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첫 미국 여행, 좀 기뻤고 좀 슬펐다

by 이모리

진정한 설국, 아이슬란드의 항공사인 WOW 항공 비행기를 탔다. 덕분에 레이캬비크 땅도 잠시 밟아볼 수 있었다. (아직도 아이슬란드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다.)


하늘에서 바라본 12월의 아이슬란드. 정말 신비로웠다.


경유 시간이 길지 않았기에 잠시 쉬면서 뭐라도 먹으려고 하던 차 워싱턴 행 비행기의 탑승을 준비하라고 떠서 부랴부랴 줄을 섰다. 그렇게 아이슬란드와는 스치듯 안녕을 했다.


6시간쯤 지났을까. 볼티모어 워싱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ESTA를 발급받았기 때문에 심사관 앞까지 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심사관은 왜 왔는지, 돈을 얼마나 가져왔는지, 얼마나 있을 건지, 친구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등의 질문을 무표정으로 꼬치꼬치 물었다. 모든 질문과 답변이 끝나고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며 하는 말,


Welcome to the U.S.!


비로소 미국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아는 두 언니가 마침 메릴랜드에 살고 있었고, 두 집에 며칠씩 나눠 묵으면서 중간에 뉴욕을 혼자 3박 4일로 다녀오기로 했다. 한 언니는 싱글이지만 일을 하고 있었고, 한 언니는 한 아이의 엄마라서 나름의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기에 나 때문에 그 일상을 무리하게 바꾸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멀리서 온 나를 환영해주며 자신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느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구글맵으로 길 찾아가는 실력, 비행기 티켓 싸게 잘 사는 요령, 숙소 잘 고르는 법 등등. 뭐 이런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새롭고 불편한 것에 나를 맡기는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해진다.


여행은 자발적으로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일상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하며, 나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은 반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상황이 아주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오히려 그런 상황에 부딪히며 아슬아슬한 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도 있다. 여행을 누군가와 같이 가면 그렇게 싸움이 난다고들 하는 것도 뭔가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일탈의 즐거움과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기쁨의 충만, 그리고 낯선 곳을 다니며 알게 모르게 축적되는 정신적 긴장과 육체적 피로감. 이 사이의 균형이 딱 깨지는 순간이 온다. 사실 이건 혼자 다녀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몸이 돌덩어리가 된 것처럼 움직이기 싫고 집에만 가고 싶다. 아이러니하게 일상을 벗어나려 온 여행에서 일상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꼭 온다. 이 때문에 나는 한 달 이상의 기간을 잡고 '일주' 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도 없다. 나에게 비일상과 일상의 균형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언니는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에 나를 내려주고 출근을 했다. 스미스소니언 역에서 내리자 워싱턴의 명소가 모두 모여 있었다. 미국 국회의사당, 링컨 기념관, 워싱턴 기념탑, 내셔널 갤러리,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가 연설을 하던 도중 사랑하는 제니를 보고 그 앞에 있는 풀에 첨벙첨벙 들어가 포옹을 했던 링컨 기념관, 그곳에 내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링컨기념관에서 바라본 워싱턴 기념탑


'아는 만큼 보인다.' 얼마나 많이 들었던 말인가. 미리 공부 좀 하고 올걸. 멀리 서였지만 백악관의 하얀 지붕을 봤고, 의미가 깊은 명소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있는 도시인데 가이드 투어라도 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뒤늦게 밀려왔다.


뉴욕에서 보낸 3박 4일 동안은 정말 개고생 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첫째 날은 날씨가 괜찮아서 브루클린 브리지도 건너보고 아름다운 맨해튼의 야경도 그런대로 잘 즐겼다.


뉴욕의 지하철


그런데 둘째 날부터는 하루 종일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빗 속에서 떨며 걸어 다녔던 기억이 뉴욕 여행의 8할이다. 비 오는 겨울날의 센트럴파크는 조깅하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줄이 너무 길어 패스. 록펠러 센터 쪽으로 가면서 트럼프 타워가 가까워지자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그 앞에 경찰들까지 있어서 우산을 쓴 상태에서 그 사이를 겨우 뚫고 지나갔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 야경을 보려는 계획도 비 때문에 무산됐고, 물가가 너무 비싸서 레스토랑에서 식사 한 끼 제대로 할 엄두도 안 났다. 마지막 날에는 뉴욕 주요 명소를 돌아보는 가이드 투어를 했지만 가이드님의 발음이 좋지 않고, 작게 웅얼거리듯 말씀하셔서 알아듣기가 정말 힘들었다. 나중에는 그나마 사진 찍어줄 사람이 있고, 궂은 날씨에 구글맵 안 보고 돌아다니는 게 어디냐며 체념과 초탈 그 어느 사이쯤에 다다랐다. 오후부터는 비바람이 너무 세져 결국 우산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투어를 잠깐 멈추고 근처 건물에서 피신해야 했다.


Wall street..그리고 비 비 비


이런 고생스러운 기억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뉴욕 여행을 생각하면 다른 여행과 달리 오래도록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감흥이나 추억이 별로 없다. 재정적으로 더 여유 있게, 그리고 더 좋은 계절에 왔으면 여행의 풍경과 모습이 완전히 바뀌기는 했을 테지만 생각해보면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여행에는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여행의 주체는 여행지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나라는 필터를 거쳐 여행의 경험과 의미가 해석되고 가치가 매겨진다. 안타깝게도 뉴욕은 Top 5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을 십 분의 일도 즐기지 못했던 건 억울하다.


단, 그때는 혼자가 아닌 둘이었으면 좋겠다.

뉴욕이란 도시를 조금은 더 아름답고 새롭게 다시 보게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말이다.


페리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
뉴욕 명소 '덤보'
메릴랜드로 돌아가는 날 아침, 바쁜 출근 길 풍경.



워싱턴 D.C. 의 조지타운에 아주 유명한 도넛 집이 있다며 언니가 나를 데려갔다. 줄이 100미터는 족히 돼 보였는데 언니가 고생스러워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며 꼭 먹자고 했다. 둘 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칼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그 문자를 받았다.


"OO이가 출산을 하다 아가와 함께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친구의 남편이 보낸 문자였다. 믿을 수 없었고, 믿기지 않아서 순간 현실 감각이 없어질 정도였다.


학창 시절 아주 가깝지는 않았지만 둘 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좀 더 친해졌고,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결혼 준비에 신나 있었고, 결혼하고 바로 임신을 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출산의 경험이 없지만 주변 친구들을 보면 큰 고생 없이 잘 낳는 것 같았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내겐 너무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00이, 또 혼자 남겨진 00 이의 남편을 생각하니 삶이라는 것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새해를 며칠 앞두고 그 소식을 들었던 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카톡 프로필을 열어보았다. 가지런히 예쁘게 놓여있는 남자아이 옷, 결혼식 당일 드레스를 입고 환히 웃고 있는 모습.


그래서 그때의 미국 여행을 떠올리면 그 친구가 생각나서 아직도 마음 한켠 조금 아린다. 물론 아가와 그곳에서 고통 없이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지만 말이다.


좀 기뻤고 좀 슬프기도 했던 미국 여행을 마치고 더블린에 도착하니 그제야 마음에도 쉼이 허락됐다.


방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몸의 짐도 마음의 짐도 풀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잠 다운 잠을 잤다.


그렇게 더블린은 어느새 내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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