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걸까
나는 습관처럼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사업상 당장 해야 할 일이 없는데도, 그리고 새로운 계약을 따내고자 노력할 의지가 없음에도 나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게 내가 지난 수년 동안 매일같이 해온 일이었으므로. 더 이상 일감이 없어 그 행동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했음에도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그러기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듯했다. 사무실에 가서도 늘 하던 것처럼 커피를 한잔 내리고 정리가 필요한 곳은 없는지 휘휘 돌아본 다음에 컴퓨터를 켜서 자리에 앉았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오랜 격언이 자꾸만 마음에 얹혔지만 평범한 사회인의 루틴처럼 꼬박꼬박 점심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시기의 나는 아직 절망이나 공포 같은 감각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머리와 마음 모두 텅 비어버린 듯한 감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내가 멋대로 조퇴해 버린 현실이라는 이름의 회사는 여전히 쉼 없이 잘만 굴러가고 있었다. 사무실 월세와 공과금, 대출금, 직원들의 월급, 사대보험료, 회사용 클라우드 서버비와 나의 생활비는 월말이면 한치의 흔들림과 오차도 없이 착실하게 걸어와 내 계좌를 핥아먹고 돌아갔다. 남들이 열심히 달리는 동안 잠시 멈춰있기를 선택한 나와 내 계좌는 매달 고정 지출에게 금방 따라 잡혔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회사의 적자가 몇 달째 계속되고 있었지만 내야 할 돈은 내야 했으므로, 나는 내 통장이 부실해져 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적자가 아니었던 시절에도 계좌에서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대출상환금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웠는데, 매번 마이너스가 나는 상황에 처하고 보니 그 정도가 한층 심해져 이제는 은행들이 그저 날강도처럼(?) 보였고 한없이 밉기만 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빌릴 땐 나를 믿고 큰돈을 내주는 은행이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나 이때나 지금이나, 나는 참 순진한 인간이다.
이제 당장 다음 달이 걱정되기 시작하던 무렵까지도 나는 여전히 돈을 벌기가 싫었다. 이쯤 하면 겁이 나서라도 일을 할 법도 한데 나는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외면하지도 않았다. 이 시절의 나는 어쩌면 혼자만의 사회 실험 같은 걸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현대 사회에서 돈이 바닥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돈이라는 맹수에 쫓기다 결국 코너에 몰려버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또 한편으로는 '당장 다음 달부터 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몰려버린 지금의 상황 자체가 내게 다시 일할 동기가 되어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도 같다. 나는 사지 멀쩡하고 이미 일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진 환경에 놓여있었으므로, 비록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지는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일을 다시 시작할 법도 했다. 그러나... 아니. 아니었다. 내가 나의 의지를 너무 우습게 봤던 모양이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피하기 위한 백만 가지의 이유와 방법을 떠올렸다. 그때의 내게는 다시 사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려는 의지보다 이런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대처 방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 먼저 떠올랐다.
지역신용보증재단에서 첫 대출을 받던 당시, 나를 담당했던 심사역이 내게 추가 대출이 가능한 조건과 이유들을 설명해 주었던 바 있다. 내가 청년이면서, 청년을 고용한 사업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대출을 그토록 미워했으면서 또, 꾸역꾸역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럴 시간에 일을 했어야 했는데, 일을 하면 됐는데, 나의 사고 회로는 이미 현대인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사업을 하다 깊은 내상을 입은 게 틀림없다. 머리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꺾인 의지가 도무지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질 못한다. 사지는 멀쩡했지만 내면의 어딘가가 완전히 박살 나버렸다. 지금 내가 하려는 짓거리가 사회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언급되던 바로 그 '대출 돌려 막기'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분명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작은 회사로서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돈을 벌었기에 외면적으로는 두말할 나위 없이 건실했다. 내 사업은 지금이라도 마음만 고쳐 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예전처럼 잘 굴러갈 거였다. 그러나 내면이 무너져 내리고 나서부터는 건실한 외면도,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은 열심히 나의 사업을 돌보고 키워나가는 것이 보람차거나 뿌듯할 거라는 기대가 생기지 않았다. 이제 사업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마치 '주인 없는 노예'처럼 보였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가졌던 나의 꿈이나 열정이 아닌, 돈과 빚만이 내 사업의 동력인 거라면 나는 그건 절대 거부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 인간이 이룩한 세계의 모든 것들에는 '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과 의지'라는 생명력이 깃들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생명력 없이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내게 아무리 멋진 재능이 있어도, 내가 아무리 부자여도, 마음과 의지가 없다면 결국 모두 무용한 것이 되고 만다.
일을 했어야 했는데. 일을 하면 됐는데. 그러나 끝내 나는 그걸 해내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그날을 반추해 보면 자책과 후회보다는 의문이 더 크다. 나는 왜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것일까? (진작 폐업을 하든 일을 다시 시작하든) 도망칠 기회가 충분히 있었으면서, 왜 추가 대출까지 받으면서 더 깊은 돈의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기를 선택했던 것일까? 한동안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그저 '겁대가리를 상실했던 모양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겁대가리 상실'은 사업을 하다 고장이 나버린 내 마음의 현 상태를 설명하는 말일뿐, 이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답변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왜, 왜 나는 이토록이나 돈 벌기가 싫었을까? 한번 무너져버린 내면은 이제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것일까? 큰 상처는 아물어도 몸에 영구적인 흉터를 남긴다. 이 맹수 같은 돈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번뜩이며, 어둠 속에 주저앉아있기를 선택한 내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걸어오고 있다. 이러다 돈에게 물리면 내게도 영구적인 흉터가 남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맹수가 다가오는 것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베짱이처럼 바이올린을 들고 '대출 돌려 막기'라는 비극적이고도 운명적인 (그리고 매우 유명한) 서막을 연주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