맑은 물가를 상상하며 물줄기를 버티고 헤치고 기어오르기 위해 애쓰지만, 강하게 내리누르는 수압 때문에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날들이 계속된다. 평생 그렇게 가혹한 폭포 속에서 제자리걸음만 하다 죽는 물고기들도 많고, 아예 오르기를 포기한 채로 가장 아래에서 쏟아지는 물을 그대로 맞으며 살다 가는 이도 있고, 물줄기 너머에 숨은 빈 공간,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순간을 절묘하게 차지하여 힘겨운 싸움 따위 회피한 채로 유유히 살다 가는 이도 있겠다. '나'라는 물고기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전력투구와 회피 사이 어딘가에 내가 있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기를 포기해 버린 채로 가차 없는 물줄기를 타고 한참 아래로 되쏟아지던 내가 불현듯 돌부리 하나를 꽈악 움켜쥐곤 앞으로 절대로 놓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당장이라도 쓸려내려 갈 것만 같은 위태로움이지만 부디 아직 내게 다시 시도해 볼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하기만을 바라며.


사업을 잠깐 멈춰둔 동안 나는 제법 많은 일들을 했다. 주로 세상이 보기에는 터무니없고 쓸모없다고 여길 법한 일들이었다. 일례로 한동안은 죽어라 게임을 했다.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나 삶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탈출하고자 게임을 취미로 선택한다. 여러 게임의 세계관은 현실의 그것과 아주 닮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전혀 다르기에, 실제 삶에서 기대할 법한 물리적 직관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선택과 결과를 서슴없이 마주하기도 한다. 내가 주로 했던 게임은 좀비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생존 게임이었는데,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직후의 상황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설정에 따르면 나는 그 세계의 유일한 생존자(인간)이었다.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만큼 게임 속에는 달러 모양의 지폐 아이템이 존재했으나, 그곳은 더 이상 (주인공인 나를 제외하면)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기에, 돈이란 그저 종이로 된 (효율도 나쁜) 땔감에 불과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세계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꾸역꾸역 그 지폐 아이템을 주워 모으는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이 되기를 선택했다.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돈 모양의 그림만 보면 일단 가방에 쑤셔 넣고 마는 이 소인배는 절망에 빠진 세계를 구원해 내거나 완전히 새로 건설할 만큼의 위대한 영웅은 못될 것이다.


이 게임은 문명과 사회가 붕괴된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이용자의 선택과 결정의 근거를 철저히 '생존'의 관점으로 되돌려놓았다. 게임 속에 존재하는 상점과 은행, 자동차, 돈 따위는 현실의 그것과 기능적으로는 거의 동일하지만 사회적인 맥락은 완전히 사라져 있다. 게임 속에서는 이 자동차가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인지 싫어하는 디자인인지, 남들이 보기에 괜찮아 보일지 어떨지 하는 식의 고민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식량을 더 많이 모으려면 이게 똥차든 벤츠든 물건을 싣고 이동할 수 있는 '자동차'로써의 기능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돈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능이 사라졌다. 그런데 돈에서 사회적인 기능을 제거하고 나면 대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돈은 문자 그대로 돈일뿐이다. 돈에는 가방이나 자동차와 같은 실용적인 기능이 없다. 애초에 돈이란 그저 재화의 거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계약서에 불과했다... 나와 거래할 다른 인간이 모두 사라진 세계에서 돈은 정말로 빳빳한 메모지만큼의 가치도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쩌면 이 게임 속에서 돈을 불쏘시개로 쓰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는 행위를 통해서 금기를 깨는 짜릿함과 해방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바보다. 내가 세상의 유일한 생존자인데,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미래의 생존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예쁜 종이뭉치를 주워 모으느라 소중한 식량을 담아야 할 가방과 트렁크의 공간을 낭비한다. 어쩌면 나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기를 써도 얻기 힘들었던 돈이 지천에 널려 있는 이 대체된 세계가 지나치게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게 아니라면, 멸망한 세계든 아니든, 쓸모가 완전히 사라졌든 아니든, 그저 돈을 주워 모으는 행위 자체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잃어버린 세계'가 아니라 '지독한 현실'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나는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어떻게든 돈을 그러쥐고 다니느라 현실 도피를 위해 선택한 아포칼립스에서의 자유마저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던 셈이다.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기는 쉽다. 사실 게임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돈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꽁꽁 숨겨져 있거나 소중한 보물 대접을 받으며 단단히 보호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끊임없이 돈을 꺼내 보여주고 서로에게 내밀며 살아가고 있다. 당장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도 돈을 벌 수 있고, 물류센터에 일용직으로 나가도 돈을 벌 수 있다. 과연 돈 버는 것이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일인가? 나 같은 인간은 도무지 해낼 수 없는 일인가? 아니다.

지금 내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게 된 진짜 이유는, 돈 벌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해서이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닥치기 전까지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생존은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통해 일정 부분 보장되는 면이 있다. 당장 좀비가 되어버린 이웃과 맞서 싸우기 위해 야구배트를 들고 잔인한 살육전을 벌여야 하는 순간 또한 우리 일생에 99.9%의 확률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 지쳐버린 것이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중인 셈이다. 그저 돈을 벌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뭐든 하면 된다. 전단지도 돌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기를 바란다. 그게 본인이 원하는 삶의 방식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벌여보기도 했고, 아르바이트는 물론 몸이 작살날 때까지 일용직 근로도 해봤다. 지금 나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더 잘 살고 싶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나의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후회 없이 쓸 수 있으므로. 그러니 이것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내게는 별 의미가 없는 방식의 노동을 하며 그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기는 싫다는, 내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자 하는 개인의 자아실현에 대한 문제다. 나의 꿈과 열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 한 번뿐인 인생을 몽땅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을 바로 그 일을 찾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 죄가 될 순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은 곧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세상의 어떤 인간도 노예로 살아가기를 원하지는 않으며,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이란 결국 짐승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돈에게 스스로의 자유를 갖다 바쳐야만 하는 사람은 어쩌면 '인간적인 의미에서의 생존'에 대한 위기를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필사적으로 '(더 이상 이렇게는) 돈 벌기가 싫다'라고 외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느라 돈을 잘 못 벌도록 태어난 스스로를 원망하거나 부정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나도 인간답게, 내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자유를 부여받았음을 믿는다. 그런 만큼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이 곧 나의 돈벌이가 되도록 만드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쉽게 만족하거나 타협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런 나의 다짐 때문에 내 삶이 지독하게 궁핍하고 고통스러워진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지켜낼 가치가 있...어야 할 텐데. 아니 그런데,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죽을 때까지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일하는 데에 쓰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라면, '나'라는 개인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상한 모양으로 태어난 걸까? 생존의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진화를 거듭해 온 위대한 자연(또는 신)은 왜 모든 인간을 네모 반듯하게 빚어 사회의 빈자리마다 차곡차곡 채워 넣기를 선택하지 않고, 나처럼 삐죽삐죽한 별모양의 인간들마저 세상에 태어나게 허락한 것일까? 내게 부여된 이 개성이 대체 사회에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돈을 잘 못 버는 나는 돌연변이, 잘못 태어난 인간, 자연의 실수일 뿐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날이면 나는 절망과 우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해부도를 보면 사지를 쫙 펼친 인간은 정말로 별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스타(Star)'로 태어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는 모두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깎여나가기를 요구받는 것 같다. 그래야 세상이 더 효율적으로 굴러가고, 사회 구조가 더 튼튼해진다고 믿고 있다. 이 나이쯤이면 대학에 가고, 이쯤이면 취업을 하고, 지금쯤에는 결혼도 하고. 그러나 마냥 이렇게만 살아가기에는 우리 모두가 너무 특별한 별 모양을 하고 있지 않나? 우리는 슬프게도 취업 때문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일 용기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돈 때문에 한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조금씩 포기하려고 한다. 이것이 당연한 일인가? 반드시 그래야만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내가 잘라내야 할(것 같은) 나의 뾰족한 부분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을 높이 치켜든 채로 내리칠까 말까, 자를까 말까, 눈을 질끈 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이걸 자르면, 다시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러나 째깍째깍, 내가 나의 모난 부분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사이에도 내 통장은 바싹 말라간다. 돈은 자꾸만 나를 조급하게 한다. 여기저기가 삐죽삐죽 모난 인간으로서 나의 생존이 불투명하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닥친 것도 아닌데, 나는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생사를 오가는 기분이다. 예술을 전공하지 말걸. 나도 자격증 따고 토익을 봤더라면. 애초에 사업 말고 취업을 했더라면. (그랬으면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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