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12월을 참 정신없이 보냈다. 연말을 느긋하게 즐기고 한 해를 차분하게 돌아봤던 기억보다는 연말 보고와 새해 업무 계획 자료들을 만드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던 기억이 더 많다. 아일랜드에 오기 직전까지 다녔던 회사는 입시 관련 회사였는데 수능 성적표가 나오고 본격적인 입시가 치러지는 때가 12월이라서 그때부터 연초까지는 거의 수험생과 같은 심정으로 달려야 했다.
12월이 되니 더블린 시내는 쇼핑을 하는 사람들로, 연말 파티를 하는 사람들로 어딜 가나 북적였고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회사나 가게도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부터 2주 동안 문을 닫거나 단축 근무를 해서 12월 초부터 이미 사람들의 마음은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그리고 크리스마스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에는 연중무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하는 공항도 문을 닫는다.
반전이 있다. 이렇게 신이 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는 날은 25일 크리스마스다. 앞서 얘기했듯이 공항뿐 아니라 모든 가게와 식당도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명절과 같은 개념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식재료 등 필요한 것들을 미리 구매해 놓고, 당일에는 오롯이 가족들과만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에 가족들이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꽤 쓸쓸하고 외로운 날이다. 고맙게도 어학원 친구들 중 몇 명은 기꺼이 호스트가 되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주었다. 초대된 사람들 모두 같은 처지의 이방인이니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서로의 외로움을 알고 이해했고, 함께 하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됐다. 누군가는 두 손 넉넉히 디저트와 음료수를 가져와 나누었고, 누군가는 와인을 가져왔다. 나는 연하장을 썼고, 작은 초콜릿을 전했다. 하루는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독한 사람처럼 방 안에 박혀있었는데 또 다른 하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 속에서 세상 그 누구보다 밝아져 있었다. 12월은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내가 다니는 어학원도 연말연초 2주 동안 겨울방학에 들어간다고 미리부터 공지를 했다. 2주 넘게 학원도 가지 않고 아일랜드에서 뭘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12월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가 '어라?' 하며 새해를 맞이할 때도 많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12월을 지나는 것도 참 난감했다.
더블린에 있는 동안 뉴욕에 꼭 갈 거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더블린에서 미국 동부는 가까운 편이고 비행기 값도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무슨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가고 싶다고 덜컥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마침 아는 언니 두 명이 미국 동부에 살고 있어서 한번 검색이나 해보자 싶어 사이트 몇 곳을 뒤져봤다.
보통은 300유로 대 정도로 뉴욕이나 워싱턴을 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연말이라서 그렇게 저렴한 티켓은 찾을 수 없었고, 가장 저렴한 티켓이 500유로 정도였다. 고민이 됐다. 만약 이 티켓을 사버리면 이제까지 겨우 월간 예산에 맞게 빠듯하게 생활을 이어왔는데 다녀와서는 정말 허리띠를 제대로 졸라매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거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그렇지만 연말을 특별하게, 아니 ‘외롭지 않게 ‘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처음 밟아보는 미국 땅, 워싱턴과 뉴욕의 거리를 누비는 나,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난 그리운 얼굴들과 그간의 삶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나눌 날들.
엄마가 지금까지도 하시는 말이 있다. 아일랜드에 살면서 이번엔 이 나라를 여행했고, 저번에는 저 나라에 갔었고, 여기저기서 좋은 것을 볼 때마다 엄마 아빠랑 꼭 다시 오고 싶었다는 얘기를 하면 엄마는 아일랜드 그 멀리까지 갔는데 거기서도 여행을 그렇게 다니냐며 나를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바라보신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시단다.
이런 방랑벽은 여행만 생각하면 피곤함이 먼저 밀려온다는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미국행 티켓은 내 손에 쥐어졌고 무를 수도 없다.
유럽 대륙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북아메리카 대륙으로의 대륙 간의 이동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에 웅장한 무언가가 차오르면서도 어느 정도 예상되는 개고생을 생각하니 마냥 즐겁고 기쁘지만은 않았다.
애초에 모든 걸 다 갖추고 편하게 여행한 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어디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아니어도, 몸이 좀 고생스러워도 어떤 여행이든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