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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존재 Nov 16. 2022

5. 나는 아직도 좌식 문화가 그립다

이사한 집의 마루 바닥을 바라보며

아일랜드를 떠나온 지 정확히 한 달이 되던 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침부터 짐을 옮기고, 가구를 조립하고,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며 정신없이 첫날을 보냈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주변 이웃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 탐스럽게 열린 앞집 유자나무가 제일 먼저 보인다. 노랑과 초록의 조합이 보기만 해도 너무나 싱그러워서 지금이 11월 중순, 연말을 향해 가는 겨울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동시에 저 유자로 유자청을 만들어 겨울 내내 유자차를 끓여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우리가 이사하는 집은 밖에서 보면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지만 리모델링 후 우리가 첫 입주다. 부엌에 기본으로 포함되는 옵션 외에도 접시, 컵, 숟가락과 포크, 프라이팬, 냄비, 전자레인지, 토스터, 믹서기 등 입주자가 당연히 사야 하는 것들까지 세심하게 채워놓은 노부부의 손길에 우리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쓰던 것들은 다 처분하고 와서 다시 새로 사야 했던 것들이기에 더욱 그랬다.


이사 전날 미리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열쇠를 받아놔서 이사 당일에는 아침부터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더블린에서 막 이주한 터라 큰 짐이 없었고, 차로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아 비앤비에서 한 번에 짐을 옮겼다.


이 집에 처음 뷰잉 왔을 때 막 리모델링한 깨끗한 집이라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바로 이 바닥이었다. 아, 얼마 만에 살아보는 마루 바닥 집이던가!!




아일랜드의 집은 방과 거실 모두 카펫 바닥이거나 거실은 마루여도 방은 카펫 바닥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느 집에 가도 어렵지 않게 카펫 바닥을 볼 수 있다. 나의 아일랜드 살이 총 6년 중 방과 거실 모두 카펫 바닥이었던 두 집에서 4년 정도 살았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카펫 바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인즉슨,


- 청소를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난다. (바득바득 청소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늘 답답했다. 열심히 청소기로 밀어도 청소가 된 건지 안된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

- 카펫 바닥을 보고 있으면 이물질, 먼지의 집합체인 것만 같다. 그것이 그대로 나의 호흡기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호흡기 질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찝찝함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 사실 이런 이유 말고도.. 그냥... 그냥... 싫다. ㅠ_ㅠ


(나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었던) 카펫 바닥의 장점도 분명히 있을 테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좌식 문화, 방바닥 문화가 익숙한 나에게 있어 카펫 바닥은 늘 불결해 보였다.


우리가 아일랜드를 떠나기 직전까지 거의 3년 정도 살았던 집에 처음 이사할 때는 아예 전문 업체를 불러 스팀 청소기로 거실과 방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스팀이 지나간 후 눈에 띄게 밝아지고 보송보송해진 바닥을 보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마음 같아선 일주일에 한 번은 그렇게 청소를 하고 싶었지만 비용도 비용이고, 할 때마다 모든 가구를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어서 아쉽게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펫을 깨끗하게 목욕시켜 준 날이 되었다.




이번에 이사한 집에서는 몸은 고됐지만 오랜만에 다시 보는 마루 바닥에 신이 나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바득바득 문질렀다. 그렇게 때가 벗겨지고, 물티슈로 문질렀을 때도 자국이 전혀 안 묻어 나올 정도가 되었는데...


현타가 왔다.

어차피 이 집에서 나는 슬리퍼를 신을 거고, 이 바닥에 앉을 일이 없지 않은가.


유럽에서 6년 넘게 생활하며 온돌 바닥에서 이불 깔고 자는 것보다 침대에서 자는 것이 편해졌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좌식 문화가 그립다. 아마도 나에게 좌식 문화는 단순히 앉아서 생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거다.


온 가족이 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밥을 먹던 기억, 겨울에는 뜨끈한 아랫목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던 기억, 여름에는 대나무 돗자리 위에 벌러덩 누워 선풍기를 쐬던 기억 등등.


입식 문화인 유럽에 살면서는 당연히 바닥에 앉을 일이 없었다. 바닥은 그저 바닥일 뿐이었다. 아일랜드에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도 꼭 물어보곤 했었다. '신발 벗고 들어갈까요, 신고 들어갈까요?' 그중 반은 슬리퍼를 내어주고 반은 그냥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고 했었는데 처음에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참 불편했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밖과 구별되는 이유는 신발을 신냐, 벗냐의 차이인데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의 집을 더럽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나름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남편과 결혼하고 같이 살 때부터 집에서는 절대 신발을 신지 않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합의를 했다.




무식하게 열심히 바닥 청소를 하고 나니 어깨에 근육이 단단하게 뭉쳤다.

앉지도 못할 걸, 눕지도 못할 걸... 너무 공을 들여버렸다.



잠시나마 주인공이었던 바닥은 이제 이 소파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많은 시간을 저 소파 위에서 보내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마루 바닥, 너 덕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사한 날만큼 할 자신은 없지만 여기서 지내는 동안 너를 열심히 돌봐주겠다.


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돌고

제법 무더운 계절이 오면,

시원한 네 위에 앉아 볼 날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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