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랑을 하면 더블린이 라라랜드가 됩니다

by 이모리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되자 더블린은 조용해졌다. 레스토랑과 펍에서 밤늦게까지 파티를 하던 사람들도, 거나하게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양손 가득히 네다섯 개의 쇼핑백을 들고 다니던 사람들도 쏙 들어가고 시내 거리도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사람들은 Dry January(건조한 1월)를 보내고 있다. Dry January는 크리스마스 연휴부터 연초까지 절제 없이 술을 마시고 즐겼던 삶에서 돌이켜 일종의 디톡스를 하는 달이다. 건강을 위해 술을 자제하자는 의미도 있겠지만 12월까지 쇼핑에, 연말 파티에 돈을 펑펑 썼으니 당연히 통장도 말라 있을 터. 어쨌거나 술도 없고 돈도 없는 1월, 그래서 건조한 1월이다.


미국을 다녀오고 나서 몸이 좀 아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월도 벌써 중순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평일 3시간 반씩 6개월 동안 영어를 배우는 일반 영어 코스를 수강하고 있었는데 3개월이 지나니 선생님과 수업 패턴에도 익숙해지고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생각해보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시간 30분씩, 6개월 동안 영어만 공부하기 때문에 결코 적은 인풋이 아니다. 또 그렇게 배운 것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때 내가 영어를 술술 잘하게 됐다면, 아마 지금 브런치에서 '영어 학습'과 관련된 얘기를 더 풀어내고 있겠지만...



아일랜드에서 어쨌든 밥 벌어먹고 살고 있는 이상 '영어'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주제 중에도 영어와 관련된 것들이 꽤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 6개월 어학연수 후 원어민처럼 스피킹 실력이 오른 비법' 이런 글은 절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영어로 무너진 자존감, 어떻게 회복하지?', '더 이상은 못 참아. 나 돌아갈래!' 뭐 이런 류의 얘기들이 될 것 같다.


한국에서 수능을 잘 치르기 위한 영어 공부를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했으니 문법이나 단어는 많이 알고 있었는데 '스피킹'은 정말 늘 어려웠다. 어학원에서는 보통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한 반에서 공부하는데 선생님들이 주로 하는 것이 둘 씩 짝을 지어 주고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서로 토론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차라리 필기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바로 앞에서 말을 하며, 내 실력이 들통나는 것은 도저히 참기가 어려웠다. 다른 유럽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어찌나 하나 같이 스피킹을 잘하던지. 분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때 참 많은 자극을 받았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태도였다. 그 친구들도 원어민이 아니고, 영어 학습자이니 문법이 틀릴 때도 있고, 문장이 늘 완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고,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다. 실수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도 않았다. 영어를 너무 '글'로만 배웠던 내 지난 시간이 무용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금이 가장 늦지 않은 때라고 생각하며 노력하는 수밖에.




정말 뻔한 얘기가 될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뻔하게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나 뻔하게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 내 스피킹 실력이 는 건 연애를 하고부터였다.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외국인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통상 얘기한다. 영어를 잘하려면 인풋도 중요하지만 입으로 내뱉고 써먹는 아웃풋이 중요한데 그런 환경을 누군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본인이 만드는 것이다. 꾸준히 Meetup을 나가서 되든 안되든 영어를 막 뱉어본다던지, 또 거기서 친구를 사귀어서 친해진다던지, 일을 구하던지, 봉사활동을 하던지, 펍을 자주 가던지 등등. 중요한 건 내가 영어를 '꾸준히'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어학원 또는 1:1 영어 레슨처럼 내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학습자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도 나와 상대 모두 어느 정도의 커밋먼트(commitment, 헌신 또는 전념)를 가지고 만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장 최적의 관계가 연인 관계다.


어학원 숙제를 이렇게 심각하게 할 일인가! 완전 공부파다.


Nick과 난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 길어봤자 한 달, 짧게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다른 유럽 학생들과는 Nick은 이탈리아에서 왔는데도 나처럼 6개월을 등록하고 온 친구였다. 게다가 나이도 동갑. 베프가 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지한 거 같으면서도 장난기 많고 위트 있는 데다 영어는 또 왜 그렇게 잘하는지. 문법은 확실히 내가 더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수업에서 같이 짝이 되어 얘기를 하면 주어진 시간의 70%를 그 친구가 채우고 있었다.


둘 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았던 때라 학원 수업이 끝나면 같이 점심을 먹고 서로 숙제를 도와주고, 배고프면 저녁까지 먹었다. 그러다 주말에도 만나게 됐다. 일행이 있을 때도 있었고, 둘만 만날 때도 있었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다. 더블린에 왜 왔는지, 그리고 자신의 나라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게 하나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라고 해도 모든 친구와 이런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법.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고, 그 친구도 같은 마음일지 궁금했지만 선뜻 물어볼 용기가 안 났다.


저녁을 먹으며 한국에서 살았던 빡빡한 삶, 그리고 연애를 하며 받은 상처들, 나 자신에 대한 자책 등 한 마디로 별소리가 다 술술 나왔던 그날. 그가 나에게 걱정 말라며, 앞으로 너의 '라이프 코치'가 되어주겠다는 얘기를 농반진반으로 했던, 나는 거기에 고맙다며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했던 그날.


그가 내게 고백했다. 자신이 남자 친구로서 어떻겠냐고.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됐고, 지금은 결혼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아일랜드에 오기 전까지 나를 위한 건지, 주선자를 위한 건지 모를 소개팅을 줄줄이 하며,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일까. 아일랜드에서 누군가를 만나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만난다 해도 그 사람이 나와 다른 나라의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그는 아일랜드에서 만난 유일한 베프이자, 썸남이자, 남자 친구, 그리고 남편이다. (이 사실을 그는 꽤 자랑스러워한다.)


베프와 썸 사이 어느 쯤에 있던 시기, '라라랜드'가 개봉해서 아일랜드 극장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봤다. 배우를 꿈꾸는 '미아'와 자신만의 재즈 클럽을 갖고 싶은 '세바스천'. 이 둘은 사랑에 빠지고, 서로의 인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좌절과 실패. 비록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뭔가 내세울 것 하나 없던 시기였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 둘은 함께 있을 때 환히 빛났다. 꿈을 이룬 사람들이 '별'이 아니다. 라라랜드에선 자신의 인생과 꿈, 그리고 사랑에 진심인 이들이 '별'이다.



영화를 보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한번 더 극장에서 봤다. 그때의 나는 참 여러 생각 속에 있었다. 몇 달 후면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도 될까,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할까, 더블린에서 어떻게 해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등등. 제법 묵직한 생각들이었다. 휴학을 하고 온 대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서 꼭 복귀하고 싶은 신의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30대 초반. 내 인생의 30대를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 이성적으로 설계해 나가야 할 시점이건만 오히려 나는 리셋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두려워졌다.


그런데 Nick을 보면 이상하게 용기가 생겼다. 내 인생에서 조금은 더 무모해져도 될 것 같은. 우리의 관계가,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이 낯선 땅 더블린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인생으로 들어갔다.


궁금해졌고 보고 싶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게 될지.


이곳 라라랜드, 더블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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