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집을 구하다 보니 집에 가고 싶어졌다 (2)

by 이모리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집을 보러 오라는 문자를 처음 받았던 순간.


집을 구한 것도 아니고 집을 보러 오라는 문자인데도 치열한 경쟁에서 선택받은 자가 된 것에 대한 희열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 말고도 집을 보러 오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나만큼 간절할 텐데 그 안에서 선택을 받으려면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다른 한 명과 방을 셰어 하는 트윈룸이었고 방 가격도 당시 시세에 비해 100유로 정도 높은 편이기는 했지만 학원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위치여서 버스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 웬만한 편의시설이 근처에 다 있어서 시내에 나갈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 시내에 나간다 해도 걸어서 40분 거리라는 점, 안전한 동네라는 점 등등 때문에 그 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졌다. 살면서 이렇게 간절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학원에서 20분 정도의 거리여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여유 있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아일랜드는 보통 한 달 치 월세가 보증금이며, 첫 달에 보증금과 월세를 같이 내는데 방이 정말 마음에 들면 바로 보증금을 주겠다는 식의 어필을 할 생각으로 현금을 인출해서 챙겨갔다.


더블린의 하늘은 대체로 이렇다. 집을 보고 나오는 길의 내 마음 같기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당연히 구글맵을 보면서 갔는데 그때 오래된 핸드폰이라 미리 충전을 해놓지 않았더니 구글맵을 켠 이후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급기야 배터리에 붉은 표시가 보이고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꺼져버렸다. 머릿속이 순간 하얘지면서 어떻게 목적지를 정확히 찾으며, 도착해서는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막막해졌다. 사람 일이 그래도 되려고 하면 어떻게든 되는 것일까. 그 아파트가 큰 헬스장이 있는 건물에 있었던 것을 기억해서 일단 그 헬스장이 어디에 있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동네의 초입에는 들어섰던 상태라 알려준 방향대로 조금 걸으니 헬스장이 보였다. 초행길이니 약간 헤맬 시간을 고려해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출발했는데 헬스장 건물 오른쪽에 있는 아파트 입구로 가니 방을 보여줄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몽골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맞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신할 수 있었다.


방은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내 입장에서야 살고 싶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보증금을 건네며 꼭 살고 싶다, 이제 막 아일랜드에 왔기 때문에 오래 살 계획이다 등 나름대로 어필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과의 공정성을 위해 보증금은 미리 받지 않겠다며 따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선 언제 올지 모르는, 어쩌면 안 올지도 모를 연락을 기다리는 희망 고문이 시작됐다.


이곳에선 집세를 지불할 능력이 있어도 선택이 되어야 살 수 있다. 나는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방을 구해주는 에이전시도 있는 것 같던데 들어보니 수수료가 한 달 방세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겠지만 이곳도 경제적 능력이 있는 상황에서는 크게 어려움이 될 것이 없다. 어학연수나 워홀로 와도 충분한 재정이 있거나 지원을 받고 있어서 홈스테이를 계속하거나, 시세보다 높은 방이라 경쟁자 없이 바로 집을 구하거나, 일을 하지 않고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경우 등을 보았다.


나는 참 어중간했다. 아주 궁핍하게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거리낌 없이 자주 외식을 하거나 다른 나라로의 여행을 계획할 수 있는 정도의 재정은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돈을 아일랜드에서 지낼 개월 수로 나누어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꼭 필요한 곳에 얼마나 들지를 가늠해보고, 거기에서 조금씩 남으면 모아서 가까운 데로 여행을 갈 수 있는 여비 정도는 나오겠다 싶었다. 돈이라는 것이 참 사람을 작게 만든다.

그래도 지금 내가 아일랜드에 온 것에 대해선 후회가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금 모아둔 돈이 있었는데 당연히 그 돈을 깨서 모두 아일랜드에서 쓰고 싶지는 않았고, 그렇다면 1-2년 조금 더 일을 해서 지금보다 여유 있게 올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후에 타이밍이라는 것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경험도 하게 됐으니 타이밍은 곧 인생의 '묘'이리라.



하루가 지나고도 연락이 오지 않자 그 랜드로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원어민이든 아니든 그때만 해도 영어로 통화를 하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었는데 그런 것을 따지기엔 내 상황이 너무 절박했다. 역시나 연락이 안온 이유가 있었다.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대로 수긍할 수가 없었다. 제발 한 번만 더 생각해달라고, 그 사람보다 아마 내가 오래 더 살 거라고 하면서 간청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사실 거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앱을 켜고 집을 찾아보고 문자와 메일을 보내고, 커뮤니티에 댓글을 남기는 일의 반복이 시작됐다.


집을 구하면 구할수록 집에 가고 싶어졌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빌 수 있는 그곳,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그곳,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그곳, 그 ‘집.'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오고 싶어 온 것도 나인데 지금 이 순간 아무 생각과 고민 없이 내 몸 하나 편하게 누일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하는 것도 나였다. 이 두 마음 사이의 줄다리기 승부는 그렇게 간단하게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 줄다리기의 팽팽함이 느슨해지는 때가 온다면 그건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함을 깨닫는 순간이리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집을 구하려니 누르고 있었던 짜증이 갑자기 확 폭발했다. 난 분명 '초록빛 에메랄드의 나라'에 있는데, 왜 내 마음은 ‘잿빛 외투를 입은 거지’ 같냐며.


그러던 중 문자가 왔다.




반전의 반전.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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