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집. 회사. 집. 반복되는 일상에 웃을 일이 줄어들 때 즈음 휴가철이 왔다. 앞만 보고 걷느라 하늘을 올려다본 지 오래됐다.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이 향긋한 풀을 바닥 삼고 시원한 바람을 이불 삼아 파란 하늘에 떠있는 구름 몇 점에 미소 짓고 싶다. 이번 휴가는 동해안 지역으로 가려고 결심했다. 얼마 전 동해안 지역 산불로 지역경제가 침체됨에 따라 'Again Go East, 동해안 여행이 곧 자원봉사입니다.'라는 캠페인을 봤기 때문이다. 산불 뉴스를 접하고 안타까웠는데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굳이 해외를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고 거기다가 좋은 취지까지 더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동해안 지역의 여러 곳을 고민하다가 강릉으로 정했다. 강릉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대와 설렘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시작은 맛집이다. 강릉으로 가서 처음 들른 장소는 동화가든이라는 짬뽕 순두부로 유명한 맛집이었다. 월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아 대기표 397번을 뽑았다. 식당 입구에서는 298번을 부르고 있어서 앞에 100명 가까이 되는 대기자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테이블 회전율이 좋아서 대기자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고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근처 아이스크림 집에서 순두부 젤라토를 먹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가운데 끝 맛은 차가운 순두부였다. 미묘한 맛. 한 번쯤 먹어볼 만했다.
짬뽕순두부는 1시간 정도 기다림 끝에 맛볼 수 있었다. 숯불향이 입안에 퍼지며 얼큰한 맛과 함께 담백한 순두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맛있었다. 1시간 정도는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물론 그 이상의 기다림은 권하지 않는다.
숙소는 스카이베이 경포 호텔로 예약했다.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위치가 좋다. 루프탑 인피니티 풀을 이용하려면 3만 원을 추가해야 한다. 짐을 간단히 풀고 테라로사 커피공장으로 향했다. 핸드드립 커피로 유명한 장소로 예가체페라는 커피와 티라미수를 먹었다. 향긋한 커피 향이 마음에 여유를 한층 더해주고 달콤한 티라미수는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커피 한 모금과 티라미수 한 조각을 먹고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다.
"이게 바로 휴가지."
한껏 느긋함을 즐기다가 그곳에서 파는 커피용품들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강릉 재래시장에 들러 명성 닭강정과 맥주를 사 왔다. 숙소에 도착한 후에는 헬스장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루프탑 수영장으로 향했다.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풍경은 지나치게 완벽했다. 물놀이를 하며 인생 사진(?)들을 찍다가 저녁은 아까 사 온 닭강정으로 해결했다. 닭강정은 원래 맛있지 않은가? 특별한 맛은 없고 원래 알던 닭강정 맛 그대로였다.
둘째 날의 시작도 순두부로 시작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농촌 순두부라는 초당순두부 맛집이 있었기에 그리로 향했다. 초당순두부는 백색 순두부 그대로 국물을 내는 음식으로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어제 먹은 짬뽕순두부보다 더 나았다. 아침을 먹고 강릉 커피거리에서 간단하게 커피를 한잔 했다. 안목해변에 있는 보사노바라는 카페인데 가게 옥상에는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해 두었다. 옥상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바다 지평선을 보며 커피를 먹었다. 파도소리와 바다내음 그리고 마음의 여유. 한참을 느긋하게 있다가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양 떼 목장에 들러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나무에 기대어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그늘을 느꼈다. 이름 모를 새들은 여유로운 리듬에 맞춰 노래 부르고 숨 쉴 때마다 맑은 공기가 온몸 구석구석을 정화시킨다. 순하면서도 깊은 눈을 가진 양들의 미소와 그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향 좋은 커피. 푸른 하늘과 넓은 바다. 여유와 행복. 강릉의 매력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앞만 보며 걷고 있는 지금도 그 순간을 회상하며 미소 짓는다. 다음 휴가 때도 해외보다는 국내 아름다운 휴양지로 발걸음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