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동거'

프롤로그

by 고스무 도우치

매일 해가 지고 나면 동네를 산책하였다. 어둠은 많은 것을 고요하게 만들고, 그 고요한 길을 걸으면 왠지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도 한결 가지런해졌기 때문에 나는 참 열심히도 걸었다.

그날도 해가 졌고, 나는 집을 나섰다. 복도 반층을 올라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두고 창밖을 보니, 건너편 아파트의 불 켜진 창들이 바둑판처럼 보였다. 집집마다 샷시와 창문은 비슷비슷한 편이었다. 반면, 조명은 흰빛, 노란빛, 가끔씩은 초록빛이나 핑크빛, 밝은 빛과 어두운 빛 등 꽤 다양했다. 빛이 비치는 평평한 창 안으로는 우리 집과 똑같이 생긴 길쭉한 직육면체 공간이 놓여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8층으로 올라오거나 내려오는 동안 그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주로 편안한 옷차림으로, 텔레비전 보는 모습, 밥 먹는 모습, 여기저기로 걸어 다니는 모습. 나는 그 작은 인간들을 가만히 보곤 했다. 한 번은 알몸의 사람이 등장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그가 누군지 모르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또 다른 건너편 복도에서 보면 나도 저렇게 보이겠구나.

내가 보고 있는 저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자,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재밌다는 마음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있던 쪽의 바둑판 창에서 나 말고도 또 누군가가 그 모습을 함께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던 바둑판의 반대면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건너편의 바둑판 창을 가만히 보고 있을지도.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여 올라탔다. 내가 떠나고 아무도 남지 않은 복도 전등불은 몇 초 만에 꺼지고 어둠만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그 불을 밝히고. 또 건너편을 바라보고...


그 날 나는 긴 밤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얼마나 가까이 살고 있을까. 또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 대해 모르고 살고 있을까. 겨우 벽 하나를 두고 살면서 어떻게 저 멀리 있는 것처럼 살 수 있을까. 발소리와 고함소리, 울음소리를 듣고도 우리는 어떻게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말끔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까. 내 이웃들의 웃는 얼굴과 인사와 자동차와 직업과 직장과 수많은 소문들에 대해 들으면서도, 그들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알지 못할까. 그런 질문들이 마구 떠올랐다.

또 이런 생각. 지도에서 보면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포개져 살고 있을까. 사람마다 GPS를 심어 두면 얼마나 많은 빨간 점들이 한 곳에 모여 깜빡거리게 될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그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고, 대번 제목부터 지어두었다.

'지도 위의 동거'.


그리고는 한참을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대학교 기숙사의 몇몇 방들, 고시텔 몇 군데,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 퀸즈의 주택, 원룸 몇 군데, 다시 대학원의 기숙사 방을 거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투룸 빌라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여러 장소에서 나는 가족들과 살거나 혼자 살거나 형제 혹은 연인과 살았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살았을 때도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니까 앞으로 여기 쓰일 이야기들은, 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오직 나로서밖에 살 수 없었던, 그렇게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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