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대단하다고? 떠나는 게 제일 쉬워

by 이모리

“왜? 대체 왜 가려는 건데?”


당연했고 예상했던 엄마의 반응이었다.


홍보를 전공하고 1년의 취준생 시기를 거쳐 작은 홍보대행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겨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돈을 받으며 일을 배울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년이 채 안되었을 때 기회가 닿아 아는 분의 소개로 조금 더 큰 홍보대행사로 가게 됐고,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는 AE가 되면서 홍보 일의 맛이 뭔지도 알게 됐다. 대행사 일의 특성상 잦은 미팅과 야근은 어쩔 수 없었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었지만 일에 있어서 후회는 없었다. 내가 맡은 일에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도 야근하냐고 물으시는 엄마의 문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의 나는 영락없는 불효자였다.



그렇게 두 번의 홍보대행사를 거쳐 비교적 업무 강도가 낮은 인하우스 홍보직으로 이직했다. 그렇다고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 2-3개 클라이언트를 맡아 밤낮없이 일하던 대행사에서의 삶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야근 없이 정시에 퇴근, 중소기업이지만 알찬 직원 복지 혜택, 마음에 맞는 동료들. 나도 그렇지만 엄마의 마음에도 비로소 평안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이제 좀 ‘괜찮다' 싶은 때에 갑자기 아일랜드로 떠나겠다니. 20대 때의 방식 그대로 부모님께 나는 선결정 후통보를 하고 말았다. 하고 싶은 것은 고집스럽게 꼭 하고야 마는 나를 이미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잘 말씀드려서 걱정을 잠재워드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사실 여행 이후 내 마음에 들어왔던 곳은 파리였다. 여행 직후 돌아오자마자 파리에서 최소 6개월을 살겠다는 목표로 어학원을 알아보고, 예산을 짜보기도 했다. 그런데 최종으로 결정한 나라와 도시는 아일랜드 더블린이었다. 내가 여행해 본 나라도 아니고, 주변에 다녀온 사람도 없고,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그 나라로 결정한 건 어찌 보면 순전히 네이버 때문이었다. 내 예산에 맞게 유럽에서 최소 6개월을 살기 위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를 검색해보니 아일랜드였던 것. 광고성이었지만 유학원에서 올린 포스트도 많았고,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를 계속 참고하다 보니 아일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퇴사를 결정하고, 아일랜드 더블린행 비행기를 끊고 나서 8개월이긴 해도 짧은 시간은 아니기에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밥을 먹으며 아일랜드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정말 용기 있다.’, ‘대단해.', ‘멋진 것 같아.'등이었다. 부모님 외에는 다 그런 류의 반응이었다. 내가 그들이었어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나는 좀 민망했다. 내가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을 떠나 먼 곳에 잠시 살러 가는 것일 뿐. 나는 전혀 내 안에서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계획하고 있지도 마음에 두고 있지도 않았다. 물론 알고는 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에 그런 원을 한 번쯤 품어보았다 해도 저마다의 이유로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쉽지 않다는 것을.


내겐 안정감이 들 때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은 이상한 습성이 있다. 내가 봐도 나는 참 이상하다. 안정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놓고 좀 안정됐다 싶으면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벗어나 다시 고생을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유럽 여행 전에는 잘 몰랐다. 어렸을 때는 내가 30대쯤 되면 완성형 인간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30대가 되어서야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느낌이 든다. 나를 대단하다고 하는 친구들의 반응에 "에이~ 아니야. 대단하긴. 그냥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거니까. 그렇게 결정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나의 모습이 때론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모르고 있던 나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서울 원룸 살이 7년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남은 건 큰 캐리어 하나, 작은 캐리어 하나, 배낭 하나였다. 집을 정리하면서 대체 이런 짐들이 그 좁은 방 어디에 있었나 싶을 만큼 대형 쓰레기봉투 7개는 족히 나왔다. 분명히 어떤 이유로든 버릴 수 없었던 것이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버리는 것이 쉽지 많은 않았다. 끝까지 이걸 버릴까 말까 고민하게 하는 것들은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이, 또는 그때 그 시점의 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미련 없이 과감히 버렸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볼게.'라고 마음속에서 되뇌었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어 주는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




시간을 초월해 의미 있게 남을 수 있는 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될까. 시간의 영향을 받는 것은 변하고 마침내 없어질 텐데. 이것을 쓰고 있는 내 몸 마저도.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 동안, 애초에 그렇게 하도록 디자인되어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항공사의 허용치에 맞게 내 몸과 손으로 가져갈 수 있는 캐리어 두 개와 배낭 하나,

그리고 좀처럼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항공사의 허용치를 훨씬 더 초과해버린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난 더블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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