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맥주와 감자튀김
헉. 헉.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미세먼지로 얼룩진 하늘은, 오전에 내린 소나기 덕분에 별이 보일만큼 깨끗해졌고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마음까지 정화시켜줄 만큼 시원하다. 나는 지금 달리고 있다. 심장은 요동치고 숨은 턱 밑까지 차오른다. 지금 시간은 오후 10시. 내 몸을 무대 삼아 벌인 맥주와 튀김들의 반복되는 공연에 뱃살들은 환호하며 늘어져버렸고 그들을 쫓아내려 집 앞 대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첫날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심장은 첫 키스의 그때처럼 빠르게 뛰고 다리는 물속에서 걷는 것처럼 무겁다. 산소는 에베레스트 산 정상처럼 희박하고 흐르는 땀은 눈에 들어가 눈물이 된다. 정확히 15일째 되는 날, 내 몸에서는 다시 맥주와 튀김의 공연이 열렸다. 그렇게 2019년의 첫 다이어트가 끝났다.
맥주를 마시고 감자튀김을 먹으며 다이어트에 실패한 이유를 생각했다. 맥주와 감자튀김. 그들은 죄가 없다. 나한테 초청받아서 온 손님들이기에. 문제는 그들을 초청한 나에게 있고 그들이 만든 포만감의 향연에 흠뻑 젖어버린 내 몸에 있다. 맥주와 감자튀김을 안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 인생이 지루해져서 오래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잦은 공연에도 끄떡없는 몸을 만들자’라는 생각에 달리기를 시작했고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맹목적인 달리기는 나에게 재미가 없었다.
2. 메이웨더처럼
“형님. 우리 체육관으로 오세요.”
내 고민을 직장동료에게 털어놓자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입사동기였다. 예전부터 복싱을 배운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내 다이어트 실패 사례를 털어놓자마자 함께 체육관에 가자고 권했다. 나에게 복싱은 타이슨, 파퀴아오 그리고 메이웨더 등 몇몇의 유명인을 아는 것이 전부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그날 저녁에 바로 동료를 따라서 체육관에 등록했다. 3개월에 35만 원.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줄넘기와 스텝을 배우고 잽, 원투 펀치로 샌드백을 치니 한 달이 지났고 라이트, 레프트 훅과 쉐도우 복싱을 하니 2달이 지났다. 그리고 3달째 드디어 첫 스파링을 했다. 사실 관장님이 스파링을 해보라고 했을 때 손을 저으며
“저 얼굴 다칠까 봐 무서워요. 그리고 할 수 있는 기술도 원투펀치랑 라이트 훅, 레프트 훅밖에 없잖아요.”
라고 하면서 거부했지만 관장님이 웃으며 말하길
“글러브도 14온스로 두껍고 헤드기어에 코 보호대까지 있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지금 배우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직장동료도 눈치 없게 “형님. 제가 옆에서 봐드릴게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재미있어요. 그리고 형님 잘하실 것 같아요.”
눈을 반짝이며 근거 없는 소리로 나를 재촉했다. 내 스파링 상대는 벌써 손에 붕대를 감으며 나를 힐끔거렸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라고 했다. 체구는 나보다 약간 작았지만 탄탄해 보였고 무엇보다 복싱을 배운 지 9개월 차라고 했다.‘어제 꿈자리가 사납더니 고등학생한테 맞게 생겼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속마음과는 다르게 얼굴에 자신감 있는 미소를 띠며 헤드기어를 썼다. 준비를 마치고 링위에 올랐다. 장판교에서 조조의 대군을 막아내는 장비의 심정으로 고등학생을 노려보았다. 공이 울리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스텝은 엉키고 주먹은 멋대로 나갔다. 내가 힘껏 내지른 펀치를 상대가 가볍게 옆으로 흘릴 때마다 몸에 힘이 빠졌다. 반면에 상대의 펀치는 비교적 정확히 내 안면을 강타했다. 머리는 충격으로 띵했고 호흡은 점차 빨라졌다. 순간 빈틈이 보였고 내 오른손 스트레이트 펀치가 상대 안면을 강타했다. 상대는 로프에 몸을 잠시 기대더니 내 품 안으로 파고들어 어퍼컷을 내 턱에 꽂았다. 숨이 탁 막혔다. 관장님이 외친다.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가드를 정확히 해요.”
직장동료도 외친다.
“형님! 왼손으로 상대 시야를 가려요.”
하지만 안 들린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주먹들. 나도 원투 스트레이트, 레프트 훅, 라이트 훅, 배운 것들을 모두 쏟아낸다. 1라운드당 2분씩 3라운드.
첫 번째, 두 번째 라운드는 정신없이 끝났고 세 번째 라운드는 상대의 연속 펀치에 헤드기어가 반쯤 돌아갈 때 끝났다. 호흡이 거칠고 다리가 후들거려 로프에 기댔다. 동료가 챙겨주는 음료수를 마시며 관장님의 간단한 평가와 함께 내 첫 스파링은 끝났다. 흐르는 땀과 거칠게 뛰는 심장이 나를 흥분시켰고 후들거리는 두 팔과 다리는 힘든 가운데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는 길에 동료에게 말했다.
“정신없이 맞았네.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러자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도 메이웨더처럼 많이 안 맞고 이기시면 되죠.”
“그래 그럼 되겠다. 똑똑하네.”
우리는 함께 웃었다. 메이웨더는 pretty boy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경기 후에도 깨끗한 얼굴로 유명하단다. 가라앉지 않은 흥분을 이렇게 시답잖은 농담으로 진정시키며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천천히 원, 투 잽을 해보았다. 그때 이렇게 피하고 저렇게 훅을 했어야 했는데. 어느새 뱃살은 줄어있었고 맥주와 감자튀김의 공연은 그 빈도가 줄었다. 그만큼 체력과 자신감은 올라갔다.
3. 심장박동을 느껴라
복싱을 배운 지 4개월째. 생활체육 복싱대회를 목표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몸무게는 81킬로에서 75킬로로 줄었으며 대회 나갈 때는 69까지 감량할 예정이다. 여전히 뱃살은 있고 체력은 약하지만 점차 나아지는 모습에 행복을 느낀다. 맥주와 감자튀김이 주는 포만감보다 복싱이 주는 자신감이 더 좋다. 스텝을 밟을 때 생기는 리듬감과 주먹을 뻗을 때 뿌려지는 뜨거운 땀방울에 설렌다. 샌드백을 칠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체육관을 채우고 주먹을 울리는 타격감에 오감이 만족한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운동. 복싱은 인생의 멋진 동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