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나라다. 아일랜드도 유럽 나라들 중에서 나름 끝에 있는 나라였는데 공교롭게 포르투갈도 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일랜드는 섬나라여서 다른 나라와 이어지지 않고,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 나라들과 육로로 이어진다는 것.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 적 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래서 서울에서부터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거쳐 포르투갈까지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기차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비행기와 달리 기차로 여행하면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지나는 것이 보일 테고, 그렇게 나라가 바뀔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어도 어떤 나라에서는 눈 덮인 설산이, 어떤 나라에서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눈에 먼저 들어올지 모른다. 각 역에 정차할 때는 잠시 내려 기지개를 쭉 켜면서 역마다 달라지는 공기의 맛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일 테다. 한 열차에 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여행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목적지로 향해 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이곳에서 쓰이고 있을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에 꼭 한 번은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인 호카곶은 관광객들이 신트라와 함께 묶어 여행하는 유명한 관광지다. 우리가 현재 머무는 곳에서 차로 25분 정도 걸린다. 그날 날씨가 무척 화창했는데 호카곶에 진입하기 전인데도 차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바다가 너무 예뻐서 남편과 나는 감탄을 연발했다. 해 아래 빛나고 있는 바다는 마치 수 억 개의 다이아몬드를 수놓은 실크 천처럼 눈이 부시도록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호카곶을 포함해 인근 세 곳의 해변을 다녀왔는데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바로 파고가 높고 거세다는 것이다. 서핑을 해본 적이 없는 나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서핑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천국이겠구나.'
파고가 높고 거센 데다 곶의 뾰족함이 멋지게 어우러져서 끝없이 펼쳐지는 대서양이 더욱 웅장하고 기품 있어 보였다. 이렇게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무언가가 벅차오르고 자연의 기운에 압도당할 지경인데 대항해 시대,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바다 너머를 향해 출항했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뭇 궁금해졌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는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그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구심, 그리고 그것과 가까워지려는 의지는 인류가 이 세상에 존재한 이래로 줄거나 멈춰진 적이 없다. 그렇게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버스와 나를 감히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통의 일상을 살다가도 아직도 가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이 몸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간지러움처럼 문득문득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그리고 다시금 알게 한다. 아마도 그 호기심을 좇아 어디론가 향하는 여정은 내 인생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서유럽의 땅끝에서 저 바다를 한참 바라보며 외친 것은 '사랑'도 아니고, '세계 평화'도 아니었다.
그저 '우와'였다. 본능에 충실할 뿐 다른 것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자연은 이토록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내가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